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한 남자를 둘러싼 모녀의 사랑 <세상 끝의 사랑>
2015-11-11
글 : 김수빈 (객원기자)

자영(한은정)은 일과 사랑 모두에 외면받은 여자다. 알코올중독에 빠진 남편의 폭력은 점점 심해지고, 대학에서도 가정 문제를 이유로 승진에서 제외한다. 고등학생 딸 유진(공예지)은 부모의 보살핌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자영 부부가 크게 싸운 날 밤, 쓰러져 있는 자영을 보고 엄마가 죽었다고 오해한 유진은 아빠를 음독 살해한다. 자영의 고군분투로 유진은 무죄를 선고받지만 사건은 모녀에게 트라우마를 남긴다. 3년 후, 자영과 재수생이 된 유진. 이들 모녀 곁에 동하(조동혁)가 나타난다. 자영은 그와 결혼하며 안정된 삶을 꿈꾼다. 자영이 직장에서의 커리어를 쌓는 데 여념이 없는 사이, 동하와 유진은 외로움을 공유하며 점차 금기된 사랑에 빠져든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인식 감독은 동성애를 한국영화의 주요 소재로 삼고(<로드무비>(2002)),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얼굴없는 미녀>(2004)) 등 파격적인 시도를 거듭해왔다. 감독은 이번에도 ‘한 남자를 둘러싼 모녀의 사랑’이라는 범상치 않은 소재를 택했다. 금기시된 사랑을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선 인물들이 겪는 감정의 변화를 얼마나 세밀하게 묘사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지나친 생략 혹은 급한 전개로 인물의 감정선이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시종일관 딸을 방치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던 자영이 일순간에 모든 희생을 감내하는 결말에도 의문 부호가 찍힌다. 제대로 발화하지 못하는 캐릭터들 속 유진은 유일하게 버려진 자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인물이다. 이를 연기한 신예 공예지의 눈빛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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