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면, 시칠리아는 약간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비칠 것 같다. 양떼들이 거니는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얼굴들에 대한 인상 같은 거다. 시칠리아의 ‘신화’가 전세계로 확산된 데는 <대부>(1972)의 역할이 컸다. 주로 유럽인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시칠리아는 <대부>가 발표된 뒤, ‘지중해의 낭만’을 자극하는 데 있어서는 그리스와 맞먹는 세계적 명소로 격상된다. 알다시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탈리아 이주민의 아들이다. 그는 시칠리아를 신화의 공간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이클(알 파치노)이 전쟁 같은 경쟁을 벌이던 살벌한 도시 뉴욕을 벗어나자마자 도착한 곳이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코를레오네(Corleone)이다. 부친 비토 코를레오네(말론 브랜도)의 이름은 이 고향의 지명에서 비롯됐다. 이곳은 동시대의 공간이기보다는 그리스의 신화를 그린 풍경화처럼 제시된다. 니노 로타의 감성적인 음악은 그런 기분을 증폭시켰는데, 뉴욕에서 시칠리아로의 이동은 마치 비현실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신화의 땅 시칠리아
‘대부’ 비토 코를레오네는 셋째 아들 마이클만은 폭력의 세계에 끌어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라이벌들의 총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비토는 침상에 누워, 가족의 ‘명예’를 구하려다 이제 대학생에서 살인자로 변해버린 막내아들 걱정에 깊은 시름에 빠진다. 그때 오버랩되는 곳이 양떼들이 보이는 코를레오네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뜨거운 태양과 살랑거리는 바람, 그리고 황금빛 들판은 목가적 이상향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마이클은 두 경호원과 함께 엽총을 메고 시간을 낚는 한가한 사냥꾼처럼 들판을 가로질러 마음껏 자연의 평화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목가적인 풍경이 끝까지 평화를 보장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암시는 니노 로타의 음악에 숨겨져 있다. 이탈리아 특유의 감성 깊은 음악이 듣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어떤 한(恨) 같은 게 느껴지는 음악이다. 말하자면 니노 로타의 음악은 시칠리아의 상징이자, 마이클의 상징이기도 하다. 굴곡진 시칠리아의 운명이, 그리고 마이클의 비극적인 삶 자체가 그 음악과 대단히 닮아 있어서다.
약 3시간 길이의 영화에서 시칠리아 시퀀스는 20분도 채 안 된다. 그런데 비정하고 지극히 세속적인 공간인 뉴욕과 대조돼서 그런지 시칠리아의 풍경은 영화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코폴라가 상상한 코를레오네는 고대 그리스의 아카디아 같은 곳이다. 목동과 양떼들이 평화롭게 거니는 곳 말이다. 하지만 코를레오네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실제의 코를레오네는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코를레오네는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에서 정남향에 있다. 넉넉잡아 자동차로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대부>의 시대적 배경은 2차대전 이후인데, 이미 그때 코를레오네는 시칠리아 마피아, 곧 ‘코자 노스트라’(Cosa Nostra)의 본산으로 악명이 높았다. 코를레오네는 지금도 이름을 들으면 왠지 두려움이 느껴지는 도시다. 시장, 경찰책임자, 노조위원장 등 마피아는 자기들 일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암살했다. 게다가 1970년대에 <대부>가 촬영될 때는 마을이 현대화되어 더욱더 낭만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 있었다.
코폴라가 원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신화였다. 결국 촬영지를 바꾸었다. 원래의 코를레오네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가서, 시칠리아 섬 동쪽 끝의 메시나와 타오르미나 사이의 작은 마을들에서 찍었다. 먼저 시칠리아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마이클이 경호원들과 사냥복 차림으로 들판을 거닐며 코를레오네라고 소개하는 언덕 위의 고도(古都)는 포르차 다그로(Forza d’Agro)이다. 인구 1천명도 안 되는 조그만 마을로, 영화에서 보듯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는 낡은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수태고지의 성모 교회’(Chiesa della Santissima Annunziata)는 폐허처럼 건물 앞이 많이 손상돼 있어서, 이 마을의 오랜 시간을 한눈에 알게 한다. 시칠리아는 원래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로 건설된 곳이다.
