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트립 투 유럽]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카오스의 활력, 소멸의 멜랑콜리
2015-08-11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
<카비리아의 밤>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로마는 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동부 해변의 리미니 출신인 펠리니는 18살 때인 1938년 처음으로 로마에 도착했다. 뭘 할지, 어떻게 살지, 막막한 상태였다. 그림 그리기, 드라마 쓰기에서 제법 솜씨를 보였지만 그건 고향에서의 이야기이고, 대도시 로마에선 무슨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몰랐다. 이도저도 안 되면 로마대학에 진학한다는 막연한 계획만 세웠다. 초기작 <비텔로니>(1953)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는 주인공 모랄도(프랑코 인테를렌기)의 심정이 바로 펠리니의 마음일 것이다. 파시스트 정부 아래, 지방 소도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때우는 청춘(‘비텔로니’의 의미)으로는 살 수 없다는 자의식만 있었다. ‘어린’ 아들의 여행이 불안했던지 모친이 로마에 동행했다. 며칠 머물며 아들의 정착을 도왔다. 시도해보고 정 안 되면 고향으로 돌아오겠거니 했는데, 알다시피 펠리니는 일생 동안 로마에 머물며, 로마를 배경으로, 세계영화사에 빛나는 보석들을 빚어냈다.

‘백인 추장’은 로마의 은유

‘시골’ 출신 펠리니에게 로마는 접근 불가였다. 그런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 데뷔작인 <펠리니의 청춘군상>(Luci del varieta, 1951)이다. 단독 연출이 아니라, 당대의 중견감독인 알베르토 라투아다와의 공동연출작이다. 말이 공동연출이지 펠리니는 사실상 라투아다의 지시를 받는 입장에 있었다. 보다시피 훗날 거장이 되는 펠리니의 출발은 화려하지 못했다. 펠리니는 선배감독의 등에 얹혀서 데뷔했다. 영화는 시골을 돌아다니는 유랑극단, 곧 버라이어티쇼 극단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펠리니는 데뷔작부터 일생의 테마가 되는 ‘메타-시네마’로 연출의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을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볼품없는 배우들이 로마에는 입성도 못해보고, 로마 근교의 가난한 중세도시들을 전전하는데, 그런 조건은 영화를 만들겠다며 안간힘을 쓰던 당시 펠리니의 처지와 별다를 게 없었다. 극단의 리더인 케코(페피노 데 필리포)는 신성 릴리아나(카를라 델 포지오)를 발견하여, 로마 연예계의 진출을 노리며 열심히 유명인들에게 접근을 시도하지만, ‘연줄도 돈도 없는 시골 출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절뿐이었다. 말하자면 데뷔작에 나온 펠리니의 주인공은 로마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로마는 꿈의 도시이지만, 수많은 외지인에겐 쓰라린 경험을 안기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동경하는 도시 로마로의 입성은 두 번째 장편이자 단독 연출로는 첫 작품인 <백인 추장>(1952)에서 이뤄진다. 로마는 신혼여행지로 등장한다. 시골 출신의 신혼부부는 들뜬 마음으로 로마에 도착했는데, 그 이유는 서로 달랐다. 신랑은 로마에서 성공한 삼촌을 만나 새 직장을 구하기를 바랐고, 반면에 신부는 잡지를 보며 흠모했던 사진소설(그림이 아니라 사진으로 구성된 픽션)의 주인공 ‘백인 추장’(알베르토 소르디)을 만나길 기대한다.

영화는 많은 외지인들에겐 로마의 첫인상을 남기는 테르미니 기차역에서 시작한다. 승객 대부분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막 도착한 로마 시내를 구경하기 바쁘다. 저 멀리 바티칸 교회가 보이자 신랑은 “로마!”(영화의 첫 대사)라며 짧은 탄성을 내지른다. 로마의 중앙역인 이곳엔 매일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런 북새통의 혼란은 비토리오 데시카가 연출하고,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제니퍼 존스가 주연한 <종착역>(1953)에도 잘 표현돼 있다. <종착역>은 테르미니역에서만 주요 장면을 다 찍은 멜로드라마다. 역이 얼마나 혼잡한지 <백인 추장>의 신혼부부도 사람들 틈에 떠밀려 기차에서 제대로 내리지도 못한다. 이들이 체류할 호텔은 공화국 대통령 관저인 ‘퀴리날레 궁전’(Palazzo del Quirinale) 근처에 있다. 호텔의 창문을 여니 밖으로 대통령궁 앞의 유명한 조각인 높다란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말하자면 신혼부부의 심정은 경복궁 옆에 숙소를 잡은 우리 여행객의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특히 신랑의 얼굴엔 수도의 한복판에 왔다는 자부심이 가득 드러나 있다.

