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 감독이 <조금만 더 가까이>(2010) 이후 오랜만에 장편 <최악의 여자>(가제, 제작 인디스토리)로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최악의 여자>는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도 다르게 행동한다는 점에 착안한 멜로드라마다.
-여주인공 은희가 세명의 남자들과 얽히고설키며 내적인 갈등을 겪는다는 영화의 내용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조금만 더 가까이>의 은희(정유미)와 현오(윤계상)의 에피소드를 연장시켜봤다. <최악의 여자>는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에 인물들이 갈등하는 이야기다. 서로가 어떤 관계이냐에 따라 동일 인물도 상대에게 다른 면모를 보이기 마련인데 그걸 영화로 풀면 재밌겠더라. 여기에 거짓말을 하다가 궁지에 몰리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를 같이 엮어봤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단편들을 엮은 옴니버스물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이야말로 긴 호흡으로 찍는 첫 번째 장편 같다.
=그렇다. 길게 찍으면서 스스로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 이제는 지나가버린 나의 연애 감정들이 영화에 녹아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찍는 게 재밌기도 하다. (웃음) 촬영은 길지 않은 17회차를 예상하는데 러닝타임은 장편이다 보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잘 챙겨서 찍어야겠다.
-은희와 현오 역의 한예리, 권율과는 한국영상자료원의 40주년을 기념해 연출한 <아카이브의 유령들>(2014)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한예리씨는 시나리오가 그리고자 하는 방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줘서 리딩하면서 의견을 많이 주고받았다. 권율씨는 자기만의 에너지를 가지고 캐릭터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민해 와줘서 고맙다.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로 국내 관객에게 얼굴을 알린 이와세 료도 합류했다.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보고 이와세 료와 작업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3만 관객을 돌파해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났다. 실제로 작업을 해보니 더없이 좋다. 연기를 하지 않은 듯 편안하게 연기를 하는 배우다.
-대부분의 촬영이 서촌과 남산에서 이뤄진다. 서촌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동네이고 남산은 서울예대 재학 시절 즐겨 찾던 곳으로 안다.
=글을 쓰거나 영화를 찍을 때 내가 아는 공간을 활용하길 즐긴다. 내가 그리는 연애의 감정은 모순적이고 냉소적인데, 그런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간은 낭만적으로 보이면 좋겠다. 그 사이의 괴리감에 관심이 간다. 또 과거와 달리 서울이 많이 변했고 또 앞으로도 변할 테니 지금의 서울을 담아두고 싶다.
-주인공 대부분이 길에서 만나 함께 걷는다. 걷는 장면에 유독 집중한 이유가 있나.
=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을 때 내 안의 화를 삭이기 위해 참 많이도 걸었다. (웃음) 걸을 때 생기는 건강한 에너지가 있다. 그런 걸 놓치고 싶지 않아 영화 안으로 가져와봤다.
-<최악의 여자>라는 가제가 꽤 인상적인데.
=남자들에게는 은희가 최악의 여자일 수 있다. 하지만 은희의 이런 마음의 변화가 누군가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잘못인지는 섣불리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제목을 이대로 계속 갈지 좀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