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한창호의 영화비평] 아웃사이더의 초상화
2015-11-05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라이프>에 비친 제임스 딘의 캐릭터
<라이프>

<라이프>에서 제임스 딘은 <이유없는 반항>(1955)에 출연하고 싶어서 안달한다. 반면에 이미 주연으로 출연했던 <에덴의 동쪽>(1955)에 대해선 시큰둥한 반응이다. <에덴의 동쪽>은 개봉을 앞두고 있고, 영화사 워너브러더스는 여러 가지 홍보 작업을 전개하지만, 제임스 딘은 마지못해 그 일에 응한다. <에덴의 동쪽>에서 부친 역으로 출연했던 노배우 레이먼드 매시가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고 있을 때, 그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시간이 지겹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아직 그는 <에덴의 동쪽>이 어떤 명예를 안겨줄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아 카잔의 제임스 딘

무명배우나 다름없던 제임스 딘을 주연으로 발탁한 감독은 <에덴의 동쪽>의 엘리아 카잔이다. 당시에 엘리아 카잔은 거칠 게 없는 탄탄대로의 감독이었다. 카잔은 말론 브랜도와 짝을 이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 <혁명아 자파타>(1952), <워터프론트>(1954) 등의 잇단 성공 덕에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로부터 최종 편집권까지 확보하는 특혜를 누렸다. 또 카잔은 1947년 뉴욕에 ‘액터스 스튜디오’(Actor’s Studio)를 여는 데 기여하면서 메소드 연기자들을 연극 무대로, 영화계로 이끌며 새로운 스타들을 발굴했다. <라이프>에서 연출자 리 스트라스버그가 배우들과 함께 리허설을 하는 곳이다. 카잔의 첫 스타가 바로 말론 브랜도였다. 제임스 딘은 말론 브랜도를 흉내내던 액터스 스튜디오의 수많은 무명 중 한명이었다.

<에덴의 동쪽>을 찍을 때 말론 브랜도는 이미 30살이었고, 카잔에겐 더 젊은 메소드 연기자가 필요했다. 그때 카잔의 눈에 들어온 배우가 제임스 딘이다. 제임스 딘은 공개적인 장소에선 말론 브랜도와 비교되는 것을 싫어했지만, 사실은 브랜도의 상징이기도 했던 타악기 콩가를 두드리는 것까지 따라할 정도로 그의 팬이었다. 불안한 눈빛에, 불만이 있는 듯 웅얼거리는 말투, 그리고 우울한 표정 등은 말론 브랜도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러기에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는 제임스 딘의 연기를 ‘거의 표절’이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그때 카잔에겐 바로 그런 캐릭터가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제임스 딘은 주인공 칼과 비슷하게 젊고, 자그마한 몸집을 갖고 있었다.

기억하겠지만, <에덴의 동쪽>은 ‘카인과 아벨’의 변주다. 제임스 딘이 연기한 칼은 부친의 눈 밖에 난 카인이다. 부친은 형만 사랑한다. 칼은 뭘 해도, 부친에겐 탐탁지 않은 자식이다. 콩 농사를 지어 큰돈을 번 뒤, 그것을 부친에게 선물로 주지만, 돌아온 답은 ‘전쟁 특수를 이용한 돈’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칼은 사실상 부친으로부터 버려진 자식이다. 그런데 제임스 딘의 처지가 바로 그랬다. 제임스 딘은 모친이 죽은 9살 때, 부친으로부터 사실상 버려진다. 부친은 2차대전에 참가했고, 아들을 인디애나의 페어몬트에 있는 여동생 집에 맡겨버렸다. <라이프>에서 제임스 딘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행했던 바로 그 ‘고향’이다. 종전 뒤에도 부친은 아들을 찾지 않았고, 재혼한 그가 아들을 다시 만난 것은 제임스 딘이 대학 입학을 앞둘 때였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간절하게 아버지의 사랑을 바라던 칼의 모습은 현실의 제임스 딘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아들을 싫어하는 부친 역을 맡았던 레이먼드 매시가 실제로 제임스 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메소드 연기를 감정과잉이라며 싫어했고, 한창 의욕이 넘치던 메소드 연기자 제임스 딘과 연기하는 걸 대단히 불편해했다. 촬영현장에서 두 사람은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마치 제임스 딘의 실제의 부자관계가 허구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라이프>에서 레이먼드 매시가 인터뷰할 때, 제임스 딘이 거만하게 굴었던 것은 허구 속에서의 감정과 촬영현장에서의 감정이 현실에도 확장됐기 때문일 테다.