<백인 추장>

영화는 신부가 잡지사가 있는 ‘5월24일 거리’(via 24 Maggio)를 찾아가며 반전을 맞는다. 잡지사는 대통령궁이 있는 바로 그 거리에 있는데, 오래된 도시 로마에 걸맞게 마치 또 다른 궁처럼 보이는 웅장한 건물 속에 있다. 신부는 ‘백인 추장’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여기서 시작되는 반전의 내용은 최근에 우디 앨런이 펠리니에 대한 오마주로 <로마 위드 러브>(2012)에 삽입한 에피소드와 비슷하다. 신부는 얼치기 배우 ‘백인 추장’의 꾐에 빠져 그의 유혹에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고, 신부를 잃었다고 절망한 신랑은 엉겁결에 매춘부의 위로를 받으며 예상치 못한 첫날밤을 보낸다. 말하자면 신혼부부는 들뜬 기분을 안고 로마에 왔지만, 그들이 경험한 것은 순수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는 것들이었다. 로마는 신부가 자주 보는 잡지의 주인공 ‘백인 추장’처럼 화려함으로 유혹하는 가상(假象)이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백인 추장’은 로마의 은유였다.

카라칼라 목욕탕과 매춘, <카비리아의 밤>

19세기 영국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 찰스 디킨스도 괴테처럼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기행문을 하나 남겼다. <이탈리아의 초상>(1846)이 그것인데, 안타깝게도 이탈리아 기행문으로서는 적절한 것 같지 않다.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에서 자주 경고한, 여행자의 부정적인 태도를 시종일관 드러내고 있어서다. 디킨스는 32살 때인 1844년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당대 최고 국가인 영국 사람이어서 그런지 디킨스의 시각에는 이탈리아를 얕잡아보는 오만함이 늘 내재돼 있다. ‘가난하다, 더럽다, 시끄럽다’ 같은 수식어들이 자주 반복된다. 그러면서 콜로세움을 만나면, 잠시 감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런 감탄도 곧 이어지는 ‘콜로세움 안에는 거지들이 너무 많다’ 같은 문장으로 순식간에 망쳐지곤 한다. 괴테는 이탈리아에서 디킨스 같은 오만한 여행객을 종종 만났고, 그 경험도 <이탈리아 기행>에 남겼다. 괴테는 남을 얕잡아보는 사람들을 빗대,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 주로 경솔한 태도를 보인다고 경고했는데, 디킨스는 여행할 때 너무 젊어서 그런지 훗날의 대가의 풍모는 별로 보여주지 못했다.

디킨스가 가는 곳마다 지적했던 ‘가난하고, 더럽고, 시끄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펠리니 영화의 주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다. 그의 영화에는 거의 매번 이런 사람들이 나온다. 로마 배경의 대표작으로는 <카비리아의 밤>(1957)을 꼽을 수 있다. 가난하면 보통 더러워 보이고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목소리는 높은 것 아닌가. 늘 여유와 유머가 돋보였던 펠리니는 이들을 표현하는 데에도 넉넉한 태도를 보였다. 카비리아(줄리에타 마시나)는 매춘부다. 매일 밤이면 ‘고고학 산책로’(Passeggiata Archeologica)로 불리는 유적지 부근으로 나간다. 고고학 산책로는 포로 로마노, 카라칼라 목욕탕, 아피아 가도 등을 잇는 유적지 중심의 산책로를 말한다. 카비리아는 아피아 가도와 가까운 카라칼라 목욕탕에 나간다. 이곳은 밤이면 매춘이 이뤄지는 은밀한 장소로 변한다. 카비리아는 아피아 가도 주변에 있는 로마 인근의 아칠리아(Acilia)에 산다. 사방엔 아무것도 없고, 메마른 들판에 카비리아의 볼품없는 벽돌집이 덩그러니 한채 보이는 대단히 가난한 곳이다. 말하자면 카비리아도 로마에 입성하지 못한 주변인이고, 밤이면 겨우 로마의 경계에 들어와 매춘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최하층민이다.

<카비리아의 밤>은 로마의 밤, 특히 카라칼라 목욕탕 주변 밤 풍경의 아름다움을 기록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도 기록된다. 목욕탕이었던 장소가 섹스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매춘부들은 밤이면 이곳으로 모여든다. 어떤 늙은 매춘부는 늘 같은 장소에 서서, 오늘밤이 마지막 밤이 될 것이라고 허풍을 떤다. 그는 건물 벽의 장식이 종교화의 반원형 같은, 곧 후광 같은 배경의 장소에 서서, 자신이 마치 성인인 듯 행동하고, 따라서 곧 여기를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떠벌리는 것이다. 성녀 막달레나도 한때 매춘부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늙은 매춘부의 억지는 결코 허황된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카비리아의 밤>은 여전히 로마를 동경하지만 밀려난 하층민들, 곧 가난하고 더럽고 시끄러운 사람들과 공감하는 펠리니의 자기연민의 고백인 셈이다.

