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동화 <피터팬>의 프리퀼 <팬>
2015-10-07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영국의 한 고아원, 외로운 소년 피터(리바이 밀러)는 어느 밤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멀고도 낯선 네버랜드로 끌려간다. 해적왕 검은 수염(휴 잭맨)이 통치하는 네버랜드는 아직은 아이들의 낙원이 아니다. 끝없는 광산 노동이 이어지는 황량한 계곡일 뿐이다. 사기꾼 후크(개릿 헤드룬드)와 어리숙한 해적 스미의 도움으로 광산을 탈출한 피터는 원주민 공주 타이거 릴리(루니 마라)를 만나 엄마에 대한 비밀을 듣게 된다. 자신이 검은 수염에 맞설 예언의 주인공 ‘팬’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터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조 라이트의 <팬>은 잘 알려진 동화 <피터팬>의 프리퀼로서, 적어도 초반까지는 판타지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사례인 양 전개된다. 피터의 처지는 가혹한 현실, 평범한 재능, 사랑의 결핍 등 고아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분명 관객은 플라잉 해적선을 타고 네버랜드에 도착해 검은 수염을 만나게 되기까지 빠른 전개, 경이로운 스펙터클, 장엄한 음악에 감성적으로 압도당할 것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카라 델레바인 등 화려한 조역진과 한국 액션배우 나태주의 등장도 보는 즐거움을 자극한다.

하지만 ‘검은 수염’의 존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고, 아직까지는 갈고리 팔이 아닌 멀쩡한 손을 지닌 후크의 개성이 분명치 않은 점이 아쉽다.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은 네버랜드를 점유한 어른들의 술수로 오염되어버렸다. 바람둥이 사기꾼 후크의 면면은 <인디아나 존스>를, 소년들이 황토빛 계곡에서 카리스마형 독재자에게 착취당한다는 점에서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환기시킨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처럼 환상 밖의 냉혹한 현실을 병치했지만 <팬>에 등장하는 소년의 모험은 적잖이 할리우드적 진부함을 답습한다. 샘 레이미의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처럼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그 언저리에 놓일 법한 프리퀼 판타지다. 이렇듯 많은 영화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아 정작 조 라이트의 <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분명한 강점을 호소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싶다. 빠르고 현란하지만 어딘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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