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폭력의 가속도 갈데까지 가봤다`, 박찬욱 감독과의 인터뷰
2002-03-22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39) 감독이 만든 네 번째 장편 <복수는 나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첫 시사회장에 나온 박 감독은 “기술 시사때 보니 내 취향에 딱 맞는 영화”라고 자평했다.

- `복수는 나의 것`이란 제목의 출전이 있나.

= 구약성서 <신명기>에서 야훼가 “유대민족을 괴롭히는 인간들은 내가 다 처치하겠다”고 선언한다. 정의는 내가 세워줄 테니 사사로이 너희들끼리 그러지 말라는 신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주인공들이 ‘신이 대신 보낸 처형자’라도 된 양 서로에게 앙갚음한다.

- 착한 인물들이 너무 극심한 악행으로 치달리는 게 아닌가.

= 사람들은 무언가 사태가 어긋나면 그 원인을 자기 바깥에서 찾으려 한다. 사회에 책임을 돌리거나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증오는 증폭된다. 그런 사람이 휘두르는 폭력은 더욱 극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악행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내가 왜 이렇게 나쁜 놈으로 변해가는가 하는 분노까지 가중된다. 그런 폭력의 가속화를 표현해보려 했다.

- 결말이 너무 끔찍하다.

= 어정쩡하게 절충해선 안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관객들도 이젠 갈 데까지 확실하게 가보는 걸 더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 영화 속에서 인과율(원인과 결과)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린다.

= 합리적 논리보다는 공상이나 궤변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유괴를 통해 돈을 받아내는 게 “바람직한 자본의 이동이자 화폐 가치의 극대화”라는 영미의 궤변이나, “너 착한 놈인 줄 안다. 그러니까 (‘살려주겠다’가 아니라) 내가 너 죽이는 마음 이해하지?”라는 동진의 대사가 그런 예이다. 생각이나 행동의 사소한 차이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그 새로운 사태가 또 다른 낯선 사태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 서로 얽매인 인연으로 인해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져드는 점은 <공동…>과 <복수…>의 공통분모인 듯하다.

= (요즘 내가 잘 쓰는 말로) “어찌어찌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상황이다. <공동…>에선 이병헌이 망설이다 어느 새 북한 땅을 밟아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복수>에선 그런 상황을 시종 밀고나간 셈이다.

-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의 질긴 사슬을 그린 듯 보이기도 한다.

= 의도한 바는 아니다. 벗어날 수 없는 이상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다.

- 자기 취향에 맞는 영화라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런가.

= 절제된 표현, 과감한 생략,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가 그런 점일 것이다. 연기든 연출이든 싫어하는 게 네 가지 있다. 잔재주, 똥폼, 똥무게, 겉멋 따위가 그것이다. 그런 게 배제된 작품을 좋아한다.

- ‘복수’라는 정서가 한국인과 좀 안 어울리는 구석이 있지 않나.

= <장화홍련전>도 있고…. 우리 민족이 좀 덜 극악스럽긴 하지만, 그런 심리가 아주 없는 민족은 없다고 본다. 극악한 심리나 복수심도 사람 마음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박 감독은 영화도 영화지만 “송강호 배두나 신하균의 연기는 이들이 현재 단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연기라고 자신할 수 있다”고 평한다. 그는 다음 작품을 위해 인혁당 사건과 이내창 사건 등 사회적 주제에 대한 자료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흡혈귀 공포영화’와 ‘3류 감독 이야기’ 등도 그가 ‘그의 것’으로 만져내고 싶은 소재다.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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