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가 우러나는 인류의 고전,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다. 할아버지가 된 비행조종사(제프 브리지스)와 새롭게 창조한 캐릭터 ‘소녀’(매켄지 포이)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원작의 줄거리에 더해졌다. 소녀는 엄마(레이첼 맥애덤스)가 짜놓은 ‘인생 계획표’대로 생활하는 모범생이다. 소녀가 사는 마을은 가로수마저 직육면체로 재단된 삭막한 곳. 이곳에서 유일하게 생기를 지닌 건 옆집에 사는 조종사와 그의 오래된 집뿐이다. 마을의 말썽쟁이로 통하는 괴짜 조종사는 친구가 되어주겠다며 다가와 소녀의 시멘트빛 일상에 색감을 더한다.
충실하게 재현된 원작을 중심으로 원작과 맥이 닿아 있는 새로운 이야기가 그 곁을 둘러싸는 구조를 띤다. 새로 창조된 이야기는 3D 캐릭터와 CG 그래픽으로, 원작 내용은 스톱모션으로 표현된다. 조종사가 건네는 낱장의 기록들을 토대로 원작 이야기가 펼쳐지므로 스톱모션에선 종이의 질감이 강조된다. 이는 원작에 대한 관객 개개인의 기억과 추억을 상기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여우, 장미, 뱀 등의 등장인물부터 해지는 사막, 메마르고 뾰족뾰족한 바위산의 풍경들까지, 소설 속 언어들이 절묘한 색감과 질감을 얻어 세심하게 형상화된다. 그 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 길들임의 의미 등 <어린왕자>의 핵심 주제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악기 사용을 줄이고 목소리의 결을 살린 한스 짐머의 음악은 황홀한 분위기를 돋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을 떠올리게 하는 창조된 이야기에 대해선 의견이 갈릴 수 있으나 원작의 아우라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