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순도 높은 아이러니 <제로 모티베이션>
2016-01-20
글 : 김수빈 (객원기자)

여성 징병제를 실시 중인 나라, 이스라엘의 한 사막 부대를 배경으로 한다. 제대할 날이 까마득한 행정반의 여성 부사관 다피(넬리 타가르)와 조하(데이너 이브기)는 컴퓨터 지뢰찾기 게임에서 신기록을 세우는 것이 일상의 유일한 낙이다. 문서를 파쇄하거나 우편 업무를 처리하는 게 그들 업무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 지루한 군 생활을 견디기 위해 다피는 도시 본부로 옮겨갈 계획을 세우고, 조하는 부대 내에서 첫 남자친구를 사귀기로 마음먹는다. 전출을 향한 다피의 노력이 효과를 봤는지 곧 다피의 자리를 대신할 만한 후임이 부대에 들어온다. 조하도 자신에게 호의를 표하는 동료 군인을 만난다. 의욕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두 부사관은 새롭게 부여받은 군 생활의 ‘동기’를 토대로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제대’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스라엘 출신의 여성감독 탈야 라비가 연출과 각본을 맡았으며 감독 본인의 경험이 영화의 바탕이 되었다. 영화는 건국 후 전쟁을 일상처럼 치러온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징병제의 모순 및 군대 내 조직 생활의 고충 같은 보편적인 주제들을 짚는다.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영화는 에피소드식 구성을 따른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군 내부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연루된 인물들의 면면을 그리는 데 집중함으로써 영화는 군대라는 작은 사회에 만연한 모순을 구체적으로 부각한다.

영화 전반에는 블랙코미디의 기류가 뚜렷이 흐른다. 행정반에 근무하는 군인들답게 총보다 스테이플러 총을 간수하는 데 더 열을 올리고, 옷의 얼룩을 제거하라는 상관의 명령에 옷에서 얼룩 부분을 오려내는 등 현실을 꼬집는 가벼운 코미디들이 이어진다. 후반부에 이르러 갈등이 극에 달한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스테이플러 총을 난사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벼운 톤의 코미디로 일관하지만은 않는다. 부대에서 자살한 이의 영혼이 깃든 캐릭터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일삼는 장면 등을 통해서 순도 높은 아이러니로 묵직한 주제의식을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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