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이전에 <구스범스>가 있었다. 1992년에 첫 출간돼 4억명이 넘는 전세계 독자를 사로잡으며 아동소설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구스범스>가 영화로 재탄생했다. 영화 <구스범스>는 200여편에 달하는 원작 시리즈 중에서 몇몇 에피소드를 택해 영화화하는 대신 원작에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와 작가 R. L. 스타인을 캐릭터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또한 호기심 많은 10대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고 반전을 잊지 않는 원작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엄마와 함께 시골로 이사 온 소년 잭(딜런 미네트)은 아빠와 단둘이 사는 옆집 소녀 헤나(오데야 러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우연히 옆집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듣고 헤나가 아버지(잭 블랙)로부터 학대받고 있다고 생각한 잭은 헤나의 집에 잠입한다. 그곳에서 잭은 무심코 <구스범스>를 열어 책 속 몬스터들을 소환하고 만다.
봉인된 존재들이 깨어나며 모험이 시작되는 설정은 기존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각각 게임과 역사 속 인물들을 현실로 소환한 <쥬만지>(1995), <박물관이 살아있다!>(2006)나 호러와 스릴러를 가미한 <캐빈 인 더 우즈>(2012), <사탄의 인형>(1988)이 대표적이다. <구스범스>는 전자의 작품들처럼 활력 넘치는 모험이 주를 이루는 원작이 지닌 공포소설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후자의 작품들과도 맥을 함께한다.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구별되는 지점은 현실에 소환되는 존재들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겪었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거칠고 무서운 몬스터들은 모두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주인공의 아픔이 형상화된 대상이다. 다만 영화에선 몬스터들에 얽힌 사연이나 트라우마의 실체를 다루지는 않는다. 판타지 어드벤처뿐만 아니라 하이틴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는 <구스범스>에서 분위기를 환기하는 건 헤나의 아버지를 연기한 잭 블랙의 몫이다. 책에 얽힌 비밀을 지키기 위해 시종일관 곤두서 있는 잭 블랙의 표정은 묘한 청량감까지 안긴다. 매력을 넘어선 잭 블랙의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