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광태] 이 영화를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을 보길
2015-07-22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손님> 김광태 감독

* 이 기사에는 <손님>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김광태 감독은 한양대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다. <질주>(1999)의 소품팀 참여가 첫 영화 현장 경험. 이후 <로드무비>(2002),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의 연출부와 <청춘만화>(2006)의 조감독을 거쳐 2007년부터 장편 작업에 착수했다. <손님>은 그간 준비하던 두편의 작품이 모두 불발된 후 그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도전한 작품이다. 1950년대, 촌장(이성민)의 철저한 통제와 관리 아래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산골 마을. 우연히 아들과 함께 이곳에 들어선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으로 인해 드러난 공포의 실체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재를 반추하고 있다. 원작인 독일의 구전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한국적 시대극과 잘 접목한 수작. 후반부 쥐떼가 출몰하는 액션 시퀀스에서는 대중영화에서 보여주기 힘든 도전을 감행해 새로운 면모를 선사하는 판타지 스릴러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원작으로 삼은 배경은 무엇인가.

=오래 준비하던 영화가 안 되면서 ‘이제 난 뭘 하지, 큰일 났다’ 싶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항상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그 이야기를 산업스파이물로 푸는 건데, 기술자가 고용 계약되어 회사의 문제를 해결했는데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 결국 그 기술로 집단에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원작이 가진 힘이 워낙 커서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야지 했던 아이템이었다. 집단, 독재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문제에 늘 관심이 있었다. 급한 마음에 이 두 가지를 접목하면 크게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다 싶었다. 요는 빨리 시나리오를 써서 데뷔하자, 였다. (웃음) 초고 30페이지를 열흘 만에 썼다.

-비판의 수위가 센 영화인 데다 액션 시퀀스의 구현도 큰 과제로 작용하는 작품이다. 초고 반응은 어땠나.

=다들 그러더라. 너 영화 그만해야겠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썼다고. 그때 유일하게 이한 감독님만 내 편이 되어주었다. 그분이 내 사수라(<청춘만화>) 감독님한테 모니터 좀 해달라고 보냈는데 보더니 직접 제작을 하겠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마침 <우아한 거짓말>(2014)도 들어가야 할 때라 처음엔 개발에만 참여하려고 했고, 공동대표로 있는 <우아한 거짓말> 제작사인 유비유필름과 인연이 닿게 됐다. 감독님 덕분에 CJ 투자팀과도 연결된 거였고. 이한 감독님은 내가 벼랑 끝에 있을 때 손을 잡아준 분이다. 바로 직전에 3~4년을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심적으로 고통이 너무 컸다. 공소시효가 끝난 후 살인범이 나타났는데 이후 유사범죄가 일어나면서 생기는 일을 그린 작품이었다.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렇게 설정이 같으니 더이상 진행이 불가능했다. 그렇게 좌절을 겪고 나니 너무 절박했다. 이번 기회가 연출을 할 수 있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다.

-독재정권과 정보 통제라는 측면에서 연상되는 비판의 대상이 명확해진다. 은유와 상징을 통해서 보여주려 한 현 사회의 모습은 어떤 건가.

=그간 <남영동1985>(2012)나 <카트>(2014)처럼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영화들은 있었지만 은유적으로 알레고리화해서 보여주는 영화는 없었다. 이 영화의 상징이 너무 뻔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히려 그들이 처단되는 걸 볼 때 느끼는 쾌감도 클 것 같았다. 누구라고 직접 말 안 해도 영화 보면 유추 가능한 인물들이 나온다.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과 비슷한 쾌감인 거다. (웃음) 그런 지점에서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쓰고 어떻게 내 식으로 풀까 고민이 많았는데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로부터 힌트를 얻기도 했다.

-정치적 억압뿐 아니라 고용과 피고용. 깨진 약속, 피의 복수라는 것은 결국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노사관계의 문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영화가 반향을 주려면 지금의 관객을 건드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턴, 비정규직 문제가 지금 노사관계에 있어서 큰 화두라고 생각해서 설정을 가져왔다.

