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는 뮤지션이 불시에 발매한 싱글 앨범 같다. 정규 앨범 같은 묵직한 맛은 없지만, 귀를 사로잡고 이후의 곡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엔 충분하다. 제9회 대단한단편영화제가 9월10일(목)부터 16일(수)까지 7일간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열린다. 압축된 이야기로 관객을 압도할 39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개막작은 올해 특별전에서 소개되는 홍석재 감독의 단편 <과월 사랑세 납부 고지서>와 배우 김수안의 <콩나물> 등 2편이다. 경쟁부문 진출작 25편 중 재생목록에 추가할 곡을 선정하는 마음으로 추천작을 엄선했다.
소재주의는 비판받는다. 신선한 소재는 이목을 끌 수는 있지만, 거기에만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횟감> 같은 신선한 방식이라면 지지하고 싶어진다. 일용직을 전전하는 주인공이 모처럼 쉬는 날 아는 형, 누나와 함께 회를 먹기로 한다. 그때 하필 이삿짐센터 사장의 호출이 떨어지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초반 횟감을 비추는 화면을 기타 사운드에 맞춰 편집한 독특한 인트로가 등장한다. 그저 뮤직비디오 화면처럼 보였던 시퀀스가 극이 진행될수록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누군가의 손에 매달린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청춘의 답답한 현실이 펄떡인다. <횟감>과 함께 생각해볼 만한 작품으로는 <스파이 특례입학 전형>이 있다. 보이지 않는 조종자에 의해 서로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학생들의 모습은 경쟁을 통해 자멸하는 청춘을 은유한다. 공무원 시험 통과라는 현실에 강박되어 있던 남자가 비로소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을, 그리고 타인의 모습 속에 나를 보는 <절대 연필> 역시 함께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오디션>이 다루는 청춘의 모습은 팍팍하다 못해 처절하다. 수빈은 배우 오디션에 늦지 않으려고 택시를 탔다가 택시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의자에 코를 박아 코피가 난다. 사고를 수습하다 보니 시간은 도리어 지체됐다. 급히 인사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서 빨개진 코를 파우더로 열심히 가린 뒤 오디션장에 도착했지만, 마지막 그룹에 대한 오디션이 진행 중이라 오디션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당신 같은 부류 알고 있다는’ 투의 담당자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자학은 세상을 원망해도 바뀌는 것은 없으니 아무튼 삶을 살아내야 하는 청춘이 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선택지다. 이는 씁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디션에서도, 바깥의 현실에서도 변명을 일삼아야 하는 청춘을 위한 작은 변명 같은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우박>은 현실에 대한 반영도가 높은 일종의 SF영화다. 무채색 도시의 아침, 한 여자가 지하철로 출근한다. 일터에 도착한 여자는 사방이 가로막힌 좁은 방에 들어가 타자기를 두드린다. 반복된 타자기 소리에 졸음이 쏟아져 꾸벅거리던 여자는 익숙한 소리에 섞여든 낯선 소리에 놀라 깨어난다. 캐릭터의 대사를 제거하면서 소통이 가로막힌 사회를, 색채를 제거하면서 빌딩에 둘러싸인 무채색의 사회를 잘 녹여냈다. 대사를 제외한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 밖에 청춘의 연애를 다룬 몇 가지 작품이 주목된다. 과거 있는 여자에 대한 통념을 전면화한 <방과 후 티타임 리턴즈>, 사건과 그것에 대한 해석, 그리고 재현의 문제를 제기하는 <영상편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