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신인감독이 또 있을까. 제4회 스웨덴영화제 개막작 <스톡홀름 스토리>(2013)를 연출한 카린 팔리엔 감독은 영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을 시작해 의상감독, 세트 디자이너, 캐스팅 디렉터, 시나리오작가, 조감독까지 거친 일당백의 영화인이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영화 프로듀서였던 어머니를 따라 13살 때 영국 케임브리지로 이주한 뒤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고, 이후 스톡홀름 드라마 인스티튜트에서 영화, 연극분장, 특수효과를 공부했다. 15년간 영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했고, 48살 때 <스톡홀름 스토리>로 장편 데뷔했다. <스톡홀름 스토리>는 어떤 결핍을 가진 다섯명의 주인공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이야기다. 최근엔 스웨덴 공영방송국 <SVT>의 TV시리즈 <보너스패밀리>의 10개 에피소드 중에서 3편을 연출했다.
-다섯 주인공은 서로 교차점을 찾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지금의 스톡홀름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인가.
=전부 반영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스톡홀름은 독신가구 비율, 이혼율이 유럽에서 최고로 높다. 그만큼 외로운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 않을까.
-다중플롯구조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영화에서 철두철미한 재정부 직원 토마스를 연기한 배우 요나스 칼손의 단편소설집 <두 번째 목표>를 각색한 영화다. 실제로 그의 모습은 재능 없는 작가 요한 캐릭터에 반영돼 있는데 그가 요한을 연기하기엔 나이가 많아 토마스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원작엔 10개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시나리오작가와 그중 무엇을 제거할지 계속 상의했다. 중요한 건 정전사태와 같은, 캐릭터들의 공통의 경험이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서로 가까이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주제였다. 현대인들은 행위(doing)하느라 바빠서 존재(being)하는 걸 잊고는 하잖나.
-영화 만드는 과정을 모두 겪은 뒤 그중에서도 왜 영화감독이 되기를 꿈꿨나.
=어머니는 영화 프로듀서였고 아버지는 사운드믹싱 기사였다. 영화가 자연스럽게 내 삶의 일부였다. 어머니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들을 영화화했는데 그중 <Emil in Lönneberga>(1971)을 찍을 땐 나도 현장에 있었다. 에밀 역을 맡은 배우가 말 타는 걸 못해서 11살이던 내가 그의 스턴트를 맡기도 했다. (웃음) 어릴 때 나는 잉마르 베리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왕가위가 집에 드나드는 걸 수시로 봤다. 잉마르 베리만과 로이 앤더슨을 특히 자주 봤는데 내 머릿속에 그들은 악마로 기억돼 있다. (웃음) 감독이 되려면 남자, 백인, 악마여야 되는 거구나 싶어서 처음부터 감독이 될 생각을 하진 않았다. 나중엔 내가 영화 만드는 과정을 다 알고 있는데 감독을 못할 건 또 뭔가 싶었다. 영화연출이 아주 마술적이고 신비한 일인 줄 알았는데 결국 마술도, 신비도 아니고 그냥 노동이더라. (웃음)
-그러고보니 <스톡홀름 스토리>는 왕가위의 <중경삼림>(1994)을 연상시킨다.
=제목을 <스톡홀림 포레스트>로 지을 걸 그랬나보다. (웃음)
-<스톡홀름 스토리>를 연출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 있나.
=알렉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는 유머, 드라마, 서스펜스의 절묘한 균형을 만들어낼 줄 아는 감독이다. 촬영은 당연히 환상적이고! 제인 캠피온과 우디 앨런의 초기작도 정말 좋아한다. 최근작은 아니지만. (웃음) 나는 언제나 그 영화들로 돌아가곤 한다.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소재는 뭔가.
=이유를 모르겠지만 스웨덴엔 범죄영화가 정말 많다. 너무 어둡지 않나. (웃음)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작은 드라마들, 그걸 통해 관계맺기를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나도 투자를 잘 받기 위해서 범죄를 소재로 하는 TV시리즈를 하나 만들 거다. (웃음) 주제는 가족 드라마이고 원작 소설도 있다. 그것과 별개로 투자가 되든 안 되든 내년 5월엔 세명의 여성에 관한 영화의 촬영을 시작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