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트립 투 유럽]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사랑하고 복수하고
2015-11-10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투스카니아의 산 피에트로 교회.

이탈리아라는 땅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데는 셰익스피어의 역할이 컸다. 그는 조국인 영국만큼이나 자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오셀로>(베네치아), <겨울 이야기>(시칠리아) 등 여러 작품들을 썼다. 특히 베로나 배경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품일 것이다. 지금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 문학세계의 입문서로, 또 셰익스피어 비극의 전범으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가 이 고전의 매력을 놓칠 리 없다. 영화의 초창기 시절 조르주 멜리에스가 비극을 각색한 작품을 내놓은 이래, 이탈리아의 ‘소년과 소녀’는 끊이지 않고 스크린의 소환을 받았다. 할리우드의 명장 조지 쿠커의 <로미오와 줄리엣>(1936), 이탈리아의 멜로드라마 장인인 프랑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1968), 그리고 MTV의 후원 아래 제작된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줄리엣>(1996) 등 고전 각색의 영화는 연이어 발표됐다. 덧붙여 고전의 모티브를 이용한 작품들도 많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는 시간과 장소만 현대의 뉴욕으로 옮겼고,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는 고전의 사랑 이야기를 셰익스피어 자신의 사랑 이야기로 응용했고, <레터스 투 줄리엣>(2010)은 줄리엣처럼 순수한 사랑의 기대에 부응한 작품이다. 이들 가운데 이탈리아 현지의 매력까지 표현한 영화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레터스 투 줄리엣>이다.

<베니스의 상인>, 총독궁에서의 샤일록, 알 파치노(왼쪽).

옅은 황금빛 색깔의 도시 베로나

전설 같은 사랑의 이야기가 도시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베로나일 것이다. 베로나는 르네상스의 거장 화가인 베로네제의 고향으로, 또 음악 애호가들의 필수 방문지인 야외 오페라극장 ‘아레나’(Arena)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두 요소 모두 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 앞에서는 유명무실해 보인다. 베로나는 과장하자면 지금도 두 연인이 도시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무슨 화려한 건물이나 아름다운 자연풍경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좇아, 계속해서 베로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원수 집안의 아들과 딸이 사랑 때문에 비극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베로나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오던 전설이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등의 작가들도 베로나의 이 유명한 전설을 문학의 형식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가 1597년에 그 정점을 찍은 셈이다. 원수 집안이 허구의 배경인 된 데는 중세 이탈리아가 교황을 지지하는 교황파(Guelfa)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황제파(Ghibellina)로 나뉘어, 극심한 반목을 벌였기 때문이다. 베로나도 그 싸움이 치열했던 곳이다. 줄리엣의 캐풀렛 집안은 교황파, 로미오의 몬태규 집안은 황제파다.

베로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으로 명성을 드높인 데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큰 역할을 했다. (유사)현지 촬영이 이루어졌고, 두 10대 배우 레너트 화이팅과 올리비아 허시의 인기 덕을 봤다. 특히 올리비아 허시는 줄리엣의 청순미를 눈앞에 현현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베로나에 가면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을 방문하는 걸 필수코스로 여긴다. 그녀의 집은 ‘카펠로 거리 23번지’(via Cappello 23)에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정원에 있는 줄리엣의 동상 옆에서,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며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다. 또 여성들은 그 유명한 발코니에서, 로미오가 서 있을 아래를 바라보며 줄리엣을 흉내낸다. 반면 로미오의 집은 베로나의 중심지인 ‘시뇨리 광장(Piazza dei Signori) 옆에 있다. 줄리엣의 집에서 걸어가면 북동 방향인데, 넉넉잡아 20분 정도면 도착한다. 말하자면 두 집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가까이 있어서 로미오에겐 좋았겠지만, 걸핏하면 두 집안 남자들이 길에서 부딪혀 싸움을 벌이는 이유도 됐다. 두 집을 연결하는 길은 관광객의 물결 때문에 고전의 감흥을 음미하며 걷기에는 약간 무리일 것이다. 그래도 이탈리아 특유의 돌길을 밟으며, 또 오래된 도시 베로나의 건물들을 구경하며 걷다보면, 갑자기 16세기의 시간 속으로 상상이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그만큼 베로나는 여전히 옛 시간을 잘 보존한 박물관 같은 도시다.

