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 x cross]
[trans × cross] 현실을 직시하는 만화 그리겠다
2015-09-21
글 : 김현수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제9회 대단한단편영화제 ‘대단한 디자인 프로젝트’ 참여한 김보통 작가

언론에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얼굴 없는 만화가’, 김보통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니 탈을 쓰고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터뷰 당일, 아쉽게도 탈이 제작 중인 관계로 지참하지 못한 그는 바짝 자른 머리에 헌팅캡을 눌러쓴 채로 카페에 들어섰다. 사진을 찍을 때는 기자가 출력해온 질문지를 빌려 검정 매직펜으로 눈, 코, 입을 쓱쓱 그려넣고는 얼굴을 가렸다. 데뷔작 <아만자>로 2014년 오늘의 우리만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고 현재 <D.P-개의 날>을 연재하며 날카롭게 현실을 캐묻는 신예 김보통과의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요새 엄청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허리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웃음)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이 많아 글쓰고 강연 나가고 앨범과 책 표지, 영화 포스터 작업, 어린이 잡지, 문예 잡지 등에 삽화와 만화도 그린다. 서울시와 기업체 등과 일하기도 한다.

-얼굴 노출을 꺼리기에 외부 활동을 안 할 줄 알았다.

=활동은 하지만 실체가 있는 나를 노출하는 건 싫다. 결과물로서만 보여주고 싶다. 완전히 숨기는 건 아니다.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찍어준다.

-민감한 소재인 탈영병 잡는 헌병이 주인공인 <D.P-개의 날>의 작가라는 게 이전 군대 동료들에게 알려지면 문제가 생길까.

=전혀 의식 안 하는 건 아니다. 군 생활이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고, 내가 잡은 탈영병 가운데 결국 누군가는 감옥에 갔고 전과자가 됐으니까. 사촌 형도 헌병이었는데, 제대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지하철 타면 아는 사람이 있는지 주변 사람들의 얼굴 먼저 훑어본단다. 누구에게 언제 해코지 당할지 모르니까.

-만화가로 데뷔하게 된 과정이 독특하다.

=트위터하다가 데뷔했다.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뭘 하며 살까 고민하던 차에 ‘맞팔’ 친구인 최규석 작가가 회사원 소재의 만화를 그려보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안했다. 왜 나한테? (웃음) 그런데 최규석 작가와 처음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회사원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면 전국의 직장인들이 볼 텐데 직장 생활 경험 있는 작가가 거의 없으니 한번 그려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게다가 올레 웹툰과 연결도 시켜줬다. 그런데 내가 포트폴리오를 <아만자>로 제출했다. 아직 내 직장에 대해 객관적으로 그릴 자신이 없어서였다. 올레쪽에서도 <아만자>는 연습 삼아 그려보고 다음엔 회사원 만화를 해보자고 했는데 이렇게 점점 멀어지고 있다. 5년 안에는 회사 만화를 그릴 거다. 윤태호 작가가 <미생> 시즌2까지 그리고 나면 그때 쯤 시작하지 않을까? 분명 내가 묻힐 테니까 <미생>과 겹쳐서 진행하지는 않을 거다.

-데뷔작 <아만자>와 <D.P-개의 날>은 소재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아만자>는 동화 같은 이야기, 즉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절대로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인물을 표현할 때도 선과 선의 경계를 열어 회색빛의 열린 선으로 구성하고 색상도 파스텔 톤으로 화사하게 꾸몄다. 반면에 <D.P-개의 날>은 검정색의 닫힌 선으로 구성했다. 이 만화를 배경과 채색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 3명과 그린다는 걸 알면 다들 깜짝 놀란다. 현재 고료 가지고는 매회 적자다. 그만큼 열심히 신경 써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외주 작업을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현재 두 작품 모두 드라마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D.P-개의 날>은 영화화 제안이 많았는데 결국 드라마로 계약했고 제작사를 알아보는 중이다. 만화는 군대가 배경인데 주인공이 복장에서 자유로운 헌병이고 외부로 돌아다니니까 아이돌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도 머리를 자르지 않고 출연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일 것 같다. 게다가 장르적으로도 탐정 수사물에서 스릴러까지 활용도가 높다. <아만자>도 현재 드라마 제작 문의가 와서 논의 중이다.

-9월10일 개막한 9회 대단한단편영화제의 ‘대단한 디자인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상상마당과는 <셔틀콕> 아트북 작업을 하면서 연을 맺었다. 올해는 대단한단편영화제 출품작인 유은정 감독의 <싫어>를 보고 포스터 작업을 했다. 단지 기능공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아서 웬만하면 내 만화를 아는 감독님의 작품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마침 유은정 감독이 나를 알고 있더라. <싫어>는 지방 도시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와 언니 집에 얹혀살면서 재수를 준비하는 여학생의 이야기다. 그녀가 얽힌 모든 상황이 폭발하는 이야기라고, 그런 그녀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포스터에 담아보려 했다.