마이클은 시칠리아에서 아폴로니아(시모네타 스테파넬리)라는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첫눈에 반한 그날 단숨에 그녀의 부친이 운영하는 카페인 ‘바 비텔리’(Bar Vitelli)에서 정식으로 청혼까지 한다. 아마 사랑이 성취되는 곳이어서 그런지 이 카페는 ‘<대부> 시리즈’의 팬들에겐 가장 인기 높은 곳 같다. 하지만 ‘바 비텔리’도 영화 속 내용과 달리 코를레오네에는 없고, 포르차 다그로 근처의 사보카(Savoca)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다. 지금도 관광명소로 여전히 인기 높은 카페다. 시칠리아의 신부 아폴로니아와의 주요한 순간은 대개 사보카에서 촬영됐다. 역시 언덕 위에 있는 인구 2천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인데, 폐허처럼 보이는 오래된 돌집들 때문에 현대라는 시간 개념이 지워질 정도다. 마이클이 그녀와 산길에서 데이트를 하고(전통적인 시칠리아 사람들답게 가족들은 감시도 할 겸 두 사람을 뒤따라 걷는다), 폐허 같은 산타 루치아 교회(Chiesa di Santa Lucia)에서 결혼하고, 마을의 중심에 있는 작은 광장에서 새 신부와 춤을 출 때면 사보카는 영락없이 신화 속의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마이클에게 시칠리아는 사랑의 성지가 됐고, 그는 지금 그곳에서 꿈을 꾸는 것이다.
코를레오네, 시칠리아 마피아의 본산
시칠리아 사람들은 마이클을 자기들 식대로 ‘미켈레’라고 부른다. 이탈리아 사람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미켈레의 달콤한 신혼 생활도 결국 라이벌 마피아들의 복수 때문에 짧게 끝나고 만다. 마이클은 아폴로니아와 함께 ‘노예들의 성’(Castello degli Schiavi)이라고 불리는 저택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신혼의 꿈을 쌓는다. 마이클을 노린 자동차의 폭발 사고로 아내 아폴로니아를 잃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에선 코를레오네 인근에 있는 것처럼 그려지는 저택 ‘노예들의 성’은 아폴로니아의 마을인 사보카 근처의 피우메프레도(Fiumefreddo)에 있다. 오래된 건물은 세월의 때가 묻어 시커멓게 변해 있고, 종려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정원은 그냥 들판처럼 자연스럽게 꾸며져 있다. 마이클은 이곳에서 첫 결혼을 했고, 결국 이곳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이한다(<대부3>).
<대부>를 발표할 때 코폴라는 33살의 젊은이였다. 코폴라는 사실 대학 시절(UCLA)부터 ‘영재’로 이름을 날렸다. 저예산 독립영화 제작으로 유명한 ‘로저 코먼 사단’의 청년 영화인들, 곧 코폴라, 루카스, 스코시즈, 스필버그 등의 그룹에서 코폴라는 단연 리더였다. 불과 24살에 <디멘시아 13>(1963)으로 장편 데뷔했고, 3년 뒤 <넌 이제 어른이야>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됐다. ‘영재’ 오슨 웰스의 최연소, 최초 같은 기록들을 모두 깰 기세였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듯, 코폴라는 파라마운트사로부터 처음 <대부>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너무 실망하여 부친 앞에서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테네시 윌리엄스를 흠모했던 코폴라는 로저 코먼이 주목한 대로 먼저 뛰어난 글솜씨를 선보였다. <패튼 장군>(1970)의 시나리오작가로서 아카데미상도 받았다. 영화적으로 청년 코폴라가 의식했던 감독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이었다. 그래서인지 몽타주는 코폴라 영화에서도 주요한 요소가 된다. 코폴라는 특히 프랑스 평단에서 높게 평가하던 ‘작가’ 감독이 되고자 했다. 자기만의 예술적인 인장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자기가 준비 중인 시나리오들은 다 연기되고, 갱스터 장르영화를, 곧 할리우드 상업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코폴라는 갱스터를 현대 정치의 은유로 표현하면서 장르영화의 한계를 뚫고자 했다. 이익이 된다면, 혹은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마피아들의 행동에서 부패한 정치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더 나아가 그것은 곧 당대 미국의 이기적인 사회현실인 점도 암시했다. 한편에선 갱스터들을 품위 있게 그렸다는 비판을 하지만(지금도 여전히), 코폴라는 그들이 갱스터이기보다는 잘못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유법으로 읽히기를 바랐다. 곧 권력층의 현실이 갱스터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냉소주의였다.
결과는 코폴라 자신이 원하던 것 이상이 됐다. ‘작가’ 감독이라는 평가와 함께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평(예술성)과 흥행(대중성) 양쪽 모두에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받는 대표적인 감독이 앨프리드 히치콕일 것이다. 사실 이것도 ‘상업영화 감독’ 히치콕을 작가로 재평가한 <카이에 뒤 시네마>의 영향인데, 하지만 흥행 감독 히치콕이 왕성한 활동을 벌일 때에도 예술가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감독 후반기 때의 명예였다. 그런데 코폴라는 활동 초기부터 ‘히치콕’이 될 가능성을 보였다. 그런 평가가 여전히 유효한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후의 수많은 신인들이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를 목표로 삼는 데는 코폴라의 영향이 컸다.