니콜라스 레이의 제임스 딘

<에덴의 동쪽>은 말하자면 제임스 딘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작동한 작품이다. 자신의 실제 모습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바로 그런 캐릭터가 제임스 딘을 세대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부모로부터 사실상 버려졌고, 이해받지 못했고, 그래서 밖으로 나도는 반항아 캐릭터는 전후의 청년들이 공감하던 자기세대의 초상화였다.

하지만 제임스 딘은 <에덴의 동쪽>이 몰고 올 자신의 스타덤을 아직 알지 못했고, <라이프>의 도입부에서 보듯 그는 <이유없는 반항>에 캐스팅되는 데 집착한다. 평소의 태도로 봐선 의례적인 파티에 가는 걸 싫어할 것 같은 제임스 딘이 <이유없는 반항>을 감독할 니콜라스 레이의 파티엔 참석한다. <라이프>의 도입부다. 제임스 딘은 아마 <이유없는 반항>의 주인공 짐 스타크에게서 더욱 강렬한 자신의 모습을 봤을 것 같다. 이름마저 본인과 같은 짐(제임스는 지미, 짐 등의 애칭으로 자주 불린다)은 제임스 딘 자신의 분신 같은 캐릭터다. 사실 짐은 <에덴의 동쪽>의 칼의 다른 버전이다. 짐도 칼처럼 부모로부터 전혀 이해받지 못하는데, 칼과 달리 짐 자신은 부모들의 위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칼에 비해 짐이 더욱 자기주도적이다. 여기선 전후 세대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돼 있고, 영화가 지지하는 쪽은 짐으로 대표되는 자식세대다.

제임스 딘이 전후 청년들의 대변인이자, 더 나아가 현재까지도 청년들의 상징으로 남는 데는 <이유없는 반항>의 짐 캐릭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전히 불안과 불만에 사로잡혀 있고, 뭘 하든 이해받지 못하고, 지지받지 못하며, 그래서 집보다는 혼자 바깥으로 떠돌지만 자기 스스로 삶을 결정짓고자 하는 인물이다. <이유없는 반항>은 소위 ‘청춘영화’의 모델이 됐고, 주인공 제임스 딘은 전세계적으로 청춘스타의 모델이 됐다. 자신은 말론 브랜도를 흉내내다 배우가 됐는데, 이젠 바로 자신을 흉내내는 수많은 후배들을 거느리게 된 셈이다.

제임스 딘과 리버 피닉스

아마도 제임스 딘과 가장 비슷한 배우는 리버 피닉스일 것이다. 리버 피닉스도 생전에 자신이 제임스 딘과 비교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두 배우의 캐릭터는 약간 겹친다. 두 배우 모두 다수에 섞이지 못하고, 떠돌며 방황하는 청년들을 대변했다. 그리고 당대 청년들의 ‘멋’을 잘 표현했다.

그들이 몰고 다닌 차, 듣는 음악, 입는 옷, 쓰는 안경, 마시는 음료까지 팬들은 좋아했다. 아마 딘의 팬이라면 청바지와 붉은 점퍼에 매혹될 것이며, 피닉스의 팬이라면 그의 세련된 패션 감각이 좋을 테고, 또 육식이 좀 껄끄러울 것이다(피닉스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이며 동물보호주의자다). 무엇보다도 두 배우 모두 너무 젊은 나이에 죽었다. 딘은 24살, 피닉스는 23살에 죽었다.

제임스 딘이 <에덴의 동쪽>과 <이유없는 반항>으로 자신의 이미지가 단일해질 것을 염려해서 출연한 작품이 <자이언트>(1956)다. 사실 <자이언트>의 주인공은 록 허드슨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이고, 제임스 딘은 조연이다. 여기서 제임스 딘은 전반부에선 과거의 칼 혹은 짐과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후반부에선 돈으로 타락한 기성세대를 연기하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새로운 시도였지만, 관객은 기대와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을 선뜻 지지하지 않았다. 관객은 늙은, 혹은 노련해진 제임스 딘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제임스 딘은 <에덴의 동쪽>의 칼, 또 <이유없는 반항>의 짐으로서 기억된다. 두 캐릭터 모두 무슨 특별한 업적을 이룩한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커녕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이다. 혹은 기성세대의 질서를 위선이라며 자발적으로 거부하는 반사회적인 인물들이다. 아웃사이더, 반사회적 같은 입장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특히 성장기 때 겪는 삶의 태도일 것이고, 그런 보편적인 소외를 표현하는 데 제임스 딘은 누구보다 뛰어난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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