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영진, 이현명, 장원석] “조합원들 이익 보호하고 대변하는 게 최우선 목표”
2016-01-06
글 : 김성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제9기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신임 대표단에 선출된 안영진 대표, 이현명•장원석 부대표
장원석, 안영진, 이현명(왼쪽부터).

“타고난 비즈니스맨들이다. 조합이 더욱 유연해질 것이다.” “영화를 잘 만들진 몰라도 영화산업과관련한 주요 이슈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아니다.” 미인픽쳐스 안영진 대표(<몽타주> <살인의뢰> 등 제작), 그린피쉬 이현명 대표(<시크릿> <용의자> <살인자의 기억법> 등 제작), 비에이 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최종병기 활> <집으로 가는 길> <끝까지 간다> <악의 연대기> 등 제작)가 지난 12월11일 열린 제9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이하 PGK) 정기총회에서 신임 대표단으로 선출되자 영화계는 이런저런 평을 내놓기 바빴다. 3년 만에 성사된 경선인 까닭일까. 프로듀서 99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번 경선에서 안영진 대표, 이현명•장원석 부대표 후보는 전임대표였던 최은화 대표, 신창환 부대표 후보를 제치고 9기 PGK의 막을 올렸다. 윤창업, 김부현, 김지연, 조은성 프로듀서가 선출직 운영위원으로 선임됐다. 2년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저런 기대감과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씨네21>은 이들을 만나 9기 PGK 운영 계획과 철학을 물었다. 세 사람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게 우리의 최우선 목표다. 다른 영화 단체들과 연대해 영화산업과 관련한 여러 사안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하며 ‘강한 PGK’를 천명하는 출사표를 던졌다.

-3년 만에 경선이 치러졌는데.

=장원석_조합 대표는 조합의 큰 살림을 챙겨야 하고, 다른 영화 단체와 정책적으로 연대해야 하는 게 일인데, 조합원 모두 현업에서 뛰는 프로듀서들이라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PGK 1기 대표였던 안영진 대표한테 ‘조합을 이끌어달라, 그러면 우리가 부대표로 나서서 돕겠다’고 제안했다. 마침 최은화, 신창환 후보가 ‘우리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욕이 생겨 정책적으로 대결을 해보자고 나섰다. 그렇게 3년 만에 경선이 치러질 수 있었다. 세간의 오해를 풀 필요가 있는 건 경선으로 대표단을 뽑는다고 하니 무슨 이권이 개입된 자리라 생각할 법도 한데 그런 건 전혀 없다. (웃음) PGK 대표단은 명예직도 아닌 봉사직이다.

-세 사람의 공통점 중 하나는 현재 자신의 제작사를 운영하면서 활발하게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제작자라는 사실이다. 이야기한 대로 생업 때문에 무척 바쁠 텐데 중책을 자임하게 된 계기가 있나.

=안영진_조합이 설립된 지 9년이 지났다. 그동안 조합구성원들이 성장했다. 라인 프로듀서들의 모임이었던 9년 전과 달리 지금은 프로듀서, 라인 프로듀서, 기획 프로듀서, 독립영화 프로듀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투자사 직원 등 직군이 다양해졌다. 그런 조합을 바라보는 영화계의 시선이 농익었으니 PGK가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 영화산업 안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됐다. 조합은 영화산업 발전이라는 명분을 지키되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니까. 그걸 우리가 해보자고 나선 것이다.

이현명_부대표로 나설 수 있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조합에 애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199명 남짓한 회원들이 매달 회비 1만원을 내 크고 작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조합은 조합원에게 1만원의 가치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대표단 후보로 나설 때 내걸었던 공약들을 2016년 1월에 열리는 PGK 운영위원회에서 정리하려고 한다.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욕심이 많다.

장원석_지난 9년 동안 내실을 꾸준히 다져왔고, 그렇게 쌓인 힘을 밖으로 낼 필요가 있다.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고 나아가서는 산업을 건전하게 가꾸기 위해 힘을 싣고 싶다. 앞으로가 중요한 것도 그래서다.

-세 사람이 영화산업의 주요 이슈를 잘 모른다는 평가도 있다.

=안영진_지난 6, 7년 동안 영화 제작을 하느라 조합 일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평가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PGK 신임 정책실장인 양종곤 프로듀서를 포함한 산업, 정책 전문가가 조합 안에 많으니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된다.

