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키초 러브호텔> さよなら歌舞伎町
감독 히로키 류이치 / 각본 아라이 하루히코, 나가이 후토시 / 촬영 나베시마 아쓰히로 / 음악 야스이 신 / 출연 소메타니 쇼타, 마에다 아쓰코, 이은우, 미나미 가호, 마쓰시게 유타카 / 수입•배급 스마일이엔티 / 제작연도 2014년 / 상영시간 135분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제공 케이블TV VOD
21세기 일본의 <천변풍경>이 여기에 있다. <가부키초 러브호텔>은 제목 그대로 가부키초의 한 러브호텔을 중심으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룬 옴니버스영화다. 환락가로 유명한 가부키초에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든다. 영화는 그들을 단순히 ‘밑바닥’으로 치부하는 대신 한명 한명의 사연에 귀기울인다. 타카하시(소메타니 쇼타)는 한때 오다이바의 특급호텔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러브호텔의 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러브호텔에는 일하는 사람부터 잠시 찾아오는 손님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오간다. 한국인 유학생 혜나(이은우)는 이리아라는 가명으로 남자친구 몰래 콜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남자친구의 반대에 부딪힌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경찰 커플도 있고, 보도방에 팔아버리려고 꾀어 호텔로 데려온 가출 여고생에게 마음을 빼앗긴 어설픈 조폭도 있다.
<바이브레이터>(2003)로 섬세한 감성을 잡아내는 솜씨를 증명했던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 다시 한번 자신의 장기를 발휘했다. <바이브레이터>의 각본을 맡았던 아라이 하루히코의 소설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감독의 초기작에서 보였던 따뜻하고 선한 시선으로 넘쳐난다. 인물들은 자리에만 앉으면 각자의 신세 한탄을 시작하는데 어느샌가 그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특별한 연출도 없다. 그저 카메라를 걸어놓고 가만히 듣는다. 비결은 단순하다. 인물들의 내뱉는 사연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각 인물의 사연 곳곳에 현재 일본의 병폐와 부조리를 끼워넣는다. 원전 폭발과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와 상실감, 청년실업, 거리 곳곳의 혐한 시위와 재일한국인이 받는 차별 등 일본 사회의 민낯이 각자의 사연 속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 영화가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심각하게 설교하거나 동정하는 대신 무한한 낙관을 품고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다는 점이다. 심각할 수 있는 상황마다 가볍게 깔리는 경쾌한 음악은 이 영화의 태도를 대변한다. 하룻밤이 지난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가부키초를 스쳐지나간 사람들은 어제와 다름없이, 꺾이지 않고 오늘을 산다. 내일도 그럴 것을 알기에 이 착한 사람들의 하루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영화다. 전체적으로 담백한 가운데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엔딩은 근래 나온 일본영화 중에서도 기억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