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 <꾸뻬씨의 행복여행>(2014) <박스트롤>(2014) 목소리 출연 <더 월즈 엔드>(2013) <스타트렉 다크니스>(2013) <판타스틱 피어 오브 에브리싱>(2012)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2011) <황당한 외계인: 폴>(2011) <버크 앤 헤어>(2010) <나니아 연대기: 새벽 출정호의 항해>(2010) 목소리 출연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아이스 에이지3: 공룡시대>(2008) 목소리 출연 <하우 투 루즈 프렌즈>(2008) <런, 팻보이, 런>(2007) <뜨거운 녀석들>(2007) <빅 낫싱>(2006) <미션 임파서블3>(2006) <랜드 오브 데드>(2005)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드라마 <스페이스드>(1999)
몸이 근질근질해서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다. <미션 임파서블3> 때만 하더라도 사이먼 페그가 연기한 벤지는 사무직에 지나지 않았다. 작전 해결의 중요한 단서였던 ‘토끼발’의 정체를 에단 헌트에게 알려줬던 CIA 데이터 처리 센터의 그 컴퓨터 전문가 말이다. 굳이 사이먼 페그가 아닌 누가 맡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단역이었다. 그러다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벤지는 사이먼 페그의 인장이 깊숙이 새겨진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현장요원 에단 헌트가 임무를 성공할 수 있도록 원격에서 지휘하고, 가끔 상황 파악을 못해 IMF 팀원들과 관객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웃음을 유발했던 그다. 10년 가까이 두편 연달아 참여하면서 정이 붙었던 까닭일까. 사이먼 페그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시나리오를 꽤나 기다렸던 모양이다. “다음 시리즈를 제작한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정말 신났다. 그 뒤로는 시나리오에서 벤지가 제발 죽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대본을 기다렸다.” 벤지가 죽을 리가 있나. 오히려 앞의 두편에 비해 비중이 커졌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까지만 해도 몸보다 머리를 주로 써왔던 벤지가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서 처음으로 책상 앞을 벗어나 현장으로 나섰다. 위기에 빠진 조직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 정부가 IMF를 해체하면서 벤지를 포함한 에단 헌트, 브랜트(제레미 러너), 루터(빙 레임스) 등 IMF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에단 헌트는 정체불명의 조직 신디케이트로부터 공격을 받고 몸을 숨기고, 브랜트와 벤지는 CIA로 전근된다. CIA로부터 에단 헌트의 소재를 알고 있을 거라는 의심을 받고 있던 중 벤지는 CIA 몰래 에단 헌트를 만나 그와 함께 신디케이트에 맞서는 일에 동참한다. “톰 크루즈와 사이먼 페그는 전작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보여준 것보다 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프로듀서인 J. J. 에이브럼스의 말대로 이 영화에서 벤지는 IMF 조직이 해체돼 고립된 에단 헌트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믿을 수 있는 친구다. 에단 헌트와 벤지, 둘은 생사를 걸고 신디케이트의 정체를 파헤친다.
“저는 현장 근무가 더 좋습니다.” <뜨거운 녀석들>에서 사이먼 페그가 연기한 경찰 니콜라스 엔젤의 말대로 사이먼 페그는 직접 뛰고 구르고 고생해야 사는 캐릭터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던 <미션 임파서블3>나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벤지,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명석한 두뇌로 엔터프라이즈호를 위기에서 구해낸 기술 장교 스코티처럼 블록버스터영화에서 참모 역할을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한 관객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사이먼 페그에게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 <더 월즈 엔드>에서 보여준 자신의 캐릭터를 종횡으로 확장시킨 작품이다. 때로는 말 많고 유머러스한 데다가 의리가 넘치고, 또 때로는 상황에 대책 없이 휘말려 곤경에 처하는 남자 말이다. 그것도 ‘뚱땡이’ 닉 프로스트가 아닌 톰 크루즈와 함께. “현실 에서 나와 톰 크루즈의 관계는 벤지와 에단의 그것과 비슷하다. 물론 에단 헌트를 연기한 톰과 실제 모습의 톰은 살짝 다르다. 그는 정말 재미있고, 그에게 장난을 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모로코에서 카 체이스 신을 찍을 때 우리는 몰래 상대방 좌석에 있는 히터를 켜는 장난을 쳤다. (웃음).”
