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스틴은 대표적인 덴마크 여배우 중 한명이다. 오덴세극장 연극아카데미를 졸업하며 연기를 시작했고, 라스 폰 트리에와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주도한 도그마95 선언의 유일한 배우 멤버로 <셀레브레이션>(1998), <백치들>(1998), <미후네>(1999)에 출연했다. 이후 꾸준한 활동으로 덴마크영화계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했으며 <그날 이후>(2004), <당신의 허락을 얻어>(2007) 등 두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사일런트 하트>로는 제62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평소 존경해왔던” 빌 어거스트 감독과의 협업은 어땠는지 파프리카 스틴에게 서면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사일런트 하트>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뭔가.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
=첫 번째 이유는 물론 빌 어거스트 감독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그와 그의 영화를 존경해왔다. 그리고 그는 덴마크영화계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난 뒤 시나리오를 읽었고, 예상대로 시나리오 역시 무척 좋았다. 내가 연기한 큰딸 하이디가 등장하는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하이디는 아주 복잡하고도 입체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하이디는 얼핏 완고한 듯 보이나 속내가 여리고 무너지기 쉬운 여인이다. 스스로 생각한 하이디 캐릭터에 대해 말해달라.
=하이디는 매우 불안정한 캐릭터다. 어머니 에스더는 마지막으로 보는 딸이기에 더욱더 하이디를 보려고 하고, 사랑하려고 하는데 하이디는 자신이 에스더에게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에스더가 평소 하이디를 무뚝뚝하게 대해왔기 때문이다. 또 하이디는 가족 중 산느를 가장 신뢰한다. 그래서 엄마와의 싸움에 그녀를 연루시키지만 결국 지고 만다. 영화는 여지없이 슬픈 결말을 맞게 되지만 어찌됐든 그 순간을 계기로 하이디는 성장하고 산느와의 관계를 회복한다.
-자매는 결국 어머니의 의지를 존중해 자발적 안락사를 돕는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답하기 난감하다. 그런 상황이 닥쳐봐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빌 어거스트 감독이 바랐던 하이디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나. 감독과 캐릭터를 두고 어떤 얘길 나눴는지 궁금하다.
=그는 다소 과묵한 편이었다. 우린 보통 둘이서 리딩을 진행했는데 도중에 내가 해석한 지점에 대해 의문이 생기면 그는 그 이유를 꼭 물어왔다. 정작 현장에선 나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연기했기 때문에 미리 생각해둔 하이디 캐릭터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지만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분은 없었다. 빌 어거스트 감독은 늘 옳게 선택해왔다고 생각한다. 그의 연출방식이 아주 마음에 들고 그와 함께 일하는 게 즐겁다고 느낀다. 말을 아끼는 대신 그는 눈으로 우리의 연기에 대해 만족하는지 어떤지 표현한다. 한 장면을 세번 이상 찍지 않는다. 그는 같이 일하는 배우, 완성된 시나리오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감독이다.
-가장 고심해서 촬영한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 그 까닭은 무엇인가.
=헛간에서 찍은 신이 가장 인상적이다. 남편에게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갖게 되고, 신뢰하던 아버지에게도 배신감을 느낀다. 갑자기 하이디 자신의 모든 삶이 거짓되고 헛된 것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조용한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다 감정이 점점 고조되며 소리치고, 울고, 격앙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캐릭터들이 긴밀하게 연관돼 있던 관계를 생각하면서 연기해야 했기에 더 어렵게 느껴졌다.
-다음 출연작은 결정했나.
=안타깝게도 아직 정해진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