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무채색의 세계에서 색깔을 가진 소년이 태어나다 <창백한 얼굴들>
2015-09-09
글 : 이예지

모든 것이 흑백인 행성에 색깔을 가진 소년 민재가 태어났다. 민재를 학대하던 부모는 자살해버리고, 세상 밖에 나선 민재는 괴물로 몰려 경찰에 쫓겨다닌다. 암살단 두목은 민재를 거둬 총 쏘는 법을 가르친다. 민재는 두목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의 명령대로 사람들을 죽이지만, 그 역시 민재를 도구로만 볼 뿐이었다. 민재는 자신을 강간하려는 암살단 두목의 동생을 죽이고 암살단의 다른 두 아이와 함께 도망친다. 두목은 그들을 쫓고, 두 아이는 민재를 신고해 현상금을 탈 꿍꿍이를 숨긴다. 민재는 하늘을 날아 다른 행성으로 가는 꿈을 꾼다.

어제의 일만은 아니다. 어느 시대든 범주를 달리할 뿐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비정상으로 간주된다. 비정상에 대한 공포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가장 극단적으로 단순한 예는 피부색이다. <창백한 얼굴들>은 가장 쉽고 직관적인 예시로 아직도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을 직유한다. 무채색의 세계에서 혼자 노란 피부와 붉은 피를 지닌 민재는 끊임없이 배척당하고, 믿었던 사람들 역시 그를 배신한다. 그의 절망이 깊어질수록, 하늘을 날아 다른 행성으로 가고픈 갈망 또한 깊어진다. 최소한의 선만으로 그려진 단순한 얼굴, 컷아웃 기법, 흑백의 색채로 표현되는 이 작품에선 꼭 필요한 한순간, 일광과 함께 실사 장면이 들어온다. 그때의 해방감과 감동은 오롯이 진짜다. 한국영화 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 애니메이션 5기 작품이자 2015 홀란드애니메이션필름페스티벌(HAFF)에서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스타일”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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