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펑크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리더 나잠 수가 애니메이션 <안녕, 전우치! 도술로봇대결전>(이하 <안녕, 전우치!>)의 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2006년 파격적인 아라비아풍 컨셉과 흥 넘치는 립싱크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인디신의 이단아로 등장한 밴드다. 멤버 보강을 거치며 2010년 발매한 EP 《그루브 오피셜》부터 라이브 밴드로 변화한 그들은 2013년 정규 1집 앨범 《The Golden Age》를 통해 1960~70년대 레트로풍의 음악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냈고, 2014년에는 한국 뮤지션 최초로 영국 최대 음악페스티벌인 글래스톤베리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독보적인 색채의 음악과 ‘똘기’로 무장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리더 나잠 수는 어떤 사람일까. 공연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워내고 단정한 재킷을 갖춰 입은 그를 붕가붕가레코드 사무실에서 만났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연 당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리더로서 인터뷰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때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일원으로서 인터뷰에 임한 거니까.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흥겨운 퍼포먼스를 겸하는 밴드 아닌가. 밴드로서의 정체성에 맞게 들떠 있었지. (웃음) 오늘은 차분하게 나잠 수의 음악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나잠 수의 음악관을 알기 위해선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역사를 짚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디신에서 파격적인 립싱크 퍼포먼스로 주목받지 않았나.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디스코에 대한 관심과 키치적인 B급 컨셉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에 결성한 밴드다. 술탄인데 디스코를 하자. 그게 최초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당시엔 실력이 부족해 데모 음원을 틀어놓고 춤만 췄다. 그런데 홍대 인디신에서는 가요 방송처럼 AR을 틀어놓고 립싱크 퍼포먼스를 하는 게 역설적인 메타 패러디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실력 부족 때문에 불가피하게 립싱크를 했던 것뿐인데 말이지. (웃음) 아마추어에 가깝던 시절이다.
-현재는 본격적인 정통 디스코/펑크 장르를 선보이는 밴드다. 밴드의 정체성 변화는 나잠 수의 변화이기도 했을 것 같다.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된 심정으로 수련한 결과다. (웃음) 드럼, 베이스 세션 멤버를 보강했고 1960~70년대의 디스코/펑크 음악들을 열심히 들었다. 한국의 음악 교육 커리큘럼엔 이런 음악이 없기에, 당시 음악들을 카피해보며 독학으로 공부했다. 의도한 정체성 변화라기보다는 수련 끝에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된 것이지. 현재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음악적 정체성이 형성된 시점은 2013년 발매된 정규 1집 《The Golden Age》 때부터다.
-《The Golden Age》는 레트로를 지향하며 디스코, 펑크, 솔을 기반으로 한 앨범이다. 고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포스터를 연상케 하는 재킷은 직접 그렸다고 들었다.
=원래 시각디자인 전공이다.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의 포스터를 그린 드루 스트루잔의 스타일을 참고했다. 1980년대 할리우드의 B급 정서와 키치적인 느낌을 살리려 했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미국적인 감성을 사랑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007 시리즈 등 오래된 탐정 첩보물의 주제곡과 냉전시대의 분위기를 담아낸 미드 <아이언 사이드>(1967~75), <육백만불의 사나이>(1974~78) 등의 주제곡을 좋아했다. 당시 주제곡들은 빅밴드를 동원한 높은 퀄리티의 사운드였음에도, 똑같은 판형에서 찍어내듯 대중적으로 생산됐다. 이런 역설적인 매력이 키치라고 생각한다. 현 시점에서는 그것이 영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소재가 된다. 미국의 1960~70년대 디스코, 펑크, 솔이 주는 무드를 재현하는 게 목표다. 특히 한국엔 이런 음악을 하는 밴드가 없다. 이 장르를 선점하고 싶다.
-<SQ>와 <웨ㅔㅔㅔㅔ>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밴드 눈뜨고 코베인의 <변신로봇대백과>라는 뮤직비디오의 감독도 맡았다.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가 본능적으로 있다. 산만하게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어쩌다 음악쪽으로 오래 팠다. (웃음) 음악은 나의 길이고 뮤직비디오 연출이나 재킷 디자인 등은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들이지.
-영화, 드라마를 좋아하고 영상 연출 경험도 있어 음악감독을 맡게 된 것도 낯선 일이 아니겠다.
=애착이 있는 만큼 언제나 영화음악감독을 해보고 싶었다. 시각디자인과라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는 선배들과 짧게 작업해본 경험도 있었고.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전우치!>를 제작한 얼리버드픽쳐스 김대창 대표가 당신의 팬이어서 음악감독을 요청했다고 알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키라>(1988) 같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안녕, 전우치!>는 아동 애니메이션이라 의외의 제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얼리버드픽쳐스에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뚱딴지>라는 노래를 <안녕, 전우치!>에 입혀놓은 것을 보니 잘 어울리더라. 내가 지향하는 음악들로 이 애니메이션을 채워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하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만화이기 때문에 무겁고 퇴폐적인 무드를 넣는 것은 지양하고, 명랑한 톤부터 클래식한 톤, 레트로한 톤까지 다양한 변주를 하며 작업했다.
