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슈아 오펜하이머] “내게 영화는 거대한 거짓말의 틈에 균열을 일으킬 쐐기를 박는 작업”
2015-09-09
글 : 송경원
사진 : 오계옥
<침묵의 시선>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액트 오브 킬링>(2012)을 두고 벌써부터 2000년대를 장식할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라고 평하는 이들이 있다. 굳이 그들의 성급함을 지적하고 싶지 않은 건 충분히 그만한 파괴력이 있는 문제적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무려 72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액트 오브 킬링>은 과거와 벽을 쌓고 있던 인도네시아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는 중이다. 영화가 사회를, 나아가 역사를 변화시킬 쐐기가 된다는 건 이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상찬만 들리는 건 아니다. 몇몇 평자들은 이른바 외부인의 시선으로 제3세계의 문제에 접근하는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계몽적인 태도를 두고 불편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2년 만에 들고 온 <침묵의 시선>은 이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전작 <액트 오브 킬링>과 서로 호응하는 쌍둥이 영화다. 형식도, 질문도, 관점도 전혀 다르지만 두 영화는 서로의 빈틈을 보완하며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액트 오브 킬링>은 피해자의 시점에 집중한 <침묵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조슈아 오펜하이머에게 영화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인 그의 대답은 마치 잘 정돈된 논문처럼 다듬을 필요도 없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사람을 매료시켰다.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상대와 호흡하는 법을 아는 이 명석한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쏙 빼닮았다.

-전작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침묵의 시선>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결정했나

=‘침묵의 시선’은 이 프로젝트 전체의 주제다. 보이지 않는 공포와 침묵, 공포가 낳은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목 자체는 <액트 오브 킬링>보다 훨씬 일찌감치 결정됐다. <침묵의 시선>은 <액트 오브 킬링>의 후속작이 아니다. 반대로 <액트 오브 킬링>이 <침묵의 시선>의 동반자 역할을 해준다고 보면 적절할 것 같다. <액트 오브 킬링>의 원제는 <프리맨>이었는데 <침묵의 시선>에 조응할 수 있게끔 제목을 바꾼 거다.

-<글로벌리제이션 테이프>(2002) 완성 후 2003년 인도네시아에 다시 찾아갔을 때, 대학살에 희생된 람리의 이야기를 접했다고 들었다. 동생인 아디도 그때 처음 만난 건가.

=맞다. 2001년 야자유 농장 조합 이야기를 찍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첫 방문했다. 수마트라 오지의 사람들은 군부독재가 끝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1965년 대학살 때부터 현재까지도 공포 속에 살고 있다. 그 공포가 현재를 어떻게 잠식하는지 알고 싶었다. 2003년 아디를 처음 만나 피해자 가족과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찍기 시작했는데 3주도 채 되지 않아 군인들이 촬영을 막았다. 아디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우리에게 촬영을 중단하지 말고 가해자들이라도 찍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처음엔 가해자들을 만나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이내 가해자들이 자신의 만행을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고 그 모습을 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2년 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해자들을 만났다. <액트 오브 킬링>의 안와르 콩고는 41번째로 만난 사람이었다. 그 후 5년간 <액트 오브 킬링>을 찍었다. 그러니까 <침묵의 시선>이 훨씬 먼저 시작했고 <액트 오브 킬링>은 그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물인 셈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죄의식이 제거된 가해자들의 민낯이 현재진행형이란 점에서 충격이었다.

=2003년 1월 북수마트라 강가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학살의 가해자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아끌며 해맑게 학살의 그날을 재현했다. 그건 광기나 악의와는 다른 차원의 체험이었다. 비유하자면 홀로코스트 후 나치가 승리를 해서 다들 나치의 활동을 칭송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무엇이 이들로부터 수치심과 후회를 앗아갔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날 강가에서 일기를 썼다. ‘2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자. 하나는 가해자들이 스스로의 죄의식을 과장된 수사로 감추는 모습, 다른 하나는 그런 가해자들의 행동이 피해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찍자’라고. 비단 인도네시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중국, 인도, 남미를 비롯해 많은 국가가 공포를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지 않나.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공포에 억눌린 침묵의 현장은 초현실적인 공상과학 속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하고 싶었던 현실이다.

-<침묵의 시선>은 매우 직접적이다. 아디는 가해자들을 찾아가 자신이 희생자의 동생이라는 걸 밝히는데, 가해자들이 아직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시도가 아닌가.

=그 말처럼 인도네시아에서 희생자가 가해자를 만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땐 아디가 주인공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7년간 <액트 오브 킬링>을 찍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아디는 어느 날부턴가 가해자들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만나서 왜 그랬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사과를 받으면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위험한 일이라 처음엔 말렸다. 하지만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공포의 감옥에서 자신의 아이들은 자유롭게 살도록 하고 싶다는 아디의 설득에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촬영을 시작했을 땐 <액트 오브 킬링>이 공개되지 않았던 시기여서 다들 우호적이었다.

-영화 중 지역 간부 중 한명이 아디를 향해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공산당 짓이다. 계속해봐라”라며 협박한다. 학살로부터 긴 시간이 지났지만 위협은 여전한 것 같다.

=시작 전부터 위험해진다고 판단되면 즉시 중단할 거라고 아디에게 수차례 말했다. 받고 싶은 사과를 받을 수 없을 거라고도 경고했다. 그럼에도 아디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중에 <액트 오브 킬링>의 파리 시사회에서 아디는 내게 “내가 당신을 이용했어요”라고 고백했다. 자기와 같은 수백만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대변할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져 다행이라고도 했다. 아디와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감화된 셈이다.