이현명_그런 우려는 우리를 표면적으로만 보고 내린 판단 같다. 영화의 전 공정을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프로듀서로서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산업의 정책이라든가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다만 회사 일에 치이다보니 안고만 있었을 뿐이다. 이제 그런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내려고 한다.

-세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선배 제작자들로부터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에 가입하라는 러브콜을 꾸준히 받아온 제작자라는 사실이다. (웃음)

=장원석_직접적으로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진 않았지만, 선배 제작자들께서 농담 삼아 그런 얘기를 하신다는 건 알고 있다. (웃음) 우리의 이익을 좀더 보호해줄 수 있는 강한 조직에 몸담고 싶은데 내게는 PGK가 그런 조직이다.

-신임 대표단이 ‘강한 PGK’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것도 그래서인가.

=장원석_그렇다. 총회를 하면 총회원 199명 중 99명이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은 없다. 우리는 영화를 프로듀싱하는 사람들이라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제협과 PGK의 역할이 겹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안영진_제협과 PGK의 차이가 무엇인가. 9년 전 사단법인을 준비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를 찾아갔을 때 받았던 질문이다. 제협은 제작자들이, PGK는 프로듀서들이 모인 단체다. 프로듀서는 기획 프로듀서, 라인 프로듀서, 공동 프로듀서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제협과는 인적 구성과 조직 방향이 다르다. 내부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그것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고, 그걸 다시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직이 PGK다.

-제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PGK가 제협과의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가지고 갈 건지 물어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제협이 영화산업과 관련한 주요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임 대표단의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안영진_제협과 PGK는 각기 다른 조직이지만 산업 안에서 두 조직이 처한 위치가 다른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을 낼 때는 두 조직 모두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결은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그 점에서 제협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제협과 함께해야 할 경우 적극 동참하고 힘을 실어줄 것이다. 우리가 경선에 나오면서 조합원들에게 약속한 건 산업과 정책에 대한 이슈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리딩 조합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위치를 스스로 만들어갈 것이고,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면 제협과 만나는 지점도 많을 거라고 본다.

이현명_다만, 우리는 특정 그룹이 아닌 산업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슈를 적극 제기하고 주도할 것이다.

안영진_이를테면, 모태펀드 부분 투자에서 인센티브를 총제작비에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의중을 투자사에 살짝 비쳤는데, 투자사가 그것에 반응해 2015년 하반기에 계약된 작품 몇편의 인센티브를 제작사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계약한 것이다. 프로듀서, 제작자의 위축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산업 풍경이다. 어느 한쪽이 위축되는 건 산업 전체에 좋지 않다. 프로듀서는 균형을 잡는 사람이고, PGK가 산업의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려고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므로 노력하겠다. 건강한 시스템을 만들 테니 끼워달라.

장원석_모태펀드를 운용하는 창투사들은 큰 재미를 못본다. 수익률이 높지 않으니까. 수익률이 높지 않은 이유는 근본적으로 투자•배급사가 배급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이다. 투자•배급사의 영역인 배급 수수료는 건드리지 못하고 만만한 인센티브를 건드리는 거다.

안영진_이처럼 위축된 갑을 계약 관계에서 프로듀서들은 과거에 비해 불공정한 계약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9기 PGK는 조합원의 권리와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할 것이다. 그게 우리의 목표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내부 논쟁도 있을 것이고 제협, 감독조합, 극장, 투자•배급사와 부딪힐 수 있는데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의견이 부딪히는 조합 내부를 조율할 수 있다면 밖에서도 충분히 여러 사안들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공개된 영화산업노조의 2016년 교섭안을 본 적 있나. 기술 스탭에 비해 연출, 제작부의 최저임금이 적게 책정된 것을 두고 영화계의 연출, 제작부의 불만이 많았다. PGK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이슈가 있을 때 PGK는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이현명_당시 조합은 이 문제를 조용히 대응하려고 했으나, 한편으로는 그 대응이 수동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표준계약서가 현장에 안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협과 PGK가 노조의 요구가 아닌 산업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였던 것 같다. 그 교섭안의 스탭별 임금 책정안은 영화 스탭을 기술직과 크리에이티브직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눴다. 연출부, 제작부, 미술팀, 분장팀이 기술이 없나? 그들도 기술이 있다. 그 점에서 제협과 PGK 그리고 노조가 TF(TaskForce)팀을 꾸려 이 문제를 원점부터 다시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올해 제협과 함께 내놓은 라인프로듀서표준계약서를 현장에 안착시키는 것도 신임 대표단의 과제 중 하나일 것 같다.