-<D.P-개의 날>은 가난이 범죄를 낳는 삶의 굴레와 부조리한 군대 시스템의 문제가 교차한다.

=가족사가 복잡한 주인공 안준호 역시 가해자일 수도 있다. 제목부터가 결국은 ‘개의 날’이라 씁쓸한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다. 안준호도 무책임한 거 아니냐는 독자들은 이 만화의 맥을 정확히 짚고 있다. 안준호는 정의의 용사가 아니다. 사실 나의 실제 군 생활은 만화보다는 좀 가벼웠다. 그래서 더욱 경계에 서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지만 이 시스템에서 맞물린 채 갈려나가는 나사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갈려나가는 나사들을 볼 수 있었다. 거기서 느끼는 괴리감, 공포심을 강조하고 싶었다.

-<아만자> 역시 실제 경험이 투영된 만화 같다. 환자의 심리 상태 묘사나 병실 내부, 심지어 의사와 간호사의 대사까지도 디테일이 생생하다. 오랜 간병 생활 경험에서 나온 묘사인가.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셨다. 그때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경험이 반영됐다. 그러니까 <아만자>는 아버지 덕분에 그릴 수 있었던 만화인 셈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만화가로 데뷔한 ‘김보통’이라는 작가의 필명에서 전해지는 아이러니가있다. 작가가 원하는 보통의 삶이 다른 누군가는 특별하다고 여길 수 있다.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게 보통의 삶일 수 있지만 그 길을 못 가겠다고 벗어나서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삶이 보통의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은 평범하다고 여기며 사는 그들의 방식이 오히려 어렵고 특별한 것일 수 있다.

-현재 <내 멋대로 고민상담>도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레진코믹스에서도 유료 만화가 아닌데 조회 수와 인기가 많아서 의아해한다. (웃음) 주로 10대에서 20대들이 사연을 많이 보내오는데, 학업 고민뿐만 아니라 성폭행, 가정불화, 질병 등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물론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의 인생사를 생각해야 하니까 작가로서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고민상담을 하듯 스스로의 고민에 대해 질문하던 시기는 언제였나.

=지금 한다. 나는 이전에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귀기울이며 살지 않았다. 고민상담을 하면서 결국은 나한테 ‘이게 왜 고민일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부끄럽지만 뒤늦게 자기성찰을 하고 있는 거다. 이전까지는 멋대로 살았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금에서라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만화와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이 작품에 많이 투영됐나.

=<물의 가족>을 쓴 마루야마 겐지가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의 의무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아만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현실을, <D.P-개의 날>에서는 우리가 군대에서 살아 돌아왔다 해서 문제없이 군대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 여전히 사람들은 자살을 하며 가혹행위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 <내 멋대로 고민상담>도 현실은 현실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보통의 취향도 궁금하다. 뭘 좋아하나.

=힙합, EDM, 하우스 뮤직 장르의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퇴직금으로 디제잉 기계를 사서 디제이를 해볼까 생각한 적 있다. 내년에는 한번 해볼까? (웃음) 기타노 다케시 영화도 좋아한다. 그의 영화에 담겨 있는 침묵의 순간을 좋아한다. 언젠가는 그런 침묵을 보여주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 윤태호 작가의 <야후>, 김수정 작가의 <아기 공룡 둘리> <일곱개의 숟가락>, 후루야 미노루의 <두더지> 등을 좋아한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며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그림을 너무 못그려서 영향받았다고 말하기 부끄럽다.

-만화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혹자는 현실을 잊기 위해 만화를 보기도 하겠지만. 가장 좋은 최근 사례로는 <송곳>이 있지 않나. <아만자>는 현재 미국 호스피스협회에서 교재로도 사용하고 있고 아주 미약하게나마 바꿔나가는 지점들이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가급적이면 현실을 잊는 게 아니라 직시하게 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 독자들이 봐줘야 할 텐데. (웃음)

<D.P-개의 날>

현재 <한겨레> 토요판과 레진코믹스를 통해 연재 중인 김보통 작가의 최신작이다. 단행본은 2권까지 출간된 상태. 가난과 불우한 가족사를 등에 업고 사는 주인공 안준호가 탈영병을 쫓으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제로 작가 본인이 헌병대 군무이탈체포조(D.P)에서 근무했던 경험과 지금도 여전히 자행되는 군 내 사건사고 사례가 반영된 만화다. 부조리한 군대 시스템 문제뿐만 아니라 가난의 굴레에 빠져 사는 이 시대 하층민을 핍박하는 계급 문제까지도 들여다보게 만드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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