-우룡은 재주가 많아서 그 재주 때문에 발목을 잡히는 사람이다.

=우룡은 마을에 오기 전까지 전국을 떠돌며 약장수를 하던 사람이다. 남을 현혹시키는 직업이고 그 과정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그런 면에서 아주 순진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본은 지키는 사람이다. 우룡과 대치하는 마을 사람들의 가치관은 좀 다르다. 이들은 촌장에게 자발적인 복종을 하는 사람들이다. 촌장의 위협이 있긴 하지만 마을을 떠나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그런데 떠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아왔고, ‘살려고 지은 죄는 용서받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우룡이 연주하는 피리 소리에 어떻게 마음이 움직이는지 보고 싶었다. 피리 소리는 문화이고 문화는 무형의 것이다. 정부가 국민을 통제할 때 제일 먼저 장악하는 것이 문화를 전달하는 방송이다. 우룡이 이 마을로 들어와 일어나는 균열을 보고 싶었다.

-우룡이 체제에 위협을 일으키는 ‘빨갱이’로 순식간에 몰리게 되는 설정은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도 딱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 사건이 준 충격이 크다.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사람도 언론이 간첩으로 규정지으니 한순간에 그렇게 된다. 이념의 논쟁이라는 건 한번 찍히면 풍비박산이 되는구나. 영화의 배경은 옛날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을 봤으면 좋겠다. 과연 우리가 그때와 달라졌는가. 반세기가 지났는데 우리가 그때보다 더 잘살게 됐나, 이런 문제들은 여전히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전시가 아닌 한국전쟁이 막 끝난 후가 영화의 배경이다. 그 시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더 살벌한 시기라고 봤다. 전쟁이 한창일 때는 사람들 모두 앞뒤 안 가리고 생존만을 위해 매달린다. 그런데 그 생의 투쟁이 끝나고 나니 비로소 옆에 사는 사람도 보이고 ‘이 관계가 쓸모가 있나’ 혹은 ‘이 사람이 나에게 왜 접근할까’ 그런 것들에 하나하나 계산이 서는 거다. 영화가 가진 판타지 설정을 가져오기에도 이 시기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지도에 없는 마을’ 풍곡리의 묘사도 숙제였다. <이끼>(2010)의 폐쇄적인 마을이 연상되는 구조인데.

=원래 설계한 마을 구조는 언덕 위에 있는 촌장집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마을 사람들의 집이 있는 모양이어야 했다. 촌장이 시각적으로 마을을 통제하고, 사람들은 촌장이 없어도 그 존재를 느끼게 된다. 스스로 검열, 통제하는 구조인 거다. 이 구조의 마을로 외지인인 우룡이 들어왔을 때 어떤 반응이 생길지 보고 싶었다. <이끼> 세트장 이야기를 많이들 하고 구조상으로는 비슷한데 그건 보존이 안 되어 있어 사용할 수 없었다. 오픈세트를 짓는 건 예산 문제로 불가능했다. 결국 강원도에 있는 <웰컴 투 동막골>(2005) 세트장을 활용하게 됐다.

-전•후반의 간극이 확실하다. 본격적인 액션 시퀀스의 쾌감이 후반전에 펼쳐진다면, 전반은 캐릭터를 설명하는 드라마에 집중한다. 후반부의 강렬함에 비해 전반의 짜임새가 헐거워 아쉽다.

=설정이 극명하게 나뉘는 건 원래부터 의도적으로 한 거였다. 보통 전•후반으로 나뉘어졌다고 보는데 나는 이 영화를 총 3장으로 설계했다. 우룡이 마을의 쥐를 내보내는 게 1장, 아들 영남이 죽는 게 2장, 복수가 최종장인 3장이다. 오래 기다린 끝에 만든 첫 장편이고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최대한 다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멜로나 코믹, 드라마 모든 걸 내가 다 소화할 수 있을지 마음껏 해보았다. 현장 편집본을 보니 욕심이 너무 과했더라. 최종 편집본에서는 앞부분의 캐릭터 정보를 좀 빼더라도 최대한 빨리 진행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 결과 남수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잘려서 그 부분이 많이 걸린다.

