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주원] 연기를 향한 큰 마음
2015-10-27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그놈이다> 주원

영화 <그놈이다>(2015) <패션왕>(2014) <하유교목 아망천당>(2014) <캐치미>(2013) <니코: 산타비행단의 모험>(2012) 목소리 출연 <미확인 동영상: 절대클릭금지>(2012) <특수본>(2011)

드라마 <용팔이>(2015) <내일도 칸타빌레>(2014) <굿 닥터>(2013) <7급 공무원>(2013) <각시탈>(2012) <오작교 형제들>(2011) <제빵왕 김탁구>(2010)

<그놈이다>의 개봉(10월28일)을 일주일 앞두고 주원은 긴장하고 있었다. “이번에 유난히 떨린다. 어제 언론배급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는데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스릴러물이다 보니 관객이 보면서 놀랄 때가 있는데 나는 놀라지도 못하고 완전 얼어 있었다. (웃음)”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긴장했느냐고 이어 물었더니 그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내 연기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올해 스물아홉살이고 내년이면 서른인데 언제까지나 소년이나 청년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는 없으니까.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지금의 내 나이가 되면 내 연기에 어떤 변화를 줘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온 것도 있었고. <그놈이다>는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만난 작품이다.” 그러니까 <그놈이다>에서 주원이 연기한 장우는 앞으로의 그의 연기 인생에서 하나의 기점이 돼줄 만하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었다.

영화는 장우가 끔찍이도 아끼는 하나뿐인 여동생 은지(류혜영)가 살해되면서 전개된다. 은지가 죽어야 했던 이유도, 은지를 죽인 범인도 알 수가 없다. 장우의 눈에는 주변 사람들도, 심지어 경찰들도 미덥지 못하다. 은지의 오빠니까, 장우는 동생을 죽인 범인 ‘그놈’을 반드시 찾아야 했다. 주원은 장우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언제나 시나리오를 읽을 때면 자기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본다는 주원은 장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마음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만약 내 가족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해봤다. 장우의 격한 반응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거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뒤 동생만큼은 지키겠다고 했는데 그런 동생이 죽었으니까. 누구라도 장우처럼 하지 않았겠나.” 장우는 원체 과묵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다. 얼음 공장에서 얼음을 나르고 인형 뽑기 기계에 인형을 채워넣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 동생의 대학 학비를 마련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평소 애교 많고 살가운 성격으로 알려진 주원을 떠올려보면 장우와의 합은 쉽게 맞춰지지 않는다. 하지만 윤준형 감독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주원과 함께 장우를 만들어가고 싶었다고 말한다. “장우는 성정 자체가 거칠고 센 사람이 아니다. 다만 장우가 처한 상황이 그를 강한 남자인 척하게 만들 뿐이다. 오히려 주원씨처럼 부드럽고 착한 인상의 인물이 장우가 된다면 장우가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무리를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관객도 장우를 응원해줄 것 같았다.” 주원도 여기에 적극 동감했다. 장우는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속마음만큼은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주원은 장우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연기 진폭을 넓히고 연기 변주라는 과제 앞에 연착륙하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동생의 죽음으로 장우가 감당해야 할 슬픔의 정서가 극의 초반부터 끝까지 이어지다 보니 배우의 입장에서는 감정을 끌고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매번 슬퍼할 수만은 없다 보니 그놈이 범인임을 직감했을 때, 장우가 범인을 쫓을 때, 쫓던 그놈을 놓쳤을 때 등의 상황에 따라 장우의 감정의 리액션들을 고민해야 했다. 이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유지해간 건, “과장되게 보이지 않게, 최대한 현실적으로 그려가자”는 점이었다. “동생의 시체를 발견하는 신을 찍는데 정말 온갖 감정이 교차하더라. 아마 장우가 그때 그런 마음이겠다 싶었다. 촬영장에서 느낀 내 감정을 그대로 연기에 대입해 나갔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리얼리티를 완성하기 위해 그는 외적인 변화에도 신경을 썼다. “영화를 처음 마주하는 관객에게는 시각적인 부분이 일차적으로 크게 와닿으니까. 장우가 단박에 설명될 수 있도록 운동량도 늘리고 살도 좀 찌웠다. 바닷바람에 얼굴이 그을렸을 테니 태닝도 하고.” 경상도 사투리를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데다 사투리 연기를 해본 적이 없던 주원에겐 사실 난관이었다. 주변에서도 어려운 사투리 연기를 굳이 해야겠느냐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주원의 생각은 달랐다. “장우라면 사투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영화에서 강력계 형사 두수 역으로 나오는 서현우 형이 경상도 출신이라 자신의 일처럼 사투리를 지도해줬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연습하고 중간 점검을 했는데 스탭들이 박수를 쳐주더라. 정말 뿌듯했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캐릭터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는 스스로를 괴롭혀서라도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그게 주원의 성실함이고 배우로서 그가 갖는 무서운 힘이다.

