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자음악 그룹 탠저린 드림을 이끌고 있던 에드거 프로스는 1973년 영국의 버진 레코드로부터 계약을 맺자는 전화를 받는다. 보통 크라우트 록(Kraut Rock)이라고 불리는, 독일 전자음악에 심취된 소수 팬들을 겨냥해서 음악을 만들던 프로스의 입장에서는 당시 신생 레이블로 성공을 거둬 영국과 미국에 배급망을 갖추기 시작한 버진 레코드의 제안에 아마도 무척 고무되었을 것이다.
버진 레코드는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음반 제작사가 아니라 런던 노팅힐 게이트에 위치한 작은 레코드 가게였다. 이 가게의 문을 연 리처드 브랜슨과 닉 파월은 유럽 대륙의 프로그레시브 록과 전자음악 음반들을 직접 수입해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사업은 소수지만 광적인 런던 컬트팬들로 인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러자 브랜슨과 파월은 음반 가게에 머물지 않고 음반 제작에 직접 뛰어들기로 결심했는데, 그렇게 해서 그들이 제작한 첫 번째 음반은 당시 열아홉살의 마이크 올드필드가 여러 악기를 연주하고 이를 오버더빙해서 만든 《튜브러 벨스》(Tubelar Bells)였다. 순식간에 밀리언셀러가 된 이 음반은 버진 레코드를 독특한 색깔을 지닌 막강한 신생 레이블로 만들어놓았다.
《튜브러 벨스》의 대성공은 음악 그 자체의 신선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앨범이 발매됐던 1973년, 같은 해에 개봉되어 박스오피스를 뒤흔든 윌리엄 프리드킨의 영화 <엑소시스트>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되었다는 점도 크게 주요했다. 다시 말해 프리드킨은 버진 레코드의 성장에 한장의 초석을 깔았고 그렇게 해서 버진으로 영입된 탠저린 드림은 다시 프리드킨과 만나 인연을 맺게 된다. 물론 당시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프리드킨이 탠저린 드림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엑소시스트>의 서독 개봉 때였다(그러니까 아마도 1973년). 뮌헨의 폐허가 된 한 성당에서 있었던 탠저린 드림의 공연을 보고 그는 이 전자음악 트리오에게 <엑소시스트2>의 음악을 맡겨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에드거 프로스는 심령영화와 미니멀리즘 전자음악이라는 그럴싸한 조합에 마음이 그리 내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무튼 <엑소시스트2>와 탠저린 드림의 프로젝트는 진전되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의 결정이 한번 더 일어났다. 1년 뒤 파리에서 프리드킨은 프로스를 만나 새로운 영화 <소서러>의 시나리오를 건네며 음악을 제의했고 프로스는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프리드킨은 외관상 훨씬 어울릴 것만 같은 심령영화를 거절한 이 미니멀리즘 전자음악가들에게 어떻게 정글 로드무비 시나리오를 건넬 생각을 했으며 반대로 이 독일의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들과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시나리오를 보고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잘 알려졌다시피 <소서러>는 조르주 아르노의 소설을 바탕으로 1953년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연출한 <공포의 보수>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한글로 표기된 것을 보면 도무지 그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이 제목은 아마도 영미권에 알려진 제목 <Wages of Fear>를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그래도 그렇지 ‘wages’를 ‘급여’가 아닌 ‘보수’로 번역한 것은 일부 보수주의자들에게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엉뚱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원제목인 <Le Salaire De La Peur>를 보면 ‘두려움에 대한 급여’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클루조의 영화는 공포, 두려움에 관한 영화다. 남미의 한 유전에 대형 화재가 나자 남미로 굴러들어온 막장인생의 네 남자가 이 불을 끄고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다이너마이트(이 다이너마이트는 약간의 진동에도 쉽게 폭발한다)를 트럭에 싣고 320km의 정글과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공포와 그에 따른 갈등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윌리엄 프리드킨의 <소서러>(‘마법사’라는 의미의 이 제목은 다이너마이트를 운반하는 트럭의 이름이다) 역시 이 줄거리를 따르고 있고 그래서 프리드킨은 자신의 영화를 조르주 클루조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리드킨은 이 영화를 공포의 영화가 아니라 악몽의 영화로 각색했다. 이 부분이 <공포의 보수>와 <소서러>가 가장 대별되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제작이 2년여 동안 시간을 끄는 동안 음악감독이 랄로 시프린으로 교체되었고 시프린은 작곡을 거의 끝마쳤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원래의 계획대로 탠저린 드림에게 음악이 돌아간 이유는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악몽의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탈리아 갱단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한 성당을 털다가 신부를 총으로 쏘고 사고로 동료를 모두 잃은 재키(로이 샤이더)는 친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칠레 남단에 있는 오지 마을 포르베니르로 숨어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매일 피범벅이 된 동료들의 모습을 보는 악몽에 시달린다. 불안함과 기약 없는 피신에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이 오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운반하고 상금을 타는 위험천만한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를 운반하는 여정은 이를 무사히 옮길 수 있을까 하는 공포의 여정이 아니라 도무지 그 길을 알 수 없는 미로의 여정이다. 그 미로는 트럭이 출발하면서부터 불안하게 반복적으로 흐르는 탠저린 드림의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통해 하나의 악몽이 된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트럭이 다 썩어 문드러진 밧줄 다리를 건너는 대목에서 폭우와 트럭의 굉음을 뚫고 멀리서 들려오는 탠저린 드림의 음악은 수많은 유령들의 합창처럼 음산하기 그지없다. 총상을 입은 닐로(프란시스코 라발)가 숨을 헐떡이며 운전석 뒤편에서 숨을 거둬갈 때 재키의 귓가에는 닐로의 웃음소리가 환청이 되어 계속 들린다. 그리고 “내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라는 재키의 독백 뒤로 마치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신시사이저의 파열음은 황량한 들판을 헤매는 낡은 트럭을 이름 모를 어느 행성으로 옮겨다놓는다. 음악은 끔찍한 현실을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악몽처럼 만들어버린다.
물론 모든 음악이 오로지 악몽인 것만은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다이너마이트를 옮긴 재키는 마을로 돌아와 약속된 수표를 받고 이제 그 오지를 떠나려 한다. 그때 남루한 이 마을의 술집에는 찰리 파커가 현악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전설의 명연주 <나는 4월을 기억할 거예요>(I’ll Remember April)가 흐른다. 재키는 그 술집을 청소하는 여인에게 다가가 함께 춤을 추자고 권한다. 찰리 파커의 연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꿈결처럼 아름답게 수놓는다. 비록 그 순간에 술집 바깥에는 재키를 죽이러 뉴저지에서 칠레의 깡촌까지 찾아온 갱단과 배신자인 그의 친구가 택시에서 내리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음악이란 끔찍하고 또 아름답다. 현실을 이토록 악몽으로 혹은 일장춘몽으로 만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