하지만 제피렐리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을 때 문제가 됐던 것은 베로나의 현재의 모습이 셰익스피어 시대의 그것과 대단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보존이 잘돼도, 300년 이상의 변화를 무화시킬 순 없었다. 줄리엣의 집에 동상이 있을 리 없고, 그렇다면 도입부의 유명한 ‘발코니 장면’을 그곳에서 찍을 수 없다. 광장, 교회 등 비극의 주요 장소도 변해, 시대극의 묘미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제피렐리는 주요 장면들을 모두 다른 도시에서 촬영했다. 과수원 정원이 있는 줄리엣의 집은 로마 근교의 아르테나(Artena)라는 조그만 고(古)도시에서 촬영하는 식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밀결혼도 베로나가 아니라 중세도시 투스카니아(Tuscania)에 있는 ‘산 피에트로 교회’(Chiesa di San Pietro)에서 찍었다. 11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교회는 보존상태가 좋아 종종 영화의 촬영지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매와 참새>(1966)에서, 중세 시퀀스는 대부분 여기서 촬영됐다.

현대 베로나의 매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연한 <레터스 투 줄리엣>이 제격이다. 이탈리아의 풍경을 이용하는 전형적인 ‘관광용 영화’인데,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디제 강 주변의 적갈색 건물들, 두 집안의 남자들이 자주 싸웠을 ‘에르베 광장’(Piazza Erbe), 그리고 줄리엣의 집이 있는 카펠로 거리 등이 강조돼 있다. 베로나를 ‘사랑의 도시’로 성격화시키기 위함인지, 영화의 전체적인 색깔이 옅은 노란색으로 표현돼 있다. 그 색깔이 베로나의 실제 색깔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로나를 황금빛 햇살이 옅게 내려오는 따뜻하고 포근한 도시로 기억하는 것 같다. 두 연인의 사랑에 제격인 색깔인 셈이다.

<오셀로>, 데스데모나의 집으로 쓰인 콘타리니 파산 궁전.

베네치아, 전쟁의 도시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 배경의 작품에서 주요 공간으로 두번 등장시킨 유일한 도시가 베네치아다. <오셀로>와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서다. 두 작품 모두 여러 번 영화화됐다. <오셀로>는 권력의 허무함을, <베니스의 상인>은 금력의 잔인함을 묘사하고 있는데, 권력과 금력은 베네치아의 상징이기 때문일 테다. 베네치아는 십자군 전쟁 때 동방 진출의 주요 무역항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급성장했고,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터키 등 이슬람 국가의 유럽 진출을 저지하는 전선이 되면서 유럽 내 세력균형의 주요국가가 됐다.

<오셀로>는 터키의 위협을 받을 때가 배경인 비극이다.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베네치아는 사이프러스 섬을 통제해야 하는데, 터키의 공격은 늘 위협의 대상이었다. 그 불안을 씻어준 베네치아의 전쟁영웅이 유색인 오셀로다. <오셀로>가 영화적으로 주목 받은 결정적인 계기는 오슨 웰스의 영화 <오셀로>(1952)가 발표되고, 이 작품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웰스가 제작비 부족으로 4년간 이곳저곳을 옮겨가며 겨우 촬영을 마친 사실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제때에 배우를 다시 부르지 못해, 그의 영화에는 배우의 뒷모습만 나온 장면들이 제법 많다. 대역을 썼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서 이아고가 로드리고를 죽이는 장면에서는 체불 문제로 의상이 도착하지 않자, 웰스는 기지를 발휘해, 장소를 아예 목욕탕으로 바꿔 배우들이 옷을 입지 않은 채 연기하도록 했다.

영화의 전반부는 오셀로가 데스데모나 부친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녀와 결혼하고, 그 결혼 때문에 베네치아의 의원들 앞에 불려가 심문을 받는 장면이다. 이게 베네치아 배경의 전부다. 나머지는 사이프러스가 배경이다. 베네치아 장면은 10분 정도의 길이인데, 그 어떤 베네치아 배경 영화들보다 도시의 빼어남, 특히 건축의 매력을 잘 표현하고 있다. 먼저 오셀로는 밤에 데스데모 나의 집에 가서 그녀를 빼낸 뒤 ‘기적의 산타 마리아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i Miracoli)에서 비밀결혼식을 올린다. 데스데모나의 집은 ‘콘타리니 파산 궁전’ (Palazzo Contarini Fasan)에서 촬영됐는데, 지금은 아예 ‘데스데모나의 집’(Casa di Desdemona)으로도 불린다. 비잔틴 양식이 가미된 베네치아 특유의 고딕양식 건물로, 반원형의 화려한 창문과 테라스가 특징이다. ‘베네치아 고딕’은 중부 유럽의 그것처럼 하늘을 찌르는 높이가 특징이 아니라, 동양의 양식들이 융합된 이유에서인지 아담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데스데모나는 테라스에 나와서 오셀로의 부름에 답한다. 딸이 없어진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데스데모나의 부친은 무기를 들고 한밤중에 하인들과 함께 오셀로의 집으로 향한다. 오셀로의 집은 ‘황금의 집’이란 뜻의 ‘카도로’ (Ca′ d′ Oro)이다. 역시 편안한 베네치아 특유의 고딕 건물인데, 데스데모나의 집에 비해 더 크고 더 화려하다. 말하자면 화려하고 웅장한 집의 외양이 당대 오셀로의 권력의 크기를 비유하는 셈이다. ‘카 도로’는 현재 ‘조르지오 프란케티 갤러리’로 쓰이고 있는데,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유명 건물 가운데 하나다. 여기까지 웰스 특유의 빠른 편집으로 거침없이 진행된다.

