[trans x cross]
[trans × cross] 추리와 드라마, 두 축이 <크라임씬>이다
2015-07-20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JTBC <크라임씬> 만든 윤현준 PD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모든 단서는 눈앞에 펼쳐진 바로 이 현장에 있다. 주어진 시간은 90여분. 그 안에 범인을 맞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상금이 주어진다. 6월24일 시즌2의 막을 내린 JTBC <크라임씬>의 기본 이야기 구조다. 밝고 경쾌한 예능 프로그램 속으로 범죄 수사물, 추리물을 끌어온 독특한 시도다. 게다가 롤 플레이 게임 속 캐릭터처럼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고정 출연자들이 매회 각자의 캐릭터를 소화한다. 모두가 잠정적 범인인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만 한다. 이 게임의 판을 짜며 두 시즌을 마친 <크라임씬>의 윤현준 PD를 만났다. 장르예능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마치고 또 다른 프로그램의 준비를 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는 그에게 <크라임씬>에 대한 궁금증을 캐물어봤다.

-추리물을 예능 안으로 가져오면서 장르예능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절반의 성공이다. ‘웰메이드 예능’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마니아층도 생겼다. 반면 시청률 측면에서 보자면 많이 아쉽다. 요즘은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도 잘하면 두 자릿수 시청률까지 나오는데 그것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래도 끝나서 시원하다. 첫 녹화하기 6개월 전부터 7개 정도의 에피소드는 준비해 본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머지 에피소드는 촬영과 방송을 내보내는 와중에 기획을 해야 했다. ‘크루즈 살인사건’은 이야기가 안 풀려 한달 동안 붙잡고 있었다. 정말 피를 말리더라.

-어떤 아이디어가 발단이 돼 <크라임씬>으로 발전한 건가.

=<크라임씬>의 전효진 메인 작가가 ‘모두가 용의자인 동시에 모두가 탐정이 되는 추리물’이라는 컨셉을 꺼냈다. 그 아이디어가 정말 마음에 들더라. ‘이게 잘될까, 시청률이 나올까?’ 하는 의심도 많았지만 구현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회사가 새로운 시도를 적극 지지해줬다.

-원래 추리물에 관심이 많았나. <크라임씬>을 구성할 때 레퍼런스가 돼준 소설이나 영화가 있었을 것 같다.

=추리소설을 탐독하는 편은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처럼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 유럽, 미국, 일본 추리소설을 가리지 않고 읽기는 한다. 하지만 일부러 어떤 작품을 보고 나중에 써먹어야지 하며 기억해두진 않았다. 평소에 나는 논리적이라는 평을, 전효진 작가는 드라마적인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마도 나와 전 작가가 가진 각각의 장점이 잘 맞아떨어져서 <크라임씬>이 만들어진 것 같다. 추리와 드라마, 두 축이 없으면 <크라임씬>은 불가능하니까.

-시즌1과 비교해봐도 시즌2는 확실히 드라마가 강해졌다. 출연자들의 연기도 물이 올라 보는 이의 몰입도를 한껏 높였다.

=시즌1이 어려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시청자가 추리에 좀더 쉽게 접근할까 고민했다. 그렇다고 추리의 얼개를 쉽게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대신 드라마적인 요소를 집어넣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의 요소들이 많다. 살인사건의 에피소드라는 게 막장이 아니면 잘 안 써지더라. (웃음) 시즌1에 없던 탐정 캐릭터를 넣은 것도 같은 이유다. 시청자와 똑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직 추리만 하는 인물이 극 안에도 있으면 좋겠더라. 솔직히 총 6명인 용의자들 각각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꼭 1명의 용의자는 이야기의 질이 떨어지더라. 그게 너무 싫어 아예 없앴다.

-롤 플레이 게임처럼 출연진이 사건마다 캐릭터를 부여받고 플레이를 이어간다.

=이 역시 드라마적인 접근에서 나온 거다. 예능에 드라마를 접목했고 출연자들을 통해 연기를 해보이고 싶었다. 시즌1이 게임, 예능의 측면이 강했다면 시즌2는 드라마를 강화했다. 예능 프로그램 같은 오프닝을 다 드러냈고 사건으로 바로 들어갔다. 그 사이사이, 출연자들이 예능감을 보여줬다. 제작진도 만들어가면서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를 느꼈던 것 같다.

-드라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혹시 드라마 연출에도 관심이 있는 건가.

=새로운 영역에 뛰어드는 걸 워낙에 좋아한다. 기회가 된다면, 또 그런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만 있다면 드라마도 해보고 싶다. 전효진 작가는 현재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플레이어 선정에 상당히 고심했을 것 같다.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맹활약한 박지윤, 홍진호는 물론이고 시즌2에 새롭게 합류한 장진 감독의 캐스팅이 절묘했다.