-상대를 똑바로 응시하는 아디의 태도에 가해자들은 시선을 외면하거나 화를 낸다.

=가해자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사과를 요구하면 화를 내고 패닉에 빠진다. 그건 내가 무서워서도 아디가 무서워서도 아니다. 아디의 질문이 거울이 되어 자신의 양심과 죄책감을 들여다보는 게 불편한 거다. 그들 스스로 정당화시켰던 거짓말이 무너져내리고 새로운 거짓말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당황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그들의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공포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침묵하고 있는 현재에 대한 기록으로 봐야 하나.

=정확하다. 두 영화는 반응, 거짓말, 침묵, 수치심에 관한 영화다. 가령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침묵을 탁월하게 포착해냈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침묵의 순간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아디와 가해자들 사이에 대화가 끊어졌을 때, 그들이 점점 더 불편해지는 걸 아디가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게 했다. 이를 위해 양쪽의 표정과 시선을 관찰할 수 있도록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곤 항상 카메라 두대를 사용했다.

-그 말처럼 <침묵의 시선>은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이 서로에게 반응하는 모습을 관찰한다.

=<액트 오브 킬링>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과거에 일어난 학살을 재현하거나 들려주는 게 목적이 아니다. 지금 현재 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요된 침묵의 근원을 들여다보기 위한 영화다. 사실 영화는 말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매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침묵과 시선, 상태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아디가 만난 가해자들은 자기가 말하면서도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보다는 그들의 행동, 태도, 침묵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사운드의 활용이다. 여느 다큐멘터리보다 영화적인 연출이 도드라지는데.

=대개 다큐멘터리에선 사운드 후반작업을 1, 2주 안에 끝내지만 <침묵의 시선>은 16주나 걸렸다. 이유는 이 영화가 다름 아닌 침묵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우선 모든 사운드를 제거하고 그 위에 상태에 따라 사운드를 하나씩 입혀갔다. 가령 아디와 어머니가 대화를 나눌 땐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대한 표현이다. 서로의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순간을 통해 관객 역시 그 자리에 동참하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었다. 나는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 사이가 빈 공간이 아니라 희생자들의 영혼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들과 대면하는 순간의 빈 공간마다 그들의 존재를 느끼도록 하기 위해 귀뚜라미 소리를 집어넣었다.

-풀벌레 소리, 새소리, 자동차 소음 등 다양한 사운드가 화면에 구애받지 않고 사운드 몽타주에 의존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브레송이 말했듯 영화음악을 까는 대신 사운드 자체가 영화음악이 되도록 만들고 싶었다. 같은 귀뚜라미 소리라도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했다. 가령 아디와 그의 어머니가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땐 죽은 형이 그들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하나의 트랙을 활용해 귀뚜라미 소리를 냈다. 반면 넓은 야외에서 트럭들이 이동하는 장면에선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이 합창하듯 16개의 트랙을 활용해 귀뚜라미 소리의 합창을 만들었다. 이러한 활용은 아디와 가해자들이 마주할 때 더욱 극적으로 표현된다. 아디와 가족들이 보여주는 위엄, 차분함, 우아함과 대조적으로 가해자들은 과장된 행동과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만약 당신이 이 영화를 집에서 봐야 한다면, 최상급의 스피커가 없다면 꼭 헤드폰을 끼고 보길 권한다. 그만큼 사운드를 통해 표현한 것들이 많다.

-<액트 오브 킬링>의 새로운 접근법에 대부분 경탄을 보내지만, 한편으론 불편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당신이 재현을 위해 영화적 연출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영화적 연출을 과시하기에 적합한 이야기를 찾은 게 아니냐는 거다. 더불어 제1세계 지식인이 무지한 이들을 계몽하고 바꾸려는 태도가 묻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의 윤리에 대한 이같은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마도 영화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빚어진 오해 같다. <액트 오브 킬링>은 과거를 파헤치는 게 아니라 과거에 종속당한 현재에 관한 영화다. 여기에 과장된 연출, 영화적 표현을 위한 연출을 한 적은 없다. 가해자들의 연극은 그 자체가 현실에서 가해자들이 벌이고 있는 몽상과 합리화 과정을 드러낸다. 과장이 있다면 그것까지 모두 그들의 현실 인식의 반영인 셈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물론이거니와 <침묵의 시선> 역시 재현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해 받아들이는지,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가시화시키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여기에 그들을 일깨우거나 가르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침묵의 시선>의 경우 종종 지나치게 예쁘고, 때론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굳이 그렇게 찍을 필요가 있었나.

=<침묵의 시선>은 굉장히 섬세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려움에 떨며 살아온 사람을 그냥 봤을 때 그게 두려움이란 걸 알긴 어렵다. 50년간 삶 속에 녹아 온 공포를 가시화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일상, 삶의 흔적들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예를 들어 이마의 주름, 피곤하고 늙은 아버지의 육신, 창틀에 수북이 쌓인 먼지 같은 것들이다. 만약 여기에서 목가적인 이미지가 보인다면 그것들은 아름다운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 유지해온 일상이 얼마나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었는지를 표현해 가해자들의 세계와 대조시키기 위함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마무리하겠다. 당신에게 다큐멘터리란,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우리가 함께 만들고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다. 저널리즘이 새로운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면 영화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변화를 위해서는 그전에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나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지 않다.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려 한다. 과거의 이야기를 그대로 실어 나르는 건 게으른 방식이라 생각한다. 내가 찾는 건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거짓말의 틈에 균열을 일으킬 쐐기를 박는 거다. 영화라는 도구 안에서 우리가 평상시 인식하지 못한 것들을 불편하다고 느낄 만한 지점까지 밀어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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