=안영진_영화진흥위원회, 문화부를 포함한 우리의 파트너들을 만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제협과 PGK가 라인프로듀서표준계약서를 마련했으니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신경써달라고 부탁할 거다.

-현장에 안착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당장 세 사람이 자신의 영화에 라인프로듀서표준계약서를 쓰는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

=장원석_우리 영화에 이 표준계약서를 쓰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다만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건 오랫동안 정리가 되지 않은 크레딧의 개념 정의다. 한국에서 제작자와 프로듀서는 각각 할리우드에서 프로듀서와 라인 프로듀서에 해당된다. 할리우드에서 프로듀서와 라인 프로듀서는 계급 구분이 아닌 역할 차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대체로 PGK 조합원은 오랫동안 ‘우리는 프로듀서’라는 생각을 가져왔기에 당장 프로듀서라는 크레딧을 쓰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크레딧 개념이 혼재되어 있다보니 갑자기 변화시키기엔 한계가 있다. 쉬운 예로 <씨네21>의 프리뷰 지면을 보자. 감독, 제작자, 배우, 촬영감독 이름은 있는데 프로듀서는 없을 때도 있다. 그것이 현재 프로듀서의 현실인 것 같다.

이현명_그 점에서 프로듀서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프로듀서가 ‘라인 프로듀서를 인정해달라’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일 수 있다. 사실 우리도 그동안 프로듀서가 인정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PGK가 어떤 조직인지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조합 내부에서는 제작자, 프로듀서, 라인 프로듀서 등 다양한 직군으로 구성된 조합원들을 잘 아우르는 게 관건일 것 같다.

=안영진_사실 최근 3, 4년 동안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탓에 여러 분쟁이 있었다. 최근 영화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선 절차에 따라 선출된 만큼 조합 내부에서 나오는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다.

장원석_PGK는 9인 운영위원회 체제다. 대표단과 선출직 운영위원을 포함한 9명이 매달 한번 이상 만나 산업의 주요 이슈를 논의하고 방향을 정한다. 9명은 각기 다른 분야의 프로듀서들로 구성되어 있어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안영진_조합 내부의 정책실 기능을 강화해 조합 내부와 영화계의 의견을 모아 문제를 공유하고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산업에서 프로듀서의 위치가 위축된 이유 중 하나는 기획개발펀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게 모태펀드가 운용하는 기획개발 관련 펀드 정도다. 그러다보니 창작자에게 온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TV나 웹툰 같은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게 현실이다.

장원석_기본적으로 기획개발자금은 손실률이 클 수밖에 없다. 그건 영화산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속성 때문이다. 전세계 영화시장을 보더라도 수익률은 최대 40% 정도다. 예를 들면 자동차산업도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를 쓰고 있지 않나. 어쨌거나 우리는 장기적으로 기획개발비를 효율적으로 공정하게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조합 일 말고 근황은 어떤가.

=장원석_얼마 전 <무한도전>에 소개됐던 <목숨 건 연애>(감독 송민규•출연 하지원, 천정명, 진백림, 윤소희)가 후반작업 중이다. (웃음) 김한민 감독 회사 빅스톤픽쳐스의 라인업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 얼마 전 <사냥>(감독 이우철•출연 안성기, 조진웅, 한예리, 권율, 손현주)은 촬영이 끝났고, 현재 김성훈 감독의 차기작 <터널>을 찍고 있다.

이현명_현재 원신연 감독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출연 설경구, 김남길, 설현)을 촬영하고 있다. 프로젝트S 당선작이었던 <싸움소 락희>를 중국 자본 가오쓰치 스튜디오와 함께 장편애니메이션으로 개발, 진행하고 있으며, 마셜 아트를 소재로 한 액션영화 <타이칸: 불멸의 수호신>을 준비하고 있다.

안영진_신인 한정국 감독과 <은닉>을, <몽타주>(2012)를 함께 만든 정근섭 감독과 <심마니>를 준비하고 있다. 또 한맥문화, 중국의 화책미디어와 함께 한•중•일 합작 <화이트트라이앵글>(감독 이승무)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 촬영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없어 조합일을 열심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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