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실험영화’라 뭉뚱그려 부르는 영화들은 사실 매우 다양한 결들을 갖고 있다. 오는 8월6일(목)부터 14일(금)까지 열리는 제15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은 각 영화들이 실제로 어떤 형식들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각양각색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올해 네마프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하룬 파로키 감독의 <노동의 싱글숏>(2011~14)을 시작으로 인디스페이스, 미디어극장 아이공 등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특별히 ‘알랭 카발리에 회고전’은 8월8일(토)부터 12일(수)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뤄진다.
이번에 만나는 총 113편의 상영작 중 인상적인 건 영화가 만들어진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전면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선과 악’, ‘좌와 우’의 프레임을 사용하는 걸 넘어 현실과 직면한 문제들이 내포하는 복잡한 맥락을 드러낸다. 먼저 개막작인 <노동의 싱글 숏>은 하룬 파로키 감독이 안트예 에만과 함께 여러 도시에서 진행한 워크숍의 결과물을 편집해 만든 작품이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노동의 풍경을 1~2분 길이의 ‘싱글 숏’으로 기록했을 뿐이지만 이를 한자리에 모았을 때 발생하는 정서적, 미적 효과는 생각보다 강렬하다. 고된 육체노동에서 여성 교통 안내원의 무표정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도시에서 수집한 노동의 이미지는 하룬 파로키의 말대로 세계를 재구축하는 “단단한 단순성”을 보여준다.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무대로 옛 기억을 되새기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어글리 원>(감독 에릭 보들레르•아다치 마사오, 2013)은 70년대 일본영화의 전위에 섰던 아다치 마사오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팔레스타인의 급진운동에 직접 참여하다 감옥에 갇히고 일본으로 강제송환을 당했음에도 꺾이지 않은 그의 치열한 사유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파올로의 꿈>(감독 키리네오스 파파디마토스•지아니스 아브라모포울로스, 2015)은 다큐멘터리라고 하지만 한편의 모노드라마와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남루한 행색의 남자가 폐허에서 노숙하는 내용이 전부인 이 영화는 파시즘에 대한 비난과 무정부주의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면서도 이 모든 것을 씁쓸한 유머로 묶어버리는 흥미로운 태도를 취한다. 블랙코미디적인 유머 감각은 덴마크의 한국계 감독인 제인 진 카이젠이 연출하고 출연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벨린다 입양하기>(2006), <앤더슨가 재방문>(2015), <사랑하는 벨린다>(2015)에서도 느낄 수 있다. 푸른 눈의 아이를 입양한 동양인 부모와 이들을 인터뷰하는 기자는 서로 심각한 대화를 나누지만 그저 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입양을 대하는 사회의 경직된 태도 때문에 쓴웃음이 새어나오고 만다.
또한 <노동의 싱글 숏>과 비교해서 보면 더욱 흥미로운 <알랭 카발리에의 초상>(감독 알랭 카발리에, 1987~92)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차분히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며,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2014년의 베스트10 중 한편으로 꼽은 <천국>(감독 알랭 카발리에, 2014)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자유롭게 오가는 느슨한 형식 속에 녹아 있는 정갈한 리듬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아직 소개하지 못한 105편의 영화가 남아 있다. 상영작들과 다양한 부대행사에 대한 정보는 네마프 공식 홈페이지(www.nemaf.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