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과 <숀더쉽>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인사이드 아웃>의 캐릭터 기쁨(Joy)과 슬픔(Sadness)은 일반명사와 구별하기 위해 ‘조이’와 ‘새드니스’로 표기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태희(배두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시키는 것”을 일괄 주문하는 아버지에게 “때리는 것만 폭력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파스카>의 가을(김소희)은 채식을 한 지 오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불고기를 들이민다. “비싼 거야, 먹어. 채식은 혼자 있을 때나 해!” 가을과 스무살 연하 요셉(성호준)의 관계는 멀쩡하다. 둘은 가난하지만 충분히 좋은 삶을 살고 있다. 성실히 일하고, 힘들어도 남에게 고통을 전가하지 않으며 더 약한 존재를 도울 ‘여력’마저 견지한다. 폐인과는 거리가 먼 이 평범한 커플을 위험한 국외자로, 비련의 주인공으로 몰아가는 건 “네게 뭐가 좋은지 내가 더 잘 안다”고 믿는 오만한 사람들의 오지랖이다.
07/09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인사이드 아웃>을 두 번째 관람하다 첫 대사가 <나를 찾아줘>의 그것과 거의 똑같다는 얄궂은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두 영화가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은 딴판이다. 무려 전세계 어린이들의 벽장과 연결된 <몬스터 주식회사> 비명 공장을 디자인했던 야심찬 아키텍트 피트 닥터 감독은, <인사이드 아웃>에 이르러 글자 그대로 우리의 내면을 몽땅 형상으로 끄집어낸다. 크게는 부지 구획부터 작게는 나사 하나에 이르기까지 감정과 기억, 성격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도안한 것이다. 이 영화를 카툰으로 옮기면 어린이 대상의 심리학 그림책으로 써도 되지 않을까 싶을 지경이다. 아니, 그 대목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2주 전 <인사이드 아웃> 시사가 끝나자마자 뇌공학자 정재승 박사께 글을 청탁했으니 곧 훌륭한 주석이 도착할 것이다(이번호 82쪽에 실렸다.-편집자).마지막 만난 자리에서 정재승 선생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이에요. 역지사지의 사고를 경유해 공감에 도달하는 거죠”(인용은 부정확하다)라는 지적으로 또 한 차례 깨달음을 선사하셨다. 그분이라면 분명 픽사의 감정 공학을 세세히 읽어주실 거다. 그때까지 약식으로 <인사이드 아웃>의 구조를 스케치해보기로 한다. 영화 속 현실 세계의 주인공인 열한살 소녀 라일리의 경험은 일종의 유리구슬에 저장돼 감정 컨트롤 본부로 굴러들어온다. 터치패드식으로 장면을 확대하고 회전시킬 수 있는 이 구슬은 지배적 감정의 색을 띤다. 기쁨의 노랑, 슬픔의 블루, 혐오의 초록, 공포의 보라, 분노의 빨강이 구슬의 5원색이자 의인화된 다섯 가지 감정의 피부색이다. 하루가 끝나고 정신이 잠들면 그날 생성된 구슬은 진공 튜브를 통해 본부 외곽의 장기기억 보관소로 날아가고 뒷날 필요할 때 환등기 슬라이드처럼 불려나와 추억을 뇌리에 영사한다. 한편 인성을 형성하는 핵심 기억(core memory)은 별도 핫라인을 통해 다양한 테마로 분화된 퍼스낼리티 섬으로 유입된다. 장기기억 저장소와 개성의 다양한 면모를 대변하는 섬들은,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열차’(train of thought)에 의해 본부와 연결돼 있다. 상황에 대처해 즉각적 감정반응을 결정짓는 자료를 공급하는 것이다. 재치 있는 아이디어도 곳곳에 반짝인다. ‘묘안’들은 재빨리 꺼내 쓸 수 있도록 백열전구 형상으로 본부 선반에 쌓여 있고, 생각 열차 화물칸에 실린 사실(fact)과 의견(opinion)은 외관상 구별하기 어렵다. “걔네들은 원래 되게 비슷하게 생겼어.” 극중 캐릭터는 지겹다는 투로 투덜댄다. 기억저장소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어 덜 중요한 ‘파일’을 주기적으로 삭제해 ‘휴지통’에 해당되는 망각의 골짜기로 폐기처분한다. 단 “영구적으로 지우겠습니까?” 같은 재확인 절차는 없다. 한번 버려진 기억은 무조건 풍화, 소멸한다. 이 영화가 성인 관객의 눈물을 부르는 포인트다. <인사이드 아웃> 세계에서 기억들은 구슬에 갇혀 있지만, 라일리가 스스로 만든 상상과 아이디어는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유년기 공상의 친구인 빙봉(리처드 카인드)이나 꿈꾸는 이상형의 남자친구가 예다. 요컨대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의 초심에 완전히 부합한다. “실사로 찍어서 더 시네마틱할 수 있는 기획은 하지 않는다. 인간 배우와 작업해 더 좋은 영화가 될 이야기라면 하지 않는다.”
