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공연하는 무명의 트럼페터 닉(크리스 에반스)은 보스턴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놓치고 우왕좌왕하는 브룩(앨리스 이브)을 만난다. 가방을 도둑맞아 무일푼이 된 브룩을 도우려 닉은 백방으로 애쓰지만, 그날따라 유독 가진 게 없어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뉴욕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밤을 새우는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다가도, 시간이 지나 서로의 상처를 알아가며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비포 위 고>는 배우 크리스 에반스의 연출 데뷔작이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남녀의 짧은 시간을 다룬 이야기에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 3부작의 흔적(심지어 제목조차!)은 완연하지만, 특유의 무드를 구축하는 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크리스 에반스와 앨리스 이브의 연기로만 채워진 영화는 보통 우려할 수 있는 것처럼 다소 지루하다. 두 사람이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하는 일 역시 흥미롭지 않기는 마찬가지. 뮤지션을 가장해서 비상금을 마련하고, 닉이 6년 전 헤어진 옛 연인에게 다시 프러포즈할 수 있도록 브룩이 돕는 과정이 군데군데 등장하지만, 두드러지는 소동 없이 잔잔하게 최소한의 역할을 해내고 사라진다. 특정한 사건 대신 영화를 메우고 있는 두 남녀의 대화 역시 그날 밤의 처지를 자조하는 농담과 사랑에 대한 무기력한 말들이 대부분이라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지는 못한다. 이런 밋밋한 분위기가 감독의 패착이라기보다 의도에서 비롯됐음은 이해하나, <비포 위 고>가 따분한 영화라는 감상은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