그렇게 가까워진 사이먼 페그와 톰 크루즈처럼 벤지와 에단의 관계 역시 과거 시리즈에 비해 더욱 끈끈해졌다. 사이먼 페그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벤지가 에단의 가장 열렬한 팬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위험한 상황을 함께 헤쳐나갔고, 그 결과 벤지는 에단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항상 에단의 뜻을 따르던 벤지가 영화 초반부에서 ‘다시 CIA로 돌아가라’는 에단의 명령을 거부하는 장면은 흥미롭다.” 사이먼 페그가 말한 장면도 둘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어 끈끈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벤지가 에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장면도 꽤 애잔하다.
할리우드영화 오타쿠인 그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스타트렉> 시리즈, 현재 후반작업 중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 최전선에 있는 프랜차이즈영화에 출연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꽤 흥미롭다. 1993년 런던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 생활로 배우 경력을 시작한 그는 1996년 <어사일럼>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1999년 친구 에드거 라이트가 연출한 영국 <채널4>의 시트콤 <스페이스드>가 인기를 모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고, 2004년 닉 프로스트와 함께 각본을 쓰고 에드거 라이트가 연출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가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2007년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 그리고 에드거 라이트, 세명이 다시 뭉쳐 <뜨거운 녀석들>을 내놓았고, 모두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2008년 사이먼 페그는 <하우 투 루즈 프렌즈>에서 단독으로 주연을 맡게 되고,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서 스코티를 맡아 엔터프라이즈호에 승선했다. 닉 프로스트, 에드거 라이트 등 오랜 친구들과 함께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 <황당한 외계인: 폴>을 만들며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무한한 애정과 오마주를 바쳐왔고, 연기력도 갖추었기에 그가 할리우드의 굵직한 프로젝트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건 아주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출연하게 된 사실이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하다. “되돌아보면 내 커리어나 인생에서 이같은 일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계획된 일도 아니고. <스페이스드> 같은 시트콤에 출연했을 때 훗날 <미션 임파서블>이나 <스타트렉>에 출연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규모의 산업이 된 현재 할리우드에 대한 아쉬움도 많다. “<스타워즈> 이전에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한 영화들은 주로 <대부> 시리즈, <택시 드라이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프렌치 커넥션> 같은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펙터클한 영화만 박스오피스에서 흥행한다. 모든 게 바뀌었다. 뭐, 그게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차기작은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들로 포진되어 있다. 일단 8월14일 영국에서 개봉한 코미디영화 <앱솔루트 애니싱>에서 초능력에 심취한 학교 선생님을 맡았다는데, 너무 잘 어울린다. 앞에서 언급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12월18일 북미 개봉한다. 직접 각본에 참여한 <스타트렉 비욘드>는 더 넓은 우주로 날아가 촬영하고 있다니 사이먼 페그가 뛰고 구르면서 할리우드의 관습을 비트는 모습을 원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친구 또 없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서 벤지가 에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장면을 보면서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사이먼 페그가 연기했던 숀은 엄마, 여자친구, 친구와 함께 좀비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단골 펍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좀비의 공격을 받아 좀비가 된 엄마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가슴 아파한다. 시종일관 유쾌하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이 부분만큼은 숀의 감정을 최대한 담아내려고 애쓴다. 이 영화를 포함한 그가 출연하거나 각본을 쓴 영화 대부분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과의 우정을 공들여 다룬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벤지가 매력적인 것도 어쩌면 자신보다 친구를 먼저 생각하고, 걱정해서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