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진짜 마을 주민이 된 기분으로 연기했어요”
2015-09-11
사진 : 백종헌
글 : 이예지
<순정> 촬영현장

김소현(가운데)에게 가까이 다가가 연기 디렉션을 주는 이은희(왼쪽) 감독. 약봉투 접는 법까지 섬세한 지도가 이어진다. “종이접기 교실에 온 것 같다”는 김소현. 감독과 배우보다는 다정한 언니와 동생처럼 보인다.

연준석(오른쪽)이 순간 대사를 잊자 빵 터진 배우들. NG가 나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면 배우들은 프로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대립하는 범실(도경수)과 수옥(김소현)을 친구들이 지켜보는 장면이다. 왼쪽부터 김소현, 연준석, 주다영, 도경수. 오가는 눈빛이 진지하다.

“수학여행 온 것 같아요.” <순정>의 도경수, 김소현, 이다윗, 연준석, 주다영. 산골에서 막 튀어나온 차림새의 또래 배우들이 입 모아 외친 말이다. KTX를 타고 4시간, 승합차를 타고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전라남도 고흥 아평교회. 논밭밖에 없는 이곳에서 약 두달간 함께 지낸 배우들은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이다윗 왈, “서로가 유일한 낙이다. 할 게 없으니 손장난하면서 논다. 밤새 수다 떨다 해가 떠 촬영하러 나간 적도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이다윗의 쉴 새 없는 애드리브에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현장은 여고 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였다. 화기애애한 무드의 또 다른 공신은 이은희 감독이다. 이번이 장편영화 입봉인 이은희 감독은 배우에게 친밀하게 다가가 조근조근 귀엣말로 연기 디렉션을 하며 거리감을 좁혔다.

현장의 분위기는 영화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순정>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첫사랑과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오늘의 촬영 분량은 인물들이 드물게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 수옥(김소현)을 좋아하는 범실(도경수)이 그녀가 따르는 군의관(김권)의 속내를 알고 대립하는 신이다. 방금 전까지도 장난을 치던 배우들이건만, “롤” 소리가 들리면 바로 프로의 모습이다. 군의관을 똑바로 응시하며 분노를 폭발시키는 도경수와 뺨을 쳐놓고 금세 눈물이 고이는 김소현. 리허설 후 몇 테이크 가지 않고 시원하게 오케이가 떨어진다. “원래 화를 내는 성격이 아니”라는 도경수는 “안 하려던 걸 하다 보니 몸이 저리다”고. 이은희 감독은 “자기답지 않은 것을 충분히 소화해냈을 때 저린다는 표현을 쓴다”고 설명했다.

이젠 사투리가 더 편하다는 배우들은 촬영하지 않을 때도 종종 사투리로 대화했다. 감독은 “도경수는 주민체육센터에 가서 운동하고 김소현은 대중목욕탕에 다니며 고흥을 몸으로 익히더라”고 귀띔했다. 소탈한 복장에 볕에 탄 피부까지, 완연한 마을 주민이 된 그들은 “뭐든 느리지만 그게 당연하고, 인심이 좋아 뭘 사도 잔뜩 주는” 고흥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곳에서 촬영하다보니 애써 시대를 재현하려 하지 않아도 당시로 돌아간 것 같다”는 이다윗의 말처럼, 평화로운 현장은 배우들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도경수는 “이 마을에 사는 동네 친구들이 된 기분으로 연기했다. 여태까지 도경수로 살아오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는 고백을 해왔다. 행복했던 현장의 기운은 영화 <순정>에 그대로 담길 터. <순정>은 9월 중순경 크랭크업하며 내년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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