-마을을 습격하는 쥐떼의 묘사와 수위 조절도 관건이었다. 대중 장르에서 용인될 수 있는 지점은 어디까지라고 판단했나.

=제작, 투자자들도 소재와 이야기가 좋아서 선택을 했지만 막상 쥐를 보여주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쥐는 공포를 떠나 혐오감으로 다가오지 않나. 초반에는 쥐를 최대한 숨기고 속 시원하게 한번에 풀어버리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지금의 표현 수위가 주저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절충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그 선택과 타협의 흔적이 엿보인다. 호러 장르 팬들에겐 조금 못 미치는 수위이지만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로 보인다.

=클라이맥스가 왜 이렇게 짧냐는 말을 들었다. 분명히 감독판이 있을 거라는 반응도 있더라. (웃음) 최종 편집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고어한 장면들을 찍었는데 블라인드 시사 때 관객 반응이 너무 부정적이어서 덜어냈다. 쥐에 대한 혐오감이 크다는 것과 더불어 기술적 한계도 인정해야 했다.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자세히 보이니 클로즈업으로 가지 말고 최대한 빨리빨리 넘어가야 한다. 이런 템포가 오히려 공포영화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다. 그래도 인물들의 최후 장면 묘사가 더 보여지지 못한 건 아쉬운 지점이다.

-마지막 처벌 장면에 이르러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사실 몇 가지 버전을 찍었다가 지금 것을 선택했다. 위험천만하지만 정점을 찍고 가자는 판단이었다. 우룡은 마을 사람들로 인해 아들을 잃고 복수를 감행한다. 표면적인 복수의 의미를 넘어서 이걸 좀더 알레고리화하자면 풍곡리의 대를 끊고 싶다는 절멸의 의미를 담고 싶었다. 우룡이 이 마을의 심판자, 처단자로서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성장 후 자라난 세대, 그들이 보여주는 부패를 멸한다는 의미다. 세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 결론에 대해서 관객이 의견을 많이 나눠줬으면 좋겠다.

-시사 반응이 뜨거웠다. 안정적인 톤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한국영화에서 보기드문 시도라는 점에서 호응이 컸다.

=지인들이야 좋은 반응을 해주지만 확인해보니 부정적 의견도 많더라. (웃음) 호러 없는 호러영화다, 이런 대배우들을 데리고 어떻게 이런 과감한 영화를 찍었냐는 비판이다. 믹싱 때만 해도 자신 있었는데 시사를 하면 할수록 부족한 면이 자꾸 보인다. ‘한국영화에서’ 라는 단서로 파격적이라고 평가해주시는데, 내가 그다지 새롭다기보다는 그간 한국영화가 안전에 너무 치중했던 건 아닐까 싶다.

-민용근 감독과 대학 동기이자 절친이다. 상대적으로 보자면 데뷔가 좀 늦은 편이다.

=난 영화감독도 철저하게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늘 상업영화 현장에서 일로 영화를 접근해왔다. 그동안 준비하면서 하고 싶은 작품도, 아이템도 많았다.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작품도 하고 싶고 나운규 감독에 대한 전기도 찍고 싶다. 조금 다른 느낌의 슈퍼히어로물도 구상해둔 게 있다. 예전에는 테오 앙겔로풀로스, 에미르 쿠스투리차, 장이모 감독이 영화 선생님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윌리엄 프리드킨이나 존 부어먼, 마이클 치미노 감독도 좋아한다. 앞으로 10년간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흉내내는 작업을 하고 싶고, (웃음) 그 후에도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내 것을 더 찾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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