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2011), <술이 깨면 집에 가자>(2010), <남의 섹스를 비웃지마>(2007), <좋아해>(2005) 등으로 친숙한 얼굴 나가사쿠 히로미.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동안에 빈틈없는 연기는 그녀가 20년 넘게 다양한 이미지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그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으로 제51회 대만금마장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언어의 벽을 넘어 영화를 통해 마음을 나누었다”는 출연 소감 및 수상 소감을 서면으로 전한 나가사쿠 히로미는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진지한 배우라는 인상을 풍겼다.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대만 출신의 감독이 일본에서 촬영하고, 촬영감독(신마 단쿠로)은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는 분이다. 이런 글로벌한 기획이 새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 같아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헤어진 지 30년이 넘었고 실종된 지 8년이 된 아버지를 기다리며, 아버지가 남기고 간 창고에 커피가게를 차리는 미사키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나.
=미사키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인물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데 미묘한 거리감을 가진 여성이다. 우선 그녀가 가진 타인에 대한 거리감에 공감했다. 미사키는 쓸데없이 앞에 나서지도, 그렇다고 해서 뒤로 내빼지도 않는 인물이다. 그 존재감과 모습을 소중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미사키는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인데 얼굴엔 늘 평온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영화를 본 뒤 남는 잔상 중 하나가 바로 미사키의 그 표정이다.
=‘요다카 커피’라는 가게 이름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요다카의 별>(못생기고 힘없는 쏙독새 요다카가 별이 되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화에 ‘나는 요다카와 닮았다’는 대사가 있는데, 사실 완전히 닮았다기보다 요다카가 요다카로서 살아가는 고고함 같은 것에 미사키의 마음이 끌렸을 거라고 해석했다. 요다카는 마지막에 별이 되는데, 미사키가 덧없는 삶에서도 고고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로스팅 기계 앞에서 커피향을 맡고 드립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정말 오랜 세월 카페를 운영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원두를 넣는 타이밍이나 커피를 내리는 방법 등 커피 관련 감수를 해준 호리구치 슌에이와 니자미 요코로부터 커피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배웠다. 로스팅 기계에 원두를 넣는 타이밍도 공들여 연습했다. 로스팅은 원두가 볶아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작업 중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있지만 그 순간에도 커피와의 유대를 느끼고 있다. “당당하게 서 있어주세요”라는 니자미 요코의 말을 고이 간직한 채 로스팅 장면을 연기했다. 영화를 통해, 원두의 종류뿐만 아니라 로스팅하는 사람이나 커피를 내리는 법에 따라 커피의 맛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적한 시골에서 ‘요다카 커피’ 같은 카페를 차리고 싶은 마음은 없나.
=얼마 전 도쿄 시부야에 ‘요다카 커피’의 문을 열었다. 직접 메뉴를 정하고, 카페의 상징인 요다카 새의 그림도 그려서 머그컵과 티셔츠도 만들었다. 영화 스탭들과 함께 배우 사사키 노조미도 방문해서 많은 응원을 해주었다.
-지금껏 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혹시 한국 관객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본인의 출연작이 있다면.
=모든 출연작을 다 봐주시면 좋겠지만 (웃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역시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이다.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오쿠노토 지역의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여백이 많은 영화라는 느낌도 들었다. 꼭 영화의 여운을 느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