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젊은 남녀에게 불어닥친 죽음이라는 사건의 파장 <그리울 련>
2015-08-12
글 : 김현수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는 태우(정경호)의 아내 희연(정윤선)은 원인 모를 불치병을 앓고 있다. 병실에 누워 세상을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희연은 태우에게 자꾸만 자신의 물건 모두를 불태우라고 강요한다. 태우는 희연이 자신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더욱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병실만 가면 희연의 짜증을 받아줘야 하고 회사에서는 무료한 날뿐이며 딱히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자가 태우의 눈앞에 나타난다. 그는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어딘지 아파 보이기도 하는 묘령의 여인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온다. 그러고는 여자에게 따뜻한 목욕을 시켜주고 옷과 음식을 주며 호의를 베푼다. 태우는 분명 아무런 사심 없이 여자를 도와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병실에 누워 있는 희연에게서 조금씩 마음이 멀어지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마침 그때 태우는 희연에게서 오랜만에 외출을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반가워한다. 태우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희연과 오랜만에 평범한 데이트를 즐긴다. 하지만 이들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태우는 희연 몰래 그녀의 장례 절차를 준비해야 한다.

한철수 감독의 <그리울 련>은 영정 사진 한장조차 어떻게 준비하고 간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젊은 남녀가 주인공이다. 영화는 이들에게 불어닥친 죽음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에 주목한다. 연인의 죽음으로 인해 다가올 모든 일상의 변화를 미리 대비해야 하는 태우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데 훨씬 공을 들인 것이다. 물론 병으로 다시는 서로를 안을 수 없게 된 두 남녀의 성적 욕망을 대변해주듯 등장하는 묘령의 여인(후지이 미나)이라는 설정은 너무나 작위적이다. 하지만 다소 무거운 소재임에도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진중한 문제의식을 뮤직비디오처럼 아기자기한 영상을 통해 풀어낸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2015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전 익스프레스 부문에 초청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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