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따스하고 푸른 봄날을 즐기는 모자의 모습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2015-12-16
글 : 문동명 (객원기자)

안동의 한 조용한 마을, 나이든 모자가 함께 산다. 안동 예안 이씨 충효당파 17대 종손인 이준교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10년째 모시고 있다. 95살의 어머니와 70살의 아들. 두 사람은 봄을 맞아 집 앞의 꽃을 구경하고,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아들은 가택인 충효당을 알리는 일을 수행하면서 늘 어머니의 두 다리 노릇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평범한 시골 마을에 사는 특별한 인연의 두 사람.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춘희막이> 등으로 대표되는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경향의 일부(실제로 두 작품을 각각 연출한 진모영, 박혁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각자 라인 프로듀서와 촬영을 맡았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만의 장점은 뚜렷하다. 지상파 3사의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오래된 인력거>(2011), <춤추는 숲>(2012) 등 독립 다큐멘터리의 촬영을 맡은 바 있는 안재민 감독의 솜씨가 잘 드러나는 대목들이다. 모든 장면마다 공들인 티가 역력한 촬영은 두 모자의 눈물겨운 사연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관객의 흥미를 움직인다. 섬세한 촬영은 비단 보기 좋은 풍경을 담은 수준에서 더 나아간다.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지만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는 말수가 적다. 안동 하회마을의 유서 깊은 가문의 사람들이 주인공이지만, 영화는 가문의 내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두 모자의 절절한 관계는 인터뷰를 통한 구체적인 구술이 아닌, 아들 이준교 할아버지가 어머니인 권기선 할머니의 거동을 돕는 걸 묵묵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따스하고 푸른 봄날을 즐기는 모자의 모습은 그들이 프레임 끝과 끝을 걸어가는 느릿느릿한 휠체어의 속도에 맞춰 오랫동안 비춰진다. 하지만 계절이 서늘해짐에 따라 할머니의 건강은 나빠지고,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걸음의 호흡은 뚝뚝 끊어지기 일쑤다. 몸을 포개 겨우 거동을 옮기던 둘이 오랫동안 이어왔던 동행을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은, 과도한 음악으로 강조되는 클라이맥스보다 훨씬 많은 걸 이야기한다. 2013년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오백년의 약속>에 에필로그를 더한 버전으로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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