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손호준] 조용히, 묵묵히, 종착지를 향해
2015-07-21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쓰리 썸머 나잇> 손호준

영화 <조이>(2015) <쓰리 썸머 나잇>(2015) <빅매치>(2014) <고死 두번째 이야기: 교생실습>(2010) <바람>(2009) <고死: 피의 중간고사>(2008)

드라마 SBS <미세스 캅>(2015) 외 KBS <트로트의 연인>(2014) KBS <태양은 가득히>(2014) tvN <응답하라 1994>(2013) SBS <커피하우스>(2010) EBS <점프2>(2006)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2014)

<쓰리 썸머 나잇>에서 제약회사 영업부 대리 왕해구로 등장하는 손호준을 본다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묵묵히 소처럼 일하던 일꾼 손호준은 잠시 잊어도 좋다. 그는 변신했다. 회색빛 양복 정장에 목까지 채워 올린 셔츠 위로 진분홍빛 넥타이까지 떡하니 맨 해구는 오늘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맹렬히 영업 중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발기부전제 치료약을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 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다. 게다가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만 자신의 아버지가 회사 회장님이라고 속이는 ‘귀여운’ 허세까지 보인다. 그러면 뭐하나. 모든 건 들통났고 되는 일은 하나 없다. 지질하고 잘난 구석 없는 해구를 보자마자 손호준은 “재밌을 것 같았다. 해구는 허세기도 있고 생각이 없는 허술한 사람의 결정체다. 상당히 극화돼 있어 이런 인물이 일상 속에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누구에게나 해구 같은 면이 있지 않겠나. 시나리오를 읽어갈수록 잘 짜인 만화책 한권을 읽는 기분이었다”며 신나게 몰입해 들어갔다. 여기에 해구의 고교 동창인 만년 고시생 차명석(김동욱)과 감정노동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콜센터 상담원 구달수(임원희)까지 가세하면서 서른을 넘긴 세 남자의 일상 탈출이 시작된다.

확실히 손호준의 필모그래피에서 <쓰리 썸머 나잇>은 새로운 지점에 놓일 만한 영화다. 그가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 도전한 작품이자, 그의 첫 번째 주연작이다. 하지만 손호준은 호들갑을 떨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출연하기 전에도 비록 작은 역이지만 1년에 한 작품씩 계속 해왔다. 작은 역할을 여럿 하며 1년을 버티던 그때도 재밌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지금의 시간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나라도 더 해나가려는 자세다. 그래서인지 유독 그는 “연기를 배우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그리고 힘을 주어 전한다. “20대 초반에 김상진 감독님의 <주유소 습격사건>(1999), <신라의 달밤>(2001), <광복절 특사>(2002) 등을 봤다. 한국형 코미디물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잖나. 장르물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현장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기보다는 전적으로 감독님을 믿고 따르는 게 최선이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임원희 선배님의 세심한 애드리브도 배울 부분이었고. (김)동욱이 형은 절제된 연기 안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더라. 촬영장에서 많은 걸 공부했다.”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하나라도 더 보고 듣고 느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게 손호준의 바람이다. “누군가가 배우라는 사람들을 떠올렸을 때 내 이름이 곧바로 떠올려지길 바란다.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다.” 올해로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째. 하지만 손호준은 아직 연기에 허기지다. 고교 2학년 때 교회 연극제 무대에 행인으로 출연한 손호준은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느끼고 첫사랑처럼 연기에 빠져들었다. “숫기도 없고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던 성격이었다. 당시 교회 목사님인 아버지의 요청으로 억지로 오른 무대였다. 그런데 내가 던진 대사 한마디에 관객의 웃음이 빵빵 터지더라.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연극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왔는데도 희열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길로 고향인 광주에 있던 극단 ‘진달래피네’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했다.” 그 후 스무살 무렵 서울로 올라왔고 고향 친구인 동방신기 유노윤호의 소개로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언제나 교복 윗도리 맨 첫 번째 단추를 풀어헤치고 제멋에 살던 <바람>의 영주, <고死 두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정신이상을 겪게 되는 고교생 정범 등을 거친 뒤 그는 <응답하라 1994>의 해태를 만나면서 이목을 끌었다. “<응답하라 1994>의 신원호 PD님과 이우정 작가님이 <바람>을 좋아해서 오디션을 보자고 연락해오셨다. 경상도 사투리로 대본 리딩을 끝내고야 PD님이 내 고향이 광주라는 걸 아셨다. 그게 임팩트가 있었나보다. 그럼 전라도로 설정을 바꾸자고 하시며 순천 출신의 해태를 만들어주셨다.” 그 뒤, 신원호 PD의 소개로 그는 나영석 PD를 만나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얼굴로 발굴됐다. <응답하라 1994>로 만난 유연석, 바로와 함께한 tvN <꽃보다 청춘>(2014)에서는 또래 친구들 사이의 해맑은 웃음을, 선배 차승원, 유해진과 함께한 tvN <삼시세끼: 어촌편>(2015)을 통해서는 믿음직한 막내의 매력을 드러내보였다. 그는 이 모든 게 그저 자신에게 찾아온 “큰 행운”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마디라도 더 하고, 한번이라도 더 웃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예능계가 그에게 계속해서 구애의 신호를 보내는 건 단지 운이라고만은 설명할 수 없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조심하려고 한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몇번 본다고 어떻게 알겠나. 섣불리 내 판단대로 상대를 바라보다가 괜히 상대를 언짢게 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침착하고 조용하며 말수 적은 그가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즐거운 예능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다. 그나마 내가 예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건 영석이 형, 우정 누나, 백종원 선생님, 김구라 선배님이 다 만들어주셨기에 가능했다. 그나마 예쁘게 봐주는 분들이 계시다면 예의를 지키려는 내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게 아닌가 싶다.” 상대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치고 들어가는 예능의 화법과 손호준의 그것은 한참 거리가 멀다. “이 타이밍에 들어가면 재밌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예능 선배님들의 말씀을 자르고 들어가고 싶지 않다. 내가 욕심을 부려야 한다면 그건 연기다. 그 욕심, 작품에 다 쏟고 싶다.” 웃기는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예능에서 과묵한 캐릭터인 손호준이 되레 희소 가치가 커지는 효과를 불러온다. 그러나 그 가치는 온전한 자신의 것이 아니며 결국 그가 최종적으로 당도하고 싶은 곳은 연기의 세계임을 확실히 한다.