카라칼라 목욕탕의 밤의 풍경이 아름답기는 이젠 여행객들에겐 기초 상식이 됐다. 이곳에선 여름밤이면 오페라 같은 야외 공연이 펼쳐져 전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카비리아의 밤>에서도 이곳에는 여흥의 기운이 넘친다. 매춘부들은 라디오에서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면 자기들끼리 짝을 맞춰 춤을 춘다. 원래 댄서로 무대 경험을 쌓은 줄리에타 마시나의 매력적인 춤 솜씨가 돋보이는 시퀀스도 여기에 들어 있다. 그렇지만 카라칼라 목욕탕과 춤과의 최고 궁합은 아무래도 <달콤한 인생>(1960)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달콤한 인생>

로마의 바빌론, <달콤한 인생>

로마의 주변을 겉돌던 펠리니의 주인공이 마치 로마의 주인처럼 행세하는 첫 영화가 바로 <달콤한 인생>이다. 주인공 마르첼로(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지역 출신인데, 지금은 로마에 정착해 로마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는 연예계를 휩쓸고 다니는 황색저널의 기자다. 자기 말대로 “로마의 모든 유명인들을 알고” 있는 소식통인데,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은 로마의 신개발지역인 ‘에우르’(EUR)이다. 파시스트 정권 시절부터 개발이 시작된 지역으로, 로마의 중심을 피해 도시 남쪽에 건설된 신거주지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일식>(1962)에서 보듯, 늘 공사가 진행 중인 황량하고 메마른 곳이 바로 에우르다. 주로 여기에서 알랭 들롱과 모니카 비티가 만났다. 말하자면 마르첼로는 로마에 입성했지만 역사적 로마가 아니라, 새로운 이주민들이 입주하던 신개발지역에 정착한 셈이다.

펠리니는 에우르가 현대 로마를 상징하는 장소라고 해석하고 있다. 개발, 모던한 느낌, 효율, 경제적 급성장, 동시에 공허함을 드러낼 때 자주 여기를 찾는다. <달콤한 인생>은 예수 상을 매단 헬리콥터가 로마의 ‘수로 공원’(Parco Degli Acquedotti) 위를 날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로마제국 시대의 수로(水路)가 남아 있는 이 공원의 아름다움은 최근에 파올로 소렌티노의 <그레이트 뷰티>(2013)에서 전위예술가가 퍼포먼스를 벌이던 장소로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헬기는 바티칸의 대성당 위를 지나, 여성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선탠을 하는 옥상 위를 날아가는데, 이곳이 바로 에우르 지역이다. 폐허의 수로와 급격한 대조를 보이는 곳으로, 현대적인 건물들과 자유분방한 여성들의 태도를 통해 1960년의 이탈리아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한눈에 알게 했다.

에우르는 성장, 치부, 섹스, 그리고 공허함으로 상징되는데, 이런 성격을 지닌 옛 로마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펠리니는 ‘베네토 거리’(via Veneto)를 내세우고 있다. 당시에 흥행업계, 특히 영화사들이 몰려 있었고, 언론사들도 여기에 많았다. 저녁이면 스크린의 스타들, 유명 제작자, 이들을 취재하는 언론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마르첼로의 주요 일과는 여기서 동료 사진기자인 파파라초와 죽치고 앉아 뉴스를 낚는 것이다(고유명사 파파라초가 지금은 일반명사가 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파파라초의 복수형이 파파라치다). 우디 앨런의 <로마 위드 러브>에서 졸지에 유명해진 남자(로베르토 베니니)가 자신이 출현했는데도 파파라치들이 더이상 나타나지 않자, 바지를 벗고 난리를 피우는 장소가 바로 베네토 거리다. 다시 말해 펠리니에 따르면 새 로마의 에우르와 옛 로마의 베네토 거리는 거울쌍인 셈이다. 펠리니는 두 지역 모두를 영광과 타락을 상징하는 로마의 바빌론으로 보고 있다.