-김대창 대표에게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에서 만든 홍콩 무협영화의 음악이 레퍼런스가 됐다고 들었다. 여기에 가야금과 북과 장구 등 한국적 색채를 가미했는데.
=랄로 쉬프린이 음악을 맡고 이소룡이 출연한 <용쟁호투>(1973)는 펑크, 솔 음악에 기반해 동양적 느낌을 잘 혼성한 사례다. <안녕, 전우치!>도 전통적인 소재를 다룬 애니메이션이기에 장르 혼성을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과 예산 부족으로 퓨전보단 각각의 역할에 충실한 음악들을 만들게 됐다. 국악기 자체만으로 나올 수 있는 무드의 힘을 이용하려고 했고, 이번 작업을 통해 그 매력을 느끼게 됐다.
-각 장면들에서 다양한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데. 특별히 힘을 준 장면이 있나.
=영화 속 ‘시간의 방’ 장면에서 사용된 무조음악은 조성이 없는 음악이다. 장조, 단조라는 무드를 형성하지 않겠다는 혁신에서 출발한 것인데 결국 무조음악도 공포감이라는 무드를 형성한다. 히치콕의 <싸이코>(1960) 같은 영화에 자주 등장한 음악으로, <안녕, 전우치!>에서도 불길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 이용했다. 그리고 도술로봇이 추락할 때의 음악이 마음에 든다. 고조되면서 종결되는 첩보물의 클리셰를 잘 따라갔다.
-작품 전반적으로 음악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이다.
=제작사에서 음악이 과하게 들어갔다고 해서 그나마도 자중하며 덜어낸 거다. (웃음) 나는 음악이 끝까지 찬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런 영화들에선 음악이 신의 역할을 규정하면서 술술 넘어가니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초기작인 <죠스>(1975), <인디아나 존스>(1982), <E.T.>(1986), <쥬라기 공원>(1993)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또 음악감독을 맡는다면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나.
=존 윌리엄스나 앨런 실베스트리 음악감독처럼 풀 오케스트레이션을 동원한 영화음악을 해보고 싶다. 내 욕심은 한국 영화음악에서 들어보지 못한 무드를 만드는 거다. 장르적으로 액션영화, 블록버스터가 잘 맞을 것 같지만, 오히려 대하사극 같은 걸 한국적 색채 없이 내 식대로 풀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멜로영화는 어렵지 않을까. (웃음)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차기 계획은 어떻게 되나. 나잠 수의 솔로 계획도 있는지 궁금하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원래 중동 색이 묻어나는 컨셉이었는데 오래하니 지루해지더라. 중동 색을 버리고 계속해서 신선하고 재미있는 컨셉들을 찾아나가고 있다. 영감을 주는 새로운 소재들을 우리만의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목적이지. 컨셉은 소재의 차원이고, 음악 장르로 보면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디스코, 펑크, 솔을 정통적으로 하는 밴드다. 신시사이저를 이용하지 않고 빅밴드를 섭외하고 스트링은 가상악기로 재현해 하나하나 녹음한다. 그런 우리를 한국대중음악상 일렉트로닉/댄스 부문에 노미네이트시킨 건, 일종의 해프닝이지. (웃음) 싱글 <웨ㅔㅔㅔㅔ>에서 처음으로 신시사이저를 이용하며 1980년대 스타일을 실험해봤다. 내년 상반기 내로 발매 예정인 정규 2집은 다시 정통으로 돌아가, 오케스트레이션을 동원하여 제대로 된 디스코와 펑크를 보여주고 싶다. 나잠 수 솔로는 1980년대의 미니멀한 펑크를 시도해보려 한다.
-한국음악계에서 어떤 포지셔닝을 취하고 싶나.
=한국 대중음악은 다양성이 부족하고 한 장르에 편중된 면이 있다. 인디신에서조차 록음악 일색 아닌가. 한국 대중음악 퍼즐의 한 조각을 맞추고 싶다. 나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목표는 스타가 되거나 메이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음악이 한국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제대로 해내는 게 목표다. 그 다양성의 한 부분을 관객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어른의 귀도 솔깃
<안녕, 전우치! 도술로봇대결전>은 국내에서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다. <전우치전>을 소재로 과거의 전우치와 현재의 초등학생 석이가 만나 벌어지는 우정과 모험을 그려낸 작품이다.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 기획만화 창작지원 당선작으로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만화가 하민석이 연재한 명랑 모험 만화 <안녕, 전우치?>가 원작이다.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리더 나잠 수는 음악감독을 맡아 펑크, 솔 장르의 음악과 국악을 한데 담아냈다. 어린이애니메이션에서 보기 드문 독특하고 수준 높은 사운드트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