<쓰리 썸머 나잇>의 개봉 이후에도 그를 기다리는 작품은 계속된다. 8월 방영 예정인 SBS 드라마 <미세스 캅>에서 형사 한진우로 등장한다. 이어서 올해 초 촬영을 마친 영화 <조이>에서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인물 남철웅으로 출연한다. 이후에도 쉬지 않고 다음 작품을 해나갈 생각이다. 데뷔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부지런히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비중 있는 역할을 고루 소화해 보일 예정이다. 그런 그에게 배우로서 욕심을 내봐도 좋을 한해라고 전하자, 그는 말을 바로잡아 온다. “욕심은 아직 이르다. 배우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한해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게 첫 번째다. 물론 나도 도전하고 싶은 역할을 생각해보곤 한다. 어떤 소망을 품고도 있지만 그걸 말할 때는 아니다. 나중에 꼭 말씀드리겠다.” 차분히, 그리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가장 깊은 속내를 다져나가는 손호준. 그가 아직은 부끄러워 꺼내 보일 수 없다는 그 ‘소망’을 전해들을 수 있는 날이 조금 더 일찍 찾아오길 기다려본다.

<바람>

혼돈뿐이던, 하지만 더없이 좋았던

앉은 자세로 다리를 쩍 벌리고 담배를 맥없이 피워대는 고교생 김영주. “정의와 의리로 죽고 사는” 주먹 좀 쓰는 고교 서클의 일원이기도 하다. 친구 정국(정우)에게 자신의 서클에 들어오라고 꼬드기는 데 성공한 영주는 친구와 함께 신나게 서클 활동을 이어간다. 물론, 애들에게 신나게 얻어터져도 본다. 그러다 결국 정학을 받고 말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영주에게는 정국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끝까지 남아 정국을 위로하고 그의 등을 다독여줄 마음이 있는데. 손호준은 세상사 모든 게 호기롭게만 보이던 고교 시절, 죽기 살기로 매달리던 소년들의 의리와 우정이 무엇인지를 영주를 통해 보여준다. “1학년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난 돌아가겠다. 재밌었다. (웃음)” 졸업식 날, 씨익 웃으며 영주가 말한다. 혼돈 속이었지만, 시끌벅적했지만, 그때의 우리는 더없이 좋았다고 웃음과 눈빛으로 전하는 영주, 손호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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