곧이어 ‘총독궁’(Palazzo Ducale)에서의 심문 장면이다. 산마르코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총독궁은 베네치아 고딕의 상징적인 건물로, 너무나 유명하여 다른 나라에 유사한 건물들이 제법 있을 정도다(한국에도 있다. 이를테면 강남의 한 명품 백화점). 오셀로는 여기서 유명한 연설, 곧 “그녀는 제가 겪은 위험 때문에 절 사랑했고, 저는 그녀가 그 위험을 동정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다”는 말로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낸다. 데스데모나 부친의 주장, 곧 “(유색인 오셀로가) 간교한 지옥의 술책으로 자기 딸을 강제로 납치하고 더럽혔다”는 말은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한다. 말하자면 총독궁의 심판에서 오셀로는 완승을 거둔다. 권력을 상징하는 총독궁 건물의 견고하고 단단한 느낌마저 전쟁 영웅 오셀로의 캐릭터처럼 보이는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 리알토 다리.

베네치아, 상인의 도시

총독궁이 권력의 상징이고, 그 건물처럼 권력의 속성이 드라마의 테마로 제시된 작품이 <오셀로>다. 반면 금력의 도시로서의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돈의 속성을 테마로 다룬 작품이 바로 <베니스의 상인>이다. <오셀로>가 총독궁의 드라마라면, <베니스의 상인>은 ‘리알토’(Rialto)의 드라마다. ‘리알토 다리’로 유명한 리알토 지역은 오래전부터 베네치아 경제계의 중심지였다. <베니스의 상인>은 바로 이 상업지역인 리알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베니스의 상인>도 여러 번 영화화됐다. 우리에겐 친숙한 것은 아무래도 알 파치노 주연의 <베니스의 상인>(2004)일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리알토 다리 부근에서 시작한다. 베네치아 사람들 일부가 고리대금업을 하는 유대인들을 저주하며, 이들을 붙잡아 다리에서 떨어뜨리고 있다. 당시의 법에 따르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은 불법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업을 필요악으로 여겼지만, 일부 기독교 광신도들은 유대인들을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유대인임을 표시하는 붉은 모자를 쓴 샤일록(알 파치노)도 현장에서 동료들이 린치의 대상이 되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무역업자 안토니오(제레미 아이언스)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멸시의 눈빛으로 침을 뱉는다. <오셀로>에서 이아고가 상관인 오셀로 장군으로부터 무시당하자 복수를 계획하는 것처럼, 이 순간 샤일록도 침을 뱉는 안토니오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리알토는 돈을 둘러싼 무역, 금융업, 사채업, 유흥업 등 세속적 이해관계로 뒤얽혀 있는 ‘상인의 지역’이라면, 이곳과 대조되는 낙원 같은 곳이 ‘명판결’로 유명한 포셔가 사는 가상의 공간 벨몬트이다. 고전에선 베네치아 인근으로만 제시돼 있다. 포셔는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말고, 단지 살 1파운드만’이라는 조건으로 샤일록을 패배시킨 판관이다. 영국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포셔는 현대의 법정이라면 패배해야 마땅하다. 언어의 보편성을 무시하고 특수성, 곧 계약서엔 ‘살 1파운드’만 있다는 자구에 집착해 법을 오독했다는 것이다(<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테리 이글턴 지음). 우리는 살을 베어내려면 피가 흐른다는 사실은 보편적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녀를 미모에, 부자에, 총명한 두뇌에, 사랑하는 연인까지 둔 비현실적인 인물로 그렸다. 그래서 그녀를 동화 같은 공간인 벨몬트에 살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화의 주인공이라면 세속인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는 이미 결정나 있는 셈이다. 영화 <베니스의 상인>에서 벨몬트는 베네치아에서 촬영되지 않았다. 역시 가상의 공간이란 느낌이 나도록 바다의 한가운데 있는 섬처럼 표현했다. 포셔가 사는 ‘그림 같은 성’은 베네치아 인근에 있는 티에네(Thiene)라는 작은 도시의 ‘포르토 콜레오니 빌라’(Villa da Porto Colleoni)이다. 역시 베네치아 고딕 스타일에, 프랑스식 특유의 구획된 정원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베네치아는 셰익스피어 시대에 화려함의 극치에 도달한 국제도시였다. 게다가 정치적 패권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베네치아에서 살벌한 정치(<오셀로>)와 돈을 둘러싼 상인들의 잔인한 경제(<베니스의 상인>)를 상상했다. 현대인에겐 운하가 흐르는 낭만적인 도시로 비쳐지는 베네치아가 셰익스피어에겐 세속의 욕망이 충돌하는 비정한 공간이었던 셈이다.