뒤돌아보면 주원은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물들을 꾸준히 연기해왔다. 드라마 <각시탈>의 이강토도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서 분노하며 악행을 저지른 자들을 응징해나갔고, 드라마 <용팔이>의 김태현도 가난한 과거사에서 출발해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인간애를 보여준다. “딜레마 앞에 놓여 있는 인간,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인물들에게 눈길이 간다.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인물에게로 감정이 이입된다. 전체 이야기의 전개는 그다음 문제고, 작품 외적인 요소들은 아예 관심 밖이다.” 장르적으로도 그는 상당히 다양한 영역을 소화해왔다. 수사물인 <특수본>, 공포물인 <미확인 동영상: 절대클릭금지>, 엉뚱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인 <캐치미>를 거쳤고 드라마는 주말극부터 미니시리즈까지 두루 오가며 전 연령층에 고르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주원도 유독 영화 흥행과는 아직까지 연이 닿지 않은 것 같다. “작품마다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데도 관객이 드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이 모든 게 하나의 과정이라 여긴다. 지금 당장은 한 작품이 잘됐다 해도 다음 작품은 또 안 될 수도 있는 거고. 배우는 그 과정 속에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함께 작업한 분들이 늘 ‘너와 작품을 하면 현장 분위기가 좋아지고 좋은 추억이 만들어지더라’라고 말씀해주셔서 큰 힘을 얻는다.”

연기에 대한 그의 애정의 온도는 여전히 뜨겁다. 일복을 스스로 불러들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연기하고 또 연기한다. 연기를 향한 큰 마음을 줄일 수 없어 보일 만큼. “대본을 받았는데 내가 좋아하고 관심가는 캐릭터다 싶으면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주변에서 아무리 ‘그거 별로인 것 같아’라고 해도 흔들림이 없다. 좀더 나이를 먹게 되면 아무래도 작품을 고를 때 지금보다 더 신중해질 것 같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작품을 고르기까지의 시간도 더 길어지지 않겠나. 그래서 지금 더 많이 작품을 하고 싶다.” 과욕이 아니라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마음이 섰을 때 몰아붙여보는 주원의 에너지인 것이다. 그는 또 무엇에 몰두해갈까. “정통 사극과 정통 멜로를 아직 안 해봤다. 남자배우라면 사극은 꼭 해봐야지 싶다. 그리고 남녀가 정말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멜로도 꼭 해보고 싶다.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그런 사랑 말이다.”

<캐치미>

낭만을 꿈꾸다

“로맨티스트냐고? 비록 현실은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낭만을 찾기 어렵다고 해도 마음만큼은 로맨티스트이기를 바라고 있다. 정말 그러고 싶다.” 사랑에 흠뻑 빠져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던 주원이 덧붙인 말이다. 낭만을 꿈꾸던 주원의 모습은 전작에서도 엿보인다. <캐치미>의 호태도 그랬다. 첫사랑 숙자(김아중)와 길을 걷다 말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줄 때가 대표적이다. 살포시 눈을 감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부른 곡은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열과 성을 다해 노래하는 호태에게는 사랑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의 긴장감과 떨림,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 차 보인다. 뮤지컬 배우로 활약해오며 노래 실력이 이미 입증된 주원이 부르는 곡이기에 믿고 들어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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