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일라이 로스 고유의 인장 <노크 노크>
2015-10-21
글 : 김보연 (객원기자)

LA의 어느 고급 주택, 건축가 에반(키아누 리브스)은 가족들이 여행을 떠난 사이 집에 혼자 남아 바쁜 일을 처리하는 중이다. 그런데 늦은 밤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비에 흠뻑 젖은 젊은 여성 두명이 길을 잃었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에반은 친절하게 이들을 집으로 들이고 옷까지 세탁해주며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잠깐의 훈훈한 분위기는 곧 악몽 같은 시간으로 바뀌고 만다. 다음날 아침, 두 여자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호스텔>(2005)의 일라이 로스가 연출한 <노크 노크>는 감독의 개성이 가득 녹아 있는 장르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태도로 ‘침입-고문 장르’의 요소들을 유희하는 동시에 다음 장면을 쉽게 예측하기 힘든 빠른 전개를 선보인다. 물론 일라이 로스의 특기 중 하나인 강도 높은 섹스와 폭력 묘사 역시 빠질 수 없다. 감독은 이 모든 자신의 영화적 취향을 아낌없이 전시하며 고유의 인장을 확실히 새긴다. 이런 극단적인 내용과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크 노크>는 관객에 따라 호오가 갈릴 수 밖에 없다. 어떤 관객은 별 내용도 없이 주인공을 무작정 괴롭히며 낄낄대는 고약한 취향의 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관객은 중산층 가족이 내세우는 ‘홈 스위트 홈’의 환상을 속시원하게 조롱하는 유쾌한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영화에 나오는 몇몇 문제적인 장면을 따로 빼내 윤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건 일라이 로스가 위에서 언급한 논의 가능한 지점들을 그냥 하나의 장난으로 여기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특히 할리우드의 아이콘인 키아누 리브스를 철저하게 웃음거리로 만드는 장면들은 그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즉, 그는 이 모든 고문과 성폭행과 테러를 영화 속 대사처럼 “게임”으로 여기는 중이다. 즐길 사람은 즐기고 아닌 사람은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이런 진지하지 못한 태도 자체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노크 노크>에서 일라이 로스의 장난기가 전에 없이 생생한 활기를 띠고 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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