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그녀가 카메라를 통해 담아낸 것 <그녀, 잉그리드 버그만>
2015-10-14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고귀함과 순수함을 겸비한 배우였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사랑에 삶을 송두리째 내던지며 스캔들과 루머를 몰고 다녔지만 어디서나 기품 있고 당당했다. 가족과의 단란한 삶을 중시했던 네 아이의 자상한 엄마였다. “한 일보다 하지 못한 일들이 후회된다”던 진정한 현대 세계의 모험가였다. 영화 <그녀, 잉그리드 버그만>은 잉그리드 버그먼이 직접 찍은 홈필름을 엮어 만든 다큐멘터리영화다. 그녀가 평생 소장해온 일기, 편지, 사진들의 내밀한 기록들도 함께 담긴 이 영화는 잉그리드 버그먼의 탄생 10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딸이자 배우인 이사벨라 로셀리니, 음악감독 마이클 니먼, 스웨덴의 신예 여배우로서 <엑스 마키나>(2015)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내레이터로 참여하면서 제작을 도왔다. 감독 스티븐 비요크만은 잉그리드 버그먼이 남긴 영상에 최대한 충실한 촬영으로 가족과 지인들의 인터뷰를 엮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자신의 내밀한 감정의 기록들로 가득하기에 이 영화의 진정한 연출가는 잉그리드 버그먼 자신이기도 하다.

스웨덴 출신의 연기지망생이던 그녀는 유럽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하여 할리우드로 넘어가 세계적 여배우가 되었다. 영국의 연극 무대에서는 중년과 노년의 시기에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카사블랑카>(1942)와 <가스등>(1944) 등 고전영화로 전성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가 되었지만 동시에 앨프리드 히치콕, 로베르토 로셀리니, 장 르누아르, 잉마르 베리만 등 거장 감독들의 영화를 통해 연기와 세계관의 폭을 넓혀가기도 했다. 유럽에서 미국의 할리우드로 영화의 주 무대가 바뀌어가던 시기에 영화 경력을 시작한 그녀의 연기 인생 전체가 영화사의 한 챕터인 듯 장대하게 이어진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을 카메라에 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세상을 필름에 담아냈으며, 평생 카메라 너머의 작가나 감독과 사랑에 빠지곤 했다. 그녀가 카메라를 통해 담아낸 것은 근원적 그리움, 아름다움, 그리고 반짝이는 삶의 활력,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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