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악마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리그레션>
2015-10-14
글 : 김보연 (객원기자)

악마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1980년 미국, 어느 작은 마을의 경찰서에 사건 신고가 들어온다. 안젤라(에마 왓슨)가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브루스 형사(에단 호크)는 즉시 용의자를 조사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자신의 행동을 기억조차 못한다. 이에 브루스는 ‘퇴행(리그레션) 최면’ 요법을 시도하는데, 그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이 사건이 악마 숭배자들에 의한 조직 범죄일 가능성이 드러난 것이다.

<디 아더스>(2001), <씨 인사이드>(2004) 등을 연출했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신작 <리그레션>은 악마 숭배와 최면이란 소재를 다루는 스릴러영화다. 둘 다 매우 자극적인 소재이지만 감독은 단순히 사건을 선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다 80년대 미국 사회의 우울한 그림자를 드러내는 데 더 큰 비중을 둔다. 즉 악의 끔찍함을 직접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악마’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내면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흥미로운 시도이지만 그 목표를 위해 감독이 취한 연출 방식은 아쉽게도 이야기의 긴장을 많이 떨어트린다. 이를테면 감독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삶에 지쳐 있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묘사하는데, 그 결과 정작 중요한 사건의 해결은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무르고 만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작은 반전과 함께 이야기를 급히 풀어내지만 이미 늘어져버린 영화의 리듬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한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려 한 야심찬 시도에도 불구하고, <리그레션>이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대표작으로 남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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