07/10
라일리 감정 통제 본부의 다섯 멤버는 상황에 따라 공조해 ‘주인’에게 이롭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콘솔을 잡는다. 여기서 “이롭다”는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영화 속 감정들은 “라일리가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훈훈한 표현을 쓰지만 냉정히 따지고 들면 이들의 작동 원동력은 생물학적, 사회적 생존 본능이다. 주인이 위험을 피하도록, 따돌림 당하지 않도록, 호감을 사도록 각 감정이 돌아가며 키를 잡는다. 선악과 가치판단은 실상 부차적 문제다. 그리하여 라일리가 곤경에 처하면 감정들은 자기를 억압하거나 다른 감정인 척 가면을 쓰기도 한다. 조이(에이미 포엘러)와 새드니스(필리스 스미스)가 본부를 비운 동안 엄마, 아빠 앞에서 라일리가 전에 없이 진심을 비꼬아 표현하는 장면이 잘 연출된 예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도 죽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안도하는 소심이(공포 담당)의 대사는 사실상 본부의 모토인 셈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모험을 촉발하는 중요한 설정은 다섯 감정 요원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주인과 똑같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변모한다는 점이다. ‘팀 라일리’를 이끄는 리더는 기쁨의 담지자 조이지만, 우리는 스쳐가는 장면에서 엄마의 감정 콘솔은 슬픔이, 아빠의 그것은 분노가 지휘하고 있음을 엿본다. 감정 본부의 팀장이 선착순 종신직인지 헤게모니 변화에 맞추어 교체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흥미롭게도 <인사이드 아웃>이 가장 선명히 주제를 드러내는 대목은 이토록 치밀하게 지어올린 메커니즘이 오작동하고 붕괴되는 장면들이다. 복기해보면 이 예쁜 영화는 놀랄 만한 분량과 규모의 파괴를 포함하고 있다. 꼬마 시절 즐기던 실없는 장난이 더이상 재미있지 않다고 소녀가 느끼는 순간 엉뚱섬이 무너지고 이사로 헤어진 친구와 더이상 통하지 않을 때 우정섬이 흔들린다. ‘팀 라일리’와 관객은 서서히 깨우쳐간다. 이것은 막아야 할 종말이 아니라 불가피한 과정이다. 가라앉은 섬의 자리에 다른 섬이 솟구치고 잊혀진 장난감을 다른 쾌락이 대체할 것이다. 픽사는 CGI 스펙터클로, 상실은 성장의 핵심이고 사춘기는 성격이 형성되는 것 못지않게 어린이의 기존 우주가 붕괴되는 시기라는 해석을 표현한다.
07/11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 역사를 통틀어 <인사이드 아웃>은, 공주 아닌 보통 여자아이가 주인공이고 소녀의 엄마, 아빠가 모두 살아 있으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드문 이야기다. 당장 잡히는 기억만으로는 심지어 최초인 것도 같다. 비록 머릿속 세계에서는 대재앙이 일어나고 있으나, 라일리가 현실에서 통과하는 사건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보편적 부류다. 이사와 전학으로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겨우 일상을 재건했던 체험. 영화를 보는 동안 나 역시 여덟살 인생 최대 위기였던 첫 전학 후유증을 잦은 결석으로 극복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라일리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가 아니다. <인사이드 아웃>이 탁월하게 묘사하는 현상은 평균치 중산층 핵가족의 아이, 특히 소녀들이 은연중에 사로잡히는 “나는 항상 행복해야 해”라는 강박이다. 부모는 오직 선의에서 자녀의 모든 부정적 감정을 경계한다. <니모를 찾아서>의 아빠 물고기 말린이 그랬듯, 언제까지나 아이가 세상의 고난과 모순을 모른 채 행복하기만 바란다. 여자아이에게는 밝고 애교스러워야 사랑받는다는 보이지 않는 문화적 압박이 추가된다. 엄마가 이사로 우울해진 딸의 방에 찾아와 힘든 시기에도 행복한 표정을 지어줘서 네가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칭찬하자 라일리는 터져 나오려던 슬픔을 틀어막아버리고 이후 사태는 악화된다. 이것은 열한살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랑하는 부모에게 착한 딸이 되려면, 학교에서 호감 사는 친구가 되려면 긍정적이고 명랑해야 한다는 강박은 성인이 된 후에도 변형된 형태로 지속되곤 한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웃음 에너지를 대체 자원으로 치켜세웠던 피트 닥터 감독은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슬픔을 복권시킨다. 처음 조이는 라일리에게 슬픔을 허하지 않는다. 동료 새드니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분필로 그린 금에 그녀를 가둬두려고만 한다. 그리고 슬픔에 지배된 핵심 기억 구슬을 기어코 제거하려고 무리하다가 비상사태를 초래한다. 하지만 모험이 전개될수록 새드니스의 효용이 입증되고 확장된다. 