시칠리아의 아들 알 파치노
<대부2>(1974)는 더욱 직접적으로 정치권의 부패를 그린다. 마이클은 이제 ‘대부’가 되어 사업의 본거지를 네바다로 옮겼으며, 정치권에 조력자를 여럿 뒀다. 말하자면 합법적인 틀을 빌려 사업을 확장 중이고, 네바다의 상원의원을 뒤에서 조종한다. <대부> 시리즈의 1부가 조직범죄단 사이의 음모와 폭력에 초점이 맞춰 있다면, 2부는 그 방향이 정치권으로, 그리고 3부는 종교계까지 뻗어간다. 역시 코폴라의 염세주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으로, 소위 정치와 종교 등 현실세계를 지탱하는 두개의 중요한 터전이 불행하게도 마피아와 닮아 있다는 입장이다.
<대부2>는 마이클의 사업 확장과 부친의 과거 뉴욕 입성을 병렬적으로 그리고 있다. 1부에서 말론 브랜도가 연기했던 비토 코를레오네의 젊은 시절 이야기인데, 그 역을 이번엔 로버트 드니로가 맡았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는 모두 이탈리아 이주민의 후손이다. 드니로는 부계만 이탈리아인인데, 파치노는 부모 모두가 이탈리아, 특히 시칠리아 출신이다. 게다가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파치노의 외조모의 고향이 바로 코를레오네이다. 파치노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코를레오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말하자면 허구 속의 시칠리아 땅에서 파치노가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데는 실제의 가족의 역사가 끼어든 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2부에선 1부와 달리 시칠리아도 폭력의 배경으로 강조돼 있다. 2부의 도입부는 곧바로 시칠리아에서 시작한다. 지역 마피아에 대항한 비토 코를레오네의 부친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고, 이것마저 마피아들의 총격으로 중단된다. 비토의 형도 이미 살해됐으며, 졸지에 고아가 된 어린 비토는 동네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 당나귀에 실린 채 마을을 빠져나가, 그길로 뉴욕으로 도망간다. 비토가 당나귀에 몸을 숨겨 피신하는 장면은 숱한 종교화로 남아 있는 ‘예수의 이집트행 피신’을 인용한 것이다. 이 장면은 역시 코를레오네가 아니라 포르차 다그로에서 찍었다. 나귀 장면에서 종교적 의미를 끌어오기 위함인지, 마피아들이 무기를 들고 감시를 하고 있는 ‘수태고지의 성모 교회’ 앞을 비토 일행이 빠져나가게 했다.
<대부2>는 도입부에서 시칠리아를 보여주고, 또 결말부에서 한번 더 시칠리아를 등장시킨다. 로버트 드니로가 부친의 복수를 위해 코를레오네를 방문할 때다. 비토 코를레오네가 뉴욕에서 표면적으로는 올리브 오일 판매업을 하지만, 사실은 지역의 ‘대부’로 입지를 마련한 뒤다. 코를레오네의 조그만 기차역에 금의환향하듯 도착한 비토는 지역 보스의 집을 방문하여 선물을 주는 척하며, 단도로 복수를 하는 대단히 폭력적인 장면이 여기서 진행된다. 말하자면 마이클도 아버지를 위한 복수로 살인자가 됐는데, 그 선대인 비토 역시 부친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살인자가 됐다. 가족을 위한 복수와 살인은 코를레오네 집안의 끊을 수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대부2>에서의 시칠리아는 더이상 신화의 땅이기보다는 마피아의 폭력성이 강조된 세속의 땅으로 표현돼 있다.
