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가난한 청춘들의 사랑 <션샤인 러브>
2015-09-16
글 : 문동명 (객원기자)

몇년째 노량진 고시촌에서 생활하며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길호(오정세). 여느 때처럼 만화책과 무협지에 빠져지내던 중에 고시원 동료(송삼동)의 약속 장소에 함께 나가고 그곳에서 대학생 때 자신을 짝사랑하던 정숙(조은지)을 만난다. 옛날답지 않은 그녀의 세련된 모습에 호감을 느낀 길호와 여전히 그를 마음에 두었던 정숙은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한다. 소박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길호의 답답한 수험 생활과 정숙 어머니의 반대로 이별을 맞이한다. 시험을 접어두고 무협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한 길호는 다시 정숙을 찾아간다.

노량진 고시촌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션샤인 러브>는 성과 없이 지지부진한 고시 생활을 이어가는 가난한 청춘을 줄곧 비추지만 한시도 암울한 무드에 쏠리지 않는다.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한 길호와 정숙의 알콩달콩한 사랑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따르지만, 구김살 없는 영화의 전반적인 무드와 잘 섞이며 기분 좋은 감상을 남긴다. 이에 대한 공은 배우 오정세와 조은지의 말끔한 연기에 돌려야 할 것이다. 격앙된 감정 없이 일상적인 순간을 구현할 때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두 배우인 만큼 주인공 커플의 별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그래서일까, 후반부로 흐르며 감정의 피치를 올릴수록 영화는 오히려 더 밋밋해진다. 안타깝게도 <션샤인 러브>는 이별 후의 이야기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판타지가 가미된 현실보다는 차라리 현실 그 자체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크다. 소박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션샤인 러브>는 은근히 많은 곳에서 자잘한 장치들을 마련했다. 다만 성공적인 쓰임은 아니다. 단조로운 이야기를 감안해 준비된 장식들은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기는커녕 흐름을 방해하는 사족으로 남는다. <다찌마와 Lee>(2000)를 연상시키는 키치적인 영상과, 무성영화풍으로 꾸며 여기저기 배치된 시퀀스들은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촌스럽다는 느낌만 전달한다. <은하철도 999>를 모티브 삼은 판타지는 극 전체를 떠받치지 못한 채 희미한 소재로 자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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