=박지윤, 홍진호씨야 시즌1의 추리 투톱 아닌가. 특히 박지윤씨는 드라마 연기와 예능이 동시에 가능하다. 장진 감독님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사실 반신반의했다. 아무래도 장 감독님은 연출자이다 보니 플레이어로서보다는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건에 접근하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그래서 더 잘 현장을 이해해주셨던 것 같다. 또 언제 치고 빠져야 하는지 타이밍을 절묘하게 잡아내셨다. 장 감독님은 사물을 보는 시각도 새롭고 단서들을 조합해 드라마틱하게 이야기화하는 것도 훌륭했다. 결국 이번 시즌에 우리가 추구한 게 드라마 아닌가. 그러다보니 정말 잘 맞아떨어졌다. 장 감독님을 섭외한 건 신의 한수였다. 플레이어 막내 EXID의 하니도 기대 이상이었다.

-정말 궁금했다. 대본은 있나. 있다면, 어떤 내용이 어디까지 적혀 있는 건가.

=다 짜고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 정말 많이 받았다. 플레이어들에게 역할을 알려줄 때 등장하는 롤카드가 우리의 대본이다. 그 안에 각자가 맡은 역할에 관한 모든 기록이 빼곡히 적혀있다. 사건 당일의 행적, 평소 어떤 사람인지, 다른 용의자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등. 플레이어들이 그 내용을 사전에 숙지하고 촬영장에 온다. 물론 촬영을 하다보면 대본에 없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대체로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건 아니더라. 그럴 땐 그냥 출연자들의 즉흥 연기에 맡긴다. 사실 시즌2 들어가기 전에 그동안 쓴 대본을 공개할까도 생각했다. 일단은 미공개다. 근데 누군가는 책으로 엮으라고 하더라.

-살인사건 현장인 세트 촬영, 플레이어별 인터뷰, 재연배우 촬영까지 하면 촬영시간이 상당할 것 같다.

=한회 촬영시간은 8시간 정도 된다. 물론 사전준비까지 더하면 정신이 없다. 무엇보다도 소품 담당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6명의 플레이어들이 현장 검증을 할 때마다 모든 소품을 다 리셋해야 하니까. 방마다 담당자가 정해져 있어서 미리 소품 위치, 상태 등을 사진으로 찍어 두고 매번 그대로 재연한다. 그래도 그걸 똑같이 한다는 게 보통 일인가. 그러다보니 다들 예민해져 있더라.

-벌써 <크라임씬> 시즌3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장기적인 시즌제 예능으로 자리잡는 건가.

=만약 시즌3을 한다면 그 시기는 내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전에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뭔지를 궁리해야 한다. 그리고 상당한 에너지를 들여 또 한 시즌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우리 스스로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도 시즌제로 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잘나가던 예능 프로그램이 어느 순간 시청률이 떨어지고 근근이 버티다 불명예스럽게 폐지하는 경우를 여럿 봤다. 시즌별로 집중해서 만들고, 또 충전해서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정말 필요하다.

-2011년 KBS에서 JTBC로 이직한 후,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 <신화방송> <비정상회담> 등 의외의 인물들을 섭외해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을 기획해왔다.

=자꾸만 다른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그래서 <신화방송> 때도 신화에게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신화 팬들에게 욕을 엄청 먹었다. (웃음) 현재 책임 프로듀서로 있는 <비정상회담>도 그렇다. 최근 방송 1주년을 맞아 새로운 멤버들을 투입했는데 시청자들의 이견이 많다. 다양한 국가의 젊은이들과 각국의 문화를 말해보자는 프로그램 취지를 생각한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변화는 필요하다.

-KBS <해피 투게더: 쟁반노래방> <해피 투게더: 프렌즈>로 호흡을 맞췄던 개그맨 유재석과 JTBC에서 새로운 시도를 모색 중인 걸로 안다.

=유재석씨가 처음으로 종편에서 활동하는 거라 관심이 많이 쏠린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리고 싶다. 그저 ‘어떤 포인트가 새로울까’를 고민할 뿐이다. <크라임씬>으로 마니아층에게 인기를 얻어봤으니 이번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유재석 활용법? 그런 건 없다. 다만 또 그를 뛰어다니게 할 수는 없잖나. (웃음) 유재석이라는 큰 자산을 바탕에 두고 새로운 걸 입혀야 한다는 게 현재의 내 고민이다. 8월에 공개되니 기대해 달라.

윤현준 PD 살인사건

방송국에서 살인사건이? 이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크라임씬>의 윤현준 PD다.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시즌2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준비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누구를 죽일까’ 했더니 작가들이 하나같이 나를 죽이고 싶다고. ‘그래? 그럼 날 죽여라’ 했다. (웃움)” 윤현준 PD를 향한 작가들의 사랑(?)에 힘입어 탄생한 회심의 사건이다. 특히 이 에피소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플레이어 모두가 본인 그대로 출연해 또 다른 재미를 안겼다. 심지어 프로파일러 표창원 교수가 이 사건의 탐정으로 등장했으니. 그러나 웬걸. 표 교수는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만다. “교수님이 계속 ‘과학수사를 해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신다. 정말 답답하셨던 거다. 진짜 사건 현장과는 다른 <크라임씬>만의 특징과 룰로 범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논리적 추리에 감성까지 섞어야 사건에 몰입할 수 있다.” <크라임씬>에서 살아돌아온 윤현준 PD가 전하는 사건 해결의 팁이다. 시즌3에서 적용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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