장기기억 보관소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는 감정이 새드니스라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언제나 현상의 부정적 측면에 집중하지만 뜻밖에 쉽사리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관찰과 성찰에 장기를 발휘한다. 라일리의 문제는 슬픔에 빠진 것도, 분노나 혐오에 사로잡혔다는 사실도 아니다. 억압과 혼란으로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게끔 시스템이 마비됐다는 점이 위기의 본질이다. 이때 오직 새드니스만이 정화(catharsis) 능력을 통해 망가진 콘솔을 리부트할 수 있다. 피트 닥터 감독은 조이가 악역이 되기 직전에 이 원리를 파악하도록 안배한다. 상극인 조이와 새드니스에게 같은 색 머리칼을 준 결정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눈 씻고 봐도 악역이 없는 <인사이드 아웃>에서 굳이 악역을 찾는다면 그것은 시간이다. 영화 초반 관객은 주책맞게 자꾸 기억 구슬을 건드려 푸른 얼룩을 남기는 새드니스를 ‘적대자’로 인식한다. 그녀는 당황해서 번번이 사과한다. “앗, 미안.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새드니스는 무고하다. 라일리의 마음은 다섯 감정의 액션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 거시적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으며, 새드니스를 움직인 힘은 성장이라는 이름의 역사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결말에 이르러, 핵심 기억 구슬을 물들인 푸른 반점은 더이상 불길해 보이지 않는다. 열두살을 앞둔 라일리는 회상이라는 마음의 활동을 처음 알게 됐고 모든 회상은 회한과 애상을 수반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좋았던 시절’로 명명된 기억은 푸르스름하게 얼룩진 동시에 더 진한 황금빛으로 빛난다. 회상하기 시작할 때 유년은 끝난다는 걸 어른인 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체험의 불가역한 일회성과 죽음을 인식하며 비로소 사춘기는 시작된다. 비극도 희극도 아니다.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렴풋한 아름다움이 있다.
07/13
누가 또 열한살인지 아는가? <숀더쉽>의 모험심 강한 양 숀도 라일리와 동갑이다. 관객과의 대화를 애플이 직접 동영상으로 제공하는 팟캐스트 <필름메이커와 만나요>(Meet the Filmmakers)에서 얻은 정보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어른 팬들이 인형 표정 연출의 테크닉,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미래에 관해 심오한 답을 얻은 후 마지막으로 지목된 꼬마가 공동작가 겸 감독인 마크 버튼과 리처드 스타잭에게 벼르고 벼른 질문을 심호흡에 실어 던졌다. “숀은, 몇살이에요?” 좋은 질문이라고 기뻐한 두 감독은 함께 답했다. “우리끼리는 열한살짜리 남자애라고 생각했어요. 질문한 친구는 아직 모르겠지만 난 열한살 소년이었던 적이 있는데 그 나이가 되면 내 세계의 경계를 넓히고 싶어져요. 세상을 탐험하고 싶고 이미 많은 걸 아는 것만 같고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게 싫어져요.”(버튼) “질문자도 벌써 그런 것 같은데요?”(스타잭) “가령 숀은 ‘누르지 마시오’라고 써 있는 단추를 보면 꼭 눌러보는 그런 아이예요.”(버튼) “그렇지만 숀은 피터팬처럼 앞으로도 열한살에 머물 거예요.”(스타잭) <숀더쉽>에 대해 분명한 사실 한 가지도 주인공과 같다. 동시대 풍경의 섬세한 스케치를 무성영화적 아름다움에 담은 이 영화도 세월을 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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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살기
호기심 넘치는 소년 양 숀이, 권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꾸민 소박한 장난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어리바리한 농장주인이 브레이크 풀린 트레일러를 타고 대도시까지 흘러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실종된 것이다. <월레스와 그로밋>에서 실질적 보호자가 강아지 그로밋이었던 것처럼 숀과 친구 양들도 하는 수 없이 팔(?)을 걷고 도시로 향한다. 물정 모르는 집사가 가출해 길을 잃었으니 데려와야지 어쩌겠는가! 모험의 여정에서 양들이 부리는 재주는 인간적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비현실적이만 현실을 초월해 허황된 법은 없다. 예컨대 아드만 캐릭터 상품 중 베스트셀러인 양 배낭으로 위장한다거나 솔거급의 그림 솜씨로 눈을 현혹하는 식이다. 그중 필살기는 바로 양떼 전원의 팀플레이를 요하는 수면 유도 신공. 울타리를 대신할 소품과 약간의 공간만 있으면 대로변에서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