실제 촬영장소는 시칠리아 섬의 동쪽 끝
알 파치노는 시칠리아의 아들이다. 그가 2살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대단히 힘들게 성장기를 보냈다. 뉴욕의 브롱크스에서 자랄 때, 이탈리아식으로 ‘알프레도’(Alfredo)라고도 불렸다. ‘알’은 알프레도의 애칭이다. 학창 시절에는 문제아로 취급받았다. 많은 과목에서 낙제를 했는데, 언어과목(English)만은 발군이었다. 결국 파치노는 17살 때 배우가 되겠다며 학교를 그만두었다. 연기학원에 다니기 위해 접시닦이, 배달부, 수위 등 잡일들을 달고 살았고, 연극 무대에 서며 경험을 쌓았다. 겨우 들어간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메소드 연기를 배우며 전환점을 마련했다. 파치노는 1971년 두 번째 영화 출연작인 <니들 공원의 공황>(The Panic in the Needle Park)에서 헤로인 중독자를 연기하며 코폴라의 눈에 띄었다. 그는 <대부>에 나올 때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파라마운트사가 원했던 ‘마이클’은 잭 니콜슨, 로버트 레드퍼드 같은 스타들이었다. 그런데 신인급인 파치노는 <대부>에서, 등장 자체가 다른 출연자들을 압도하는 ‘전설’ 말론 브랜도와 함께 연기하며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대부3>(1990)는 노년기를 맞은 마이클을 그린다. <대부>의 말론 브랜도의 위치에 오른 늙은 알 파치노의 삶이 초점이다. 그는 이제 바티칸의 지지를 받아 사업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로마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3부에서 마이클은 이제 지쳤고, 남은 소원은 가족들, 곧 아내였던 케이(다이앤 키튼), 테너 가수를 꿈꾸는 아들 앤서니(실제로 성악가인 프랭크 담브로지오가 출연), 그리고 딸 메리(코폴라의 딸이자 지금은 감독으로 유명한 소피아 코폴라가 출연)와 함께 사는 것이다. 아들 앤서니의 오페라 데뷔를 앞두고 가족들이 다시 모이면서 시칠리아 시퀀스가 시작된다.
3부에서 강조되는 곳은 ‘마시모 오페라극장’이 있는 팔레르모, 그리고 거부들의 저택들이 많은 바게리아(Bagheria)이다. 바게리아는 첫 작품처럼 신화적인 공간으로, 팔레르모는 2부처럼 폭력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시칠리아의 첫 장면은 팔레르모와 거의 붙어 있는 전원도시 바게리아가 여는데, 길 위에는 양떼들과 목동들이, 저 멀리 언덕에는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보이는 곳이다. 다시 그리스의 아카디아 같은 평화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곳의 저택에 머물고 있는 마이클은 케이에게 여전히 사랑을 고백하며 함께 살 것을 간절하게 제안한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보여주겠다며 코를레오네를 구경시킨다. 물론 진짜 코를레오네가 아니라, 전편들처럼 포르차 다그로에서 촬영했다. 마이클은 부친 비토 코를레오네가 살았던 집까지 케이를 데려간다. 오래된 목제 대문이 인상적인 이 집은 지금도 관광객의 유명 방문지다.
3부의 종결부는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공연되는 팔레르모의 마시모 오페라극장이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는 말은 ‘시골의 기사도’라는 의미인데, 시칠리아 특유의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를 지칭한다. 어찌보면 별것 아닌 것에 명예를 들먹이며 목숨을 거는, 극단적이고 허무한 삶의 태도가 오페라의 테마가 됐는데, 그것은 ‘<대부> 시리즈’의 테마이자, 시칠리아의 성격이기도 하다. 여기서 마이클은 자기 생명보다 소중한 딸을 잃는다. 그의 선친 비토가 큰아들 소니(제임스 칸)를 잃듯, 마이클도 결국 혈육을 잃는 삶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 비극적인 장면에서의 알 파치노의 통렬한 연기는 1부에서의 말론 브랜도의 연기에 맞먹는 절정의 순간으로 남아 있다. 아마 코폴라는 브랜도는 존경하고, 파치노는 사랑한 것 같다. 시리즈를 통틀어 파치노를 담는 카메라는 마치 사랑하는 여배우를 잡는 남성 카메라의 그것과 비슷해서다. 너무나 긴장되고 정성 들여 보인다. 특히 2부에서 보여준 파치노의 다양한 클로즈업 장면은 1부의 시칠리아 아내 아폴로니아, 그리고 3부의 딸의 얼굴을 잡을 때보다 더 깊은 감정이 느껴질 정도다.
영화팬들에겐 지금도 시칠리아는 ‘<대부> 시리즈’로 기억될 것 같다. 신화와 야만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말이다.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은 늙은 마이클이 아폴로니아와 신혼을 보냈던 ‘노예들의 성’에서 의자에 앉은 채 시칠리아의 황금빛 태양 아래 죽는 순간이다. 마이클이 어머니의 품 같은 시칠리아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실현한 그곳이다. 그럼으로써 ‘<대부> 시리즈’의 신화도 끝난다. 사실 코폴라는 시칠리아의 전체 이미지, 곧 황금빛 이미지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1963)에서 배웠다. ‘<대부> 시리즈’엔 <레오파드>에 대한 오마주 장면이 곳곳에 숨어 있다. 다음엔 비스콘티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감독들은 시칠리아를 어떻게 봤는지를 보겠다. 이탈리아 거장들의 시칠리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