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소리]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
2015-10-21
글 : 이예지
사진 : 백종헌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된 배우 겸 감독 문소리

여배우는 오늘도 달린다.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에서 순수한 첫사랑의 얼굴로 데뷔한 이래 15년간 영화에 대한 사랑을 한번도 방기한 적이 없다. <오아시스>(2002)의 지체장애인 공주부터 <바람난 가족>(2003)의 대담한 유부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의 핸드볼 선수, <스파이>(2013)의 발랄한 아내, <만신>(2014)의 무당 김금화, <자유의 언덕>(2014)의 카페 주인까지. 누군가의 연인, 아내에 그치지 않고 운동선수, 무당 등 여성 주연 영화에서 극을 오롯이 이끌기도 하며 여러 장르 속 다양한 역할을 섭렵해온 그녀다. 영화에 대한 사랑은 연출에의 시도로 이어졌다. 첫 단편 <여배우>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고, 세 번째 단편 <최고의 감독>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단편 쇼케이스에 초청됐다.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또 다른 명칭이 생겼다.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 신설된 스크린액팅 트랙의 초빙교수로 임용된 것. 배우이자 감독, 교수로서 문소리의 삶에 한 발짝 다가서 봤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이 많더라. 세 번째 연출작 <최고의 감독>과 안성기, 박해일과 함께 출연한 장률 감독의 <필름시대사랑>이 초청되어 상영되고 있다.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도 맡았다. 배우이자 감독,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은 셈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전에 개•폐막식 사회도 보고, 뉴 커런츠 부문 심사위원도 했고. 할 건 다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일을 많이 시키는데, 거절을 못하겠다. (웃음)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박하사탕>으로 데뷔했지 않나. 그게 내 생애 첫 스크리닝이었다. 영화를 시작한 곳이라 마음의 빚이 있다.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연출자로서 영화제를 찾게 되어 쑥스럽고 감회가 새롭다.

-원래 연출에도 관심이 있었나.

=감독이 되기 위해 연출을 시작한 게 아니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단편 세편을 만들었다. 연출을 공부한 것은 영화와 연기에 대한 애정을 더 높이기 위해서였다. 같이 사는 남편과도 애정의 기복이 있을 수 있고, 노력해야 관계를 지속할 수 있지 않나. 연출도 평생 할 영화에 대한 애정도를 높이는 일의 차원에서 한 것이다.

-전작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는 문소리라는 여배우의 정체성과 삶의 민낯을 사실적이고 흥미롭게 드러낸다. 실제 자신을 등장인물이자 소재로 삼아 연출하게 된 이유가 있나.

=영화를 공부하는 일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를 하기 위해선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배우라는 직업은 스스로에 대해서 판타지를 갖기 쉽고, 자칫 헷갈리기도 쉬운 일이다. 그래서 단편 연출 작업을 통해 나를 잘 들여다보고 파헤쳐보자고 결심했다. 여배우라는 직업이 영화적 소재로서도 재미있을 거 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향한 관심에서도 에너지가 느껴지지만, 그것을 객관화해 찬찬히 뜯어보는 시선도 흥미롭다. 비틀어 풍자하거나 코믹하게 드러내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찰리 채플린의 말대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것 같아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 않나. 난 아파죽을 것 같아도 남들이 보기엔 웃길 수도 있다. 이게 어느 정도 힘든 것인지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연출 작업은 결국 자기 성찰과 수련의 과정이 되어줬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보면서 겸손해지더라. <여배우는 오늘도>를 보고 어머니는 ‘여배우의 엄마는 오늘도’를 만들어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생각하면, 남편은 ‘여배우의 남편은 오늘도’를 만들 수 있겠지. 각자가 얼마나 힘들겠나. 투정인가 싶어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일도 사랑도 가정도 ‘술’도 다 하고 싶은 현대 여성의 마음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최고의 감독>은 여배우라는 정체성에서 나아가 한 감독의 죽음을 소재로 삶과 예술의 의미에 접근하는 영화다. 영화에서 배우 문소리는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던 한 감독의 장례식에서 의외의 인물들을 마주치면서 ‘예술이 뭐냐’는 설전을 벌이고 모종의 변화를 겪는다.

=앞의 두 영화로 나를 들여다봤으니, 이젠 나를 포함해 더 넓은 이야기를 해볼까 싶었다. 영화를 하면서 많이 부딪치는 질문은 ‘예술이 뭐냐’는 것 그리고 ‘예술이다, 아니다의 기준은 뭐냐’는 거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영화인들이 뭘 위해서 뭘 얻자고 이렇게 치열하게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아파하면서 이러는 걸까 고민한다. 어렸을 때는 이창동 감독님께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냐”고 여쭤보기도 했다. (웃음) 사실 나는 굉장히 독설가고, 영화를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태도를 취했던 것이 후회도 되더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나와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인데, 그들을 안아주지 않으면 그들도 나를 안아주지 않지 않겠나. 뭐가 예술인지는 같이 가는 이들과 의논하고 고민해야 한다. 나 혼자 현답을 얻을 수 없다. 김종학 감독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 후로는 가깝고 존경하는 감독들이 늙는 게 참 서운하더라.

-예술이라는 게 어떤 건지 해답을 찾았나.

=그건 아직도 모르겠고. (웃음) 나는 단지 영화가 여러 의미의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좋겠다. 감독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을 표현해서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는 사람들이다. 감독마다 각자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있고, 이것들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감독>은 그 아름다움에 대해 존중의 마음을 보내는 영화다.

-앞으로 연출을 계속할 계획이 있나.

