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촬영장보다 학교가 훨씬 좋아요” <집으로…>의 배우 유승호
2002-03-13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이혜정

애어른처럼 징그럽게 말을 잘하면 어떡하지? 교육받은 대답만 줄줄 외우면 어떡한담. <씨네21> 창간 이래 최연소 인터뷰이, 젊어도 너무 젊은 배우와의 만남을 앞두고 별별 걱정이 다 든다. 서울에서 온 7살 손자와 말못하는 77살 시골 외할머니와의 동거일기. <집으로…>에서 상우는 ‘바른생활 어린이’로 포장되지 않은, 아이 그대로의 악마성과 순수함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영화의 감정을 쥐락펴락한다. 이마를 피구장 경계선처럼 잘라놓은 앞머리를 해도 여전히 예쁜 얼굴로, 등굽은 할머니의 정성을 싸그리 무시한 채 요강을 산산조각 박살내버리는 고집불통의 상우는, 그러나 꿍하게 숨겨왔던 본심을 풀어놓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말 그대로 객석을 눈물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스튜디오로 들어서던 유승호(9)는, 이곳이 사진을 찍는 곳이라는 사실을 판단한 순간, 당황한 것 같다. “…엄마, 사진찍는다고 안 그랬잖아. 그냥 인터뷰만 한다고 했잖아…” 그 작은 몸이 불 위의 오징어처럼 꼬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기자누나에게는 눈길 한번 안 건넨다. 끼를 주체 못하는 꼬마녀석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승호는 “유난히 낯가림도 심하고 사진찍는 것도 좋아하질 않는” 아이. 결국 달래서 소파에 앉히긴 했지만 소파틈사이로 빨려들어갈것같이 몸을 구기고 잔뜩 화난 표정으로 땅만 쳐다본다. 마치 외할머니집에 처음 남겨진 날의 상우처럼.

결국 답을 기다리던 수첩은 저쪽으로 밀려나고, 어른들의 재롱잔치가 시작되었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과장된 몸동작이 오고가자, 안 보는 척하던 승호의 입에선 ‘피식’ 웃음소리가 배어나온다. 그렇지 이 녀석, 다 보고 있었단 말이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초콜릿과 사탕을 펼쳐놓으며 이 까다로운 배우의 말문을 여는 2단계 작전을 시도했다. 한참을 뾰루퉁하게 있던 상호는 사탕처럼 생긴 껌을 까서 말없이 사람들에게 건넨다. 그리고 와그작 부수어먹으려는 순간 조용히 첫마디를 뗀다. “그건… 씹어먹으면 안 되는데… 녹여먹어야 맛있는데….”

“촬영장가는 것보다 학교가는 게 훨씬 좋아요” <집으로…>에서는 일곱살박이 연기를 했지만 서태지가 <하여가>를 부르던 93년 세상과 첫인사를 나눈 승호는 이젠 “급식먹는 재미”도 아는 어엿한 초등학교 3학년이다. “사실 오늘 인터넷이 고장나서요. 오락을 못해서요. 너무 기분이 안 좋아요.” 연기 잘한 상으로 ‘형아’들이 읍내 PC방에 데리고 간 걸 촬영중 제일 재미나는 기억으로 꼽는 승호에게 오늘은 일진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은 날인 것이다.

쌍거풀이 질듯말듯한 큰 눈과 귀티가 풍기는 하얗고 모던한 얼굴. 1999년 ‘n016’광고로 데뷔해 특집극 <가시고기>로 얼굴을 알렸던 승호는 벌써 햇수로 4년차 베테랑 배우다. 하지만 인생의 반을 연예계에 몸담은 이 배우는 “잘생겼다” 한마디에 쑥스러워할 만큼 또래의 순수함만큼은 잃지 않았다.

변성기 전 소년이 가지는 아름다움은 제 아무리 조각같은 외모의 성인남자라 해도 따라올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지 못하는 자의 아름다움은 이미 세상 저 너머에서 만들어져 이 땅에 내려진 것이므로. 이럭저럭 놀이같은 인터뷰를 끝내고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가던 길, 뒤를 돌아보며 인사하던 승호가 그제서야 ‘씩’ 하니 마지막 웃음을 날린다. 음, 혹시 그 미소에 반했다고 한다면, 페도필리아라고 놀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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