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 살인마의 아들인 영도(태인호)는 마을 주민들에게 증오의 대상이다. 학교에선 퇴학당하고, 어디서든 시비가 붙어 경찰서를 제집처럼 드나들기 일쑤다. 제대로 된 일자리마저 구하기 힘든 영도는 친구 꽁(김근수)과 함께 사채업자들과 일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부모를 죽였으니 심장을 받아가겠다는 여자, 미란(이상희)이 나타난다. 남편이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니 심장으로 빚을 갚으라는 것. 영도는 미란이 신경 쓰인다. 한편, 사채 수금을 하는 그에게 돈을 못 갚는 부모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는 것 역시 괴로운 일이다. 영도는 점점 폭력적이 된다. 운명은 계속해서 그를 옥죄어온다.
죄와 대속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원치 않게 죄를 짊어진 한 남자가 파국을 향해 치닫는 모습을 가학적으로 그려낸다. 환영과 실재를 오가며 한 인간의 밑바닥까지 들춰내는 연출은 집요하고 심미적이다. 영도는 대속을 요구하는 세상에 침을 뱉지만, 침은 제 얼굴로 떨어지고 죄는 쳇바퀴처럼 있던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의 삶에 한 여자가 들어온 것은 중요한 사건이다. ‘살인마의 아들에게 살인마의 피해자가 찾아온다’는 설정엔 확실히 흥미를 동하게 하는 ‘훅’이 있다. 그러나 영화는 오로지 영도의 가혹한 운명을 묘사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다가 그 설정을 놓쳐버린다.
놓쳐진 설정은 빈 액자처럼 작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론 우연적인 전개의 연속이다. 영화는 영도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수차례의 ‘알고 보니’들로 사건을 전개하고, 도식적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퍼즐의 밑그림이 적나라하게 보이는데, 심지어 어떤 퍼즐은 잘못 맞춰져 있다. ‘미란 남편의 정체’라는 퍼즐은 특히나 불필요했던 것이다. 그의 존재에 사족을 달자, 복수를 목표했던 미란이라는 인물은 흐려지고 역할을 잃는다. <미생>의 성 대리 역을 맡았던 배우 태인호의 연기 변신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