=당장은 없다. 사람들이 자꾸 감독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아직 배우다. 내 정체성은 배우이기에 연기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훨씬 더 크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리즈 위더스푼, 헬렌 헌트처럼 배우로서 제작과 감독을 겸하듯이 하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건 할리우드 얘기다. 한국의 상황에선 여배우가 감독하면 폭삭 늙어서 여배우 못할 것 같다. (웃음) 물론 나는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영화감독이랑 결혼 안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결혼해서 잘 살고 있지. (웃음) 인생은 알 수 없으니 연출을 안 한다고 장담은 못하겠다. 어떤 소명이나 미션처럼 해야 할 이야기가 주어진다면 또 모르는 일이지.

-어떤 소명이 주어진다면 마음을 바꿀 건가.

=한국영화가 자꾸 남자들만 세상을 구하고 역사의 중심에서 활약을 펼치는 기획영화의 판으로만 돌아간다면, 할 수 없이 여자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어야겠지. (웃음) 그리고 젊은 감독들이 어린 세대의 이야기만 만드는 상황도 아쉽다. 여자들의 이야기이자 나이 있는 세대를 위한 영화를 만들 거다. 하지만 그건 누구도 그런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때의 최악의 상황이다. 한국영화계가 그런 상황까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웃음) 배우로서 한국영화계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최우선이다.

-문소리는 예전에도 지금도 한국영화계에 없어서는 안 될 배우다. 이번에 출연한 <필름시대사랑>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장률 감독과의 첫 작업은 어땠나. 그간 홍상수, 이창동 감독 등 거장 감독들과 작업해왔는데, 이번은 또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예전부터 <두만강>(2011)을 비롯한 작품을 좋아했다. <경주>(2014)를 보니 감독님이 변화를 꾀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자기만의 스타일이 형성된 상태에서 변화를 시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감독님을 믿기에 그 행보를 지지하고 싶어 출연을 결정했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단편이었다. 2회차 찍은 게 전부다. 그런데 옛날 나와 안성기 선배 등이 출연한 필름 푸티지들을 써서 파격적인 형태의 장편으로 만들었더라. <필름시대사랑>을 보면 감독님이 영화에 대한 고민과 애정이 많다는 것이 느껴져서 좋다.

-지금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촬영 중이다.

=특별출연이다. ‘아가씨’의 이모 역을 맡았다. 일본인이라 일본어 연기를 무리 없이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박찬욱 감독의 <파란만장>(2010) 때 출연할 뻔했는데, 임신을 해서 하지 못했다. 그런 어려움을 드린 사연으로 박찬경 감독의 <만신>(2014)도 하게 됐고, 이번에 박찬욱 감독과도 다시 만났다. <아가씨>를 계기로 본격적인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배우와 감독에서 나아가,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2016년 스크린액팅 트랙 신설 초빙교수로 초빙됐다.

=작품이 많아서 연기만으로도 너무 바쁘다면, 연출도 안 하고 교수도 안 했을 것 같다. (웃음) 연기를 안 하는 순간에도 나는 언제나 영화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공부도 하고 연출도 하게 된 거다. 그래도 나는 한국영화계에서 복 받은 존재였고 좋은 작품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걸 의무적으로 돌려주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교수직을 맡게 됐다.

-기초적 신체훈련부터 실기 이론 등 연기 전반에 관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커리큘럼을 짤 건가.

=연기를 공부할 수 있는 교육과정은 많지만, 내가 교수직을 맡은 기관은 학부를 졸업해야 입학할 수 있는 대학원이지 않나. 내가 학생이어도 ‘여기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커리큘럼을 짜려 한다.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모토로 놓고, 연기를 안 한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과정이, 공부가 된 사람에게는 되짚어보며 더 발전하는 재교육이 될 수 있는 강의를 할 것이다.

-예전에 건국대학교 예술학부에서 연기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소리 교수의 수업은 대본 분석을 중시한다더라. 뿐만 아니라 모두 함께 대본에 대해 논의하고, 이후에도 교수만 연기에 대해 평가하는 게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를 다 같이 들어본다고.

=배우는 누구의 말도 잘 들어야 하는 직업이다. “액팅 이즈 리액팅”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 말에 공감한다.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연기다. 귀를 기울이는 것이 연기의 시작이자 핵심이다. 듣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의 말,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해야 들리고, 들을 수 있어야 연기가 가능하다. 텍스트를 독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고전 희곡들이나 고전영화 대본들보다는 개봉하지 않았거나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로 실습을 한다고도 들었다. 그런 현장 친화적인 면이 학생들에게 호평을 받던데.

=개봉 전 시나리오를 주는 이유는 단순하다. 만들어진 영화의 시나리오로 연기를 시키면 기존의 것을 따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선입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개봉 전 시나리오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를 분석하며 소화하는 훈련을 거칠 예정이다. 텍스트는 반드시 글로 된 시나리오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인문학과 예술 전반에 대한 소양을 쌓아 텍스트 독해 능력을 갖추는 것이 선행 과제다. 1학년 때는 ‘듣는 것’ 그리고 ‘움직임’에 대한 수업 위주로 진행하고, 2학년 때는 연출 전공생들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하는 워크숍 위주로 진행하려 한다. 이론보다는 실전에 방점을 둔 강의가 될 거다.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받은 걸 돌려주는 차원의 교수직까지. 문소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참 많다.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영화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한국영화계에서 여배우,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한정되는 것은 언제나 안타까운 일이다. 더 공격적이고 현명하게 이 현실을 개척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반성도 된다. 한국영화계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할리우드에서 제작자이자 감독을 겸하는 멋진 여배우들을 보면 참 부럽고 본받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든다. “왜 한국영화에선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한정적인 거야?”,“왜 여성 주연 영화가 없는 거야?”라고 언제까지나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순 없지 않나. 좀더 능동적으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은, 본업인 배우로서 그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영화계 속 여성 역할의 외연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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