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프롬 헬>의 창녀, 헤더 그레이엄
2002-03-2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또 창녀라고? 꺼져라, 더러운 숙명아!

헤더 그레이엄은 항상 자신이 연기한 인물을 변호하려 애쓴다. <오스틴 파워>는 아이들이 열번이라도 되풀이해서 보려할 재미있는 영화고 <부기 나이트>는 배우들의 재능과 애정이 빛나는 영화라고 자부하지만, 이야기가 그녀 자신에게로 돌려지면, 대답은 한결같다. 섹스가 전부는 아니라고. 숙명이다. 텅 빈 파란 눈동자와 하얗게 빛이 흐르는 육체를 가진 그녀는 마음 깊게 울리는 대사를 내뱉을 수 없는 백치로 갇혀 있었다. “사람들은 여배우가 신음하는 모습을 좋아하지만, 그녀가 스크린 밖에서도 누군가와 그러길 원치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현실의 존재다.” 부모와 2년 동안 의절하면서까지 연기를 고집한 그녀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스스로 표현하듯 “양날의 칼”이었을지 모른다.

그레이엄이 칼날 위를 걷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그녀가 집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던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FBI 요원인 아버지와 전직 교사인 어머니는 딸이 교회에 어울리는 순진한 카톨릭 교도로 자라길 원했지만, 그녀는 이상하기만 했다. “내 이웃은 백인이었고 공화당원이었으며 부유한 중산층이었다. 전부 똑같았다. 예술이 자랄 수 없는 동네였다”. 오직 나 혼자만이 이들과 떨어져 있다고 느꼈던 말없는 외톨이.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내일을 보는 사람들을 견뎌낼 수 없었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할리우드로 떠났고 <드럭스토어 카우보이>같은 영화들에서 작은 역을 얻어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여자를 성(性)하고만 묶어두는 시선들과 부딪쳤다.

푸른 눈동자와 금발의 젊은 여자는 창녀, 포르노 배우, 머리 나쁜 모델.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기는 할리우드도 고향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레이엄은 겹겹이 포개지는 그 배역들의 틈새에서 다른 공기로 숨쉬고자 했다. 침대에서 뒹굴 때도 롤러스케이트를 벗지 않는 <부기 나이트>의 롤러 걸은 연민을 자아내게 됐고, 지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오스틴 파워>의 펠리시티는 “여자들이 비교적 행복했던” 70년대의 자유에 젖어 탄성을 질렀다. 또다시 성적으로 착취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감독 첸 카이거 때문에 선택한 <킬링 미 소프틀리>는 “그저 무언가에 열정을 가진다는 사실을 축복하는 영화”로 받아들였다.

<프롬 헬>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도 그녀 머리 속에 처음 떠오른 단어는 ‘창녀’였다. 그녀가 연기한 메리 켈리는 전설적인 살인마 잭 더 리퍼의 목표가 된 아름답고 불쌍한 창녀. 그러나 그녀는 잭 더 리퍼에 열광한 상대역 조니 뎁과 달리, 그 영화 아주 밑바닥에서 맴도는 사랑 이야기가 좋았다. “또 창녀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메리는 착한 여자였고 사랑을 키우는 여자였다. 1880년대에 가난한 여자들은 몸을 파는 것밖에 먹고 살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레이엄은 섹스와 함께 유독 여자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그것 역시 양날의 칼,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오물같은 섹스에 뒤덮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겪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레이엄을 보는 할리우드의 편견은 여전히 변하지 않아서, 그녀는 다음 작품 <구루>에서도 명상 지도자를 섹스 지도자로 착각하는 성인영화 배우를 연기하게 됐다.

그러나 이제 서른두살의, 혼자 사는 그녀는 파닥거리는 생기를 가진 배우다. <커미티드>의 캐스팅 디렉터가 그레이엄 대신 “좀더 심각하게 보이는 나탈리 포트만”을 원하는 제작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그레이엄은 자기 손으로 그 역을 따냈다. 몇달 동안 애걸복걸해서. 그녀는 얻어야만 할 것과 놓쳐도 될 것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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