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FF 37.5]
[STAFF 37.5] ‘나는 왜 여기서 이 장면을 찍고 있는가’ 자문한다
2015-11-13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들꽃> 이성은 촬영감독

영화 장편 2014 <들꽃>

단편 2013 <황찡과 마부> 2013 <아빠의 맛> 2012 <밤이 밤을 밝히었다> 2012 <작은 방>

뮤직비디오 동방신기 <Rise As One> 엑소 X <스타워즈> 콜라보레이션 <라이트 세이버>(가제)

“전쟁 사진가라고 생각해달라. <들꽃>의 이야기가 전쟁과도 같으니까.” 박석영 감독은 이성은 촬영감독에게 <들꽃>의 카메라가 견지해야 할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들꽃>은 가출해 거리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위험이 도사리는 도시에서 사람의 온기와 안정된 공간을 찾는 아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전쟁이다. “카메라가 인물들로부터 떨어져 있기보다는 인물들 옆에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견디자, 는 이야기를 감독님과 많이 나눴다. 찍는 사람의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종종 격하게 흔들린다. 가출 청소년인 수향(조수향), 은수(권은수), 하담(정하담) 세명의 10대 소녀들이 처음 만나는 다리 밑 신도 그렇다. 낯선 남자가 하담을 때리고 수향이 남자에게 달려드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소녀들의 움직임을 끈질기게 좇는다. “어떤 경우는 한 신을 한 테이크로 20분가량 찍었다. 숏을 나누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에 맞춰 카메라가 움직인다. 이 배우를 찍는데 등 뒤에서 다른 배우의 열기가 전해지면 그쪽으로 카메라가 자연스레 돌아갔다.” 공간을 찍을 때도 인물이 우선이었다. “아현동 철거촌 폐가에 아이들이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예뻐 와이드앵글로 찍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절대로 예쁠 수 없는 거잖나. 반성이 되더라.”

카메라를 들 때면 ‘나는 왜 여기서 이 장면을 찍고 있는가’라고 자문해본다는 이성은 촬영감독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뒤늦게 생긴 편이라며 더 치열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막연히 영화가 좋아 상명대 영화과(06학번)에 들어가 촬영을 전공했지만 정신 차리고 영화를 공부한 건 군대를 다녀온 뒤였다.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을 부적처럼 들고 다니며 읽었고 영화와 철학책들을 찾아가며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30기(촬영 전공)로 단편 작업들을 한 뒤 첫 번째 장편 촬영작인 <들꽃>까지 그렇게 달려왔다. <들꽃> 이후 그는 또 어떤 작품과 만날까.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찍고 싶은데 촬영감독으로서 좋은 그림을 제시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그 와중에 동방신기와 엑소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게 된 게 큰 공부가 되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겸 감독이 지난해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와의 우정’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연 현장을 촬영해둔 것도 있다. 정성일 감독이 그것을 장편화할 계획이라고 하니 <들꽃>에 이은 이성은 촬영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 되지 않을까. 박석영 감독과는 세 번째 꽃 시리즈 <재꽃>(가제)도 함께하자고 이미 의기투합한 상태다.

목탄으로 그림 그리기

올해 들어 이성은 촬영감독이 마음 붙인 취미다. “목탄이 좋은 게 손으로 슥슥 문질러가며 그림을 그리니까 종이나 탄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촉감이 정말 좋다.” 헌팅 장소에서 돌아와 그곳에서 받은 인상을 가볍게 그려두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싶을 때도 목탄화 그리기가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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