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예술가 브라이언 윌슨의 중요한 시절을 눈과 귀로 들여다보다 <러브 앤 머시>
2015-07-29
글 : 정지혜 (객원기자)

“내 안에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사나? 갑자기 이 모든 게 증발한다면? 그때 난 어쩌지?” 피아노 앞에서 곡을 만들던 브라이언(폴 다노)의 나직한 독백이 <러브 앤 머시>의 시작을 알린다. 브라이언은 1960년대 전세계적인 밴드로 이름을 알린 그룹 비치 보이스의 리더로 승승장구 중이다. 하지만 그의 이 고백에는 뮤지션으로서의 근본적인 궁금증, 고민, 불안이 응축돼 있다. 매번 여름용, 서핑용 음악만 만들어내는 데 지친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운드를 찾아간다. 악기의 미세한 음질의 차를 놓치지 않고, 강아지 울음소리부터 사람의 목소리까지 채집해가며 전설의 앨범 《Pet Sounds》를 완성하고 싶다. 그사이 그는 알 수 없는 환청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한편 영화는 1960년대의 브라이언에서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의 브라이언(존 쿠색)의 모습을 수시로 교차편집해 보여준다. 중년의 브라이언 곁에는 주치의 유진(폴 지아마티)이 버티고 서 있다. 그는 브라이언에게 지금 망상형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고 자신만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유진에게 결박돼 있는 브라이언은 우연히 만난 멜린다(엘리자베스 뱅크스)와의 사랑을 통해 잊고 있던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처럼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브라이언을 오가며 그의 음악과 그의 자아가 조응하고 분열하며 결국 하나가 되는 과정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얼굴 근육의 미세한 떨림과 무기력해 보이는 동작으로 감정의 기복을 표현해낸 폴 다노와 존 쿠색의 연기는 더없이 믿음직하다. 예술가 브라이언 윌슨의 중요한 한 시절을 눈과 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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