바빌론적인 쾌락 혹은 낙원의 느낌이 잘 전달된 시퀀스는 역시 카라칼라 목욕탕에서의 춤 장면일 테다. 할리우드의 육체파 스타로 나오는 실비아(아니타 에크베르크)는 자신의 추종자들과 밤에 폐허의 유적지에서 한바탕 춤 잔치를 벌인다. 죽어가는 공간인 폐허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육욕의 달콤함을 유혹하는 에크베르크의 춤은 에로티시즘의 절정처럼 보였다.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생명의 마지막 몸부림 같은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비너스의 탄생’을 빗댄 트레비 분수에서의 마르첼로와의 데이트 장면은 생명(분수)과 사랑(데이트)이라는 동질적인 요소의 결합이라 오히려 순진해 보인다.

<일식>

바빌론적 몰락의 상징적인 시퀀스는 마르첼로의 친구인 스타이너(알랭 퀴니)의 친족살해와 자살 에피소드다. 그가 사는 곳이 바로 에우르이다. 그의 집 주변에는 모더니즘 취향의 새 건물들이 건설돼 있다. 마르첼로가 스타이너를 만나고, 또 스타이너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교회는 ‘성(聖) 조반니 보스코 교회’(Basilica di san Giovanni Bosco)인데, 역시 에우르 지역에 있다.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외양이 이 지역의 다른 구조물처럼 모더니즘 스타일을 띠고 있어 유명하다. 펠리니에게 이탈리아의 급성장과 공허의 불안은 로마의 에우르 지역으로 압축돼 있는 셈이다.

죽음과 카오스, <로마>

펠리니는 대표작 <달콤한 인생>을 인생에서도 한창때인 40살 때 발표했다. 이 작품 이후 펠리니는 작가감독으로는 드물게,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성공을 거두며, 감독으로서는 탄탄대로를 걷는다. 50대에 접어든 펠리니, 곧 젊음의 활기와는 약간 멀어진 펠리니가 다시 로마를 집중 조명한 작품이 <로마>(1972)이다. 그래서인지 <로마>에는 펠리니 후기작들의 주요 테마인 ‘죽음’이 자연스럽게 표현돼 있다.

<로마>의 이야기는 두 시기로 나뉘어 전개된다. 18살 펠리니가 처음 로마에 왔을 때와 현재의 로마로 양분돼 있다. 과거의 로마는 픽션으로, 현대의 로마는 다큐멘터리로 찍혔다. 과거의 로마는 혼란스럽고 시끄럽지만 동시에 활기가 넘친다. 사람들은 여름이면 밖에 나와 스파게티를 함께 먹으며 즐거워한다. 반면에 현대의 로마는 말 그대로 카오스 그 자체다. 영화는 현대 부분의 도입부에서 로마의 경계를 마치 반지 모양처럼 돌고 있는 순환도로(Raccordo Anulare) 주변을 비춘다. 이 도로는 2013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성스러운 도로>(감독 지안프랑코 로시)의 주요 배경이었다. 비가 내리는 도로는 몰려든 차들로 극심한 정체를 이루고, 그 와중에 손수레, 마차, 고삐 풀린 말들이 동시에 지나다니고 있다. 말하자면 순환도로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온갖 교통수단이 서로 뒤엉켜 있는 카오스, 그 자체다. 펠리니에 따르면 현대의 로마가 바로 순환도로처럼 카오스라는 의미일 터다.

게다가 아쉽게도 현대의 로마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펠리니 전문가인 툴리오 케치치가 지적했듯, 로마에 존재하던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도 수많은 역사적 유물이 매장돼 있는 도시의 지하는 지하철 공사로 매일 허물어지고 있고, 지상은 매연을 뿜어대는 차들의 물결로 여기저기 망가지고 있다. 아마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지하철 공사 중 발견된 로마시대의 벽화가 소멸되는 순간일 것이다. 천년 이상 매몰돼 있었을 벽화는, 그 오랜 시간을 버텨냈지만 새롭게 공기를 만나자마자 아쉽게도 연기가 사라지듯 순식간에 없어진다. 펠리니는 로마의 운명도 곧 사라질 것처럼 보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영화는 죽음을 상징하는 큰 낫으로 시작한 뒤, 오토바이를 탄 한 무리의 청년들이 콜로세움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끝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영원의 도시’ 로마도 죽음의 운명은 피할 수 없으리란 펠리니의 애도의 마음이 표현돼 있는 것이다. 그 필멸의 운명에서 펠리니 자신의 소멸까지 성찰하는 것은 물론이다. <로마>가 멜랑콜리의 비관주의로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일 터다.

다음엔 영화적으로 볼 때, 로마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베네치아에 가겠다. 물 위에 지어진 인공도시, 곧 사랑(물)과 죽음(인공도시)이 공존하는 수수께끼 같은 도시가 베네치아다. 베네치아는 카사노바의 고향이다. 우선 사랑의 도시로서의 베네치아를 여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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