헛소동, 토스카나 지역에서 촬영했다.

시칠리아, 낭만화된 이국정서

셰익스피어가 사랑의 낭만성을 이탈리아에서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헛소동>이다. 영화로 치면 로맨틱 코미디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티격태격하다 결국 결합되는 이야기다. 비슷한 코미디로 파도바를 배경으로 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도 있다. 제피렐리가 이것도 영화화했는데(1967년), 아쉽게도 시대의 재현 문제 때문인지 거의 모든 장면을 세트에서 촬영했다. 대학과 학문의 도시 파도바의 매력을 보고 싶은 관객에겐 실망이었다(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사람인 갈릴레이가 한때 파도바대학 교수였다). <헛소동>은 셰익스피어 전문 감독인 케네스 브래너가 1993년 영화화했다. 브래너는 <헨리 5세>(1989)로 감독 데뷔한 뒤, <뜻대로 하세요>(2006)까지 모두 5편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출했다. <헛소동>의 배경은 육지와 연결되는 시칠리아 섬의 오른쪽 끝부분 도시인 메시나다.

<헛소동>은 두 커플의 이야기다. 약혼녀가 정조를 잃어버렸다는 악소문에 시달리다 결국 오해를 푼 뒤 약혼자와 결합되는 이야기, 그리고 만나자마자 싸우기만 하던 남녀가 결국 결합되는 이야기 등이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 모든 게 잘 해결되는 코미디인데, 이런 동화를 셰익스피어는 시칠리아에서 풀어놓는다. 말하자면 셰익스피어에게 이탈리아의 낭만성은 남부에 있고, 특히 유럽인들에겐 강렬한 이국정서를 자극하는 저 먼 곳 시칠리아에 있는 것이다.

브래너가 <헛소동>을 촬영할 때도 문제는 시대상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메시나는 지진의 피해로 여러 번 파괴와 복원을 반복했고, 셰익스피어 시대의 모습은 거의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헛소동>의 이야기는 주로 메시나 영주의 별장에서 전개된다. 메시나 시내가 보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브래너는 결국 촬영장소를 토스카나로 바꾸었다. 포도주로 유명한 키안티 지역의 작은 마을인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에서 촬영했다. 키안티 지역 특유의 야트막한 언덕들, 포도밭들, 사이프러스 가로수들이 더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영주의 집으로 나온 곳은 ‘비냐마조 빌라’(Villa Vignamaggio)인데, 특히 미로처럼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말하자면 코미디의 사랑 이야기가 정원의 그 미로처럼 꼬여가다, 결국 출구를 찾는 셈이다. <헛소동>은 셰익스피어의 ‘로맨틱’ 코미디를 이탈리아의 ‘달콤한’ 자연풍경과 결합시킨 대표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셰익스피어는 시칠리아에서 낭만적 코미디를 상상했는데, 사실 시칠리아는 ‘한’(恨)이 서린 땅에 더 가깝다. 원래 그리스의 식민지였고, 수많은 외침을 받았고, 지금도 중앙정부로부터 약간 소외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다시 말해 시칠리아는 코미디보다는 비극적인 정서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 이탈리아 특유의 넉넉한 유머도 발전했다. 다음엔 시칠리아를 여행하겠다. 우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안내를 받아, 마피아영화들을 통해 시칠리아를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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