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잔혹한 현실을 망각할 수 없는 환상여행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
2016-01-13
글 : 김현수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아가던 쿠미코(기쿠치 린코)는 29살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해줄 영화 <파고>(1996)를 만난다. 그녀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 <파고> 자체를 실화라고 오해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노트를 펼쳐 영화의 모든 신을 복기하면서 콘티를 그리고 대사를 받아 적으며 영화 한편을 달달 외우다시피한 쿠미코는 <파고>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칼이 파묻는 돈 가방을 찾아나서겠다면서 맨몸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쿠미코는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미국 노스다코타주에 도착해 무조건 ‘파고’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도 예의도 따지지 않고 아무에게나 도움을 요청하는 그녀는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쿠미코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어가며 ‘파고’라는 지명의 장소까지 도착하는 과정은 사실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낭만적인 한편의 동화 같다. 유약한 여성이 홀로 공권력의 간섭 없이 그 머나먼 길에 오를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쿠미코의 저돌적인 면모 때문에 가능한 여정이기도 하다.

제30회 선댄스국제영화제 미국드마라 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는 2001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고니시 다카코라는 일본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데이비드 젤너 감독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되 잔혹한 현실을 망각할 수 없는 프로덕션 디자인과 환상여행이란 이야기를 교묘하게 접목해 독특한 비주얼의 로드무비를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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