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애니를 이해하기 위한 영화 <애니를 위하여>
2015-10-21
글 : 박소미 (영화평론가)

“내 인생은 한편의 코미디였다. 난 그저 웃는 법을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애니(사만다 모튼)는 할머니와 어머니, 언니를 모두 유방암으로 잃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 또한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그녀는 가족들을 차례대로 한명씩 집어삼키고 있는 병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다. <애니를 위하여>는 그런 애니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애니의 투병기와 함께 영화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이야기는 유방암의 유전적 연관성을 밝혀내고자 했던 킹 박사(헬렌 헌트)의 연구일지다. 애니는 낙천적이고 쾌활한 캐릭터이고 킹 박사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해나간다는 점에서 닮았다. 영화는 두 사람이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끝난다.

애니와 킹 박사의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그 이야기는 상당 부분 희망과 믿음, 긍정의 힘과 그리 거리가 멀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스티븐 번스타인 감독은 그 이야기들을 대체로 상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때로 인상적인 장면을 경유해 전달하고 있으며 이런 유형의 영화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감상적인 연민이나 인물에 대한 미화도 피해간다. 더불어 대사나 장면 연출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영화의 소소한 리듬을 만들어간다.

<애니를 위하여>의 원제는 <Decoding Annie Parker>다. 애니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유방암을 해독(decode)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문자 그대로 애니를 이해(decode)하기 위한 영화라는 데 방점이 찍힌 제목처럼 보인다. 킹 박사의 연구와 달리 유방암에 대한 애니의 탐구는 정해진 목적지가 없으며 이렇다 할 결과물 또한 없다. 암에 걸린 그녀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갔을 뿐이다. 그럼에도 감독은 제목으로 킹 박사가 아니라 애니를, 애니가 해온 일들을 이해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인생이 코미디라면 웃는 법을 배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삶의 태도에 대한 감독의 존중의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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