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6년 1월2일 <셜록: 유령신부>가 개봉했다. <BBC>의 신년 스페셜을 기념해 20개국 한정 특별 개봉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개봉 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 중이다. 이에 앞서 1월1일 밤 9시, 한국시각 2일 새벽 6시 영국 <BBC1>에서 스페셜 에피소드의 TV판이 상영됐다. 극장 버전은 약간의 추가 장면과 인터뷰를 더해 115분가량이 상영됐다. 이를 두고 드라마인데 영화처럼 속여 극장 개봉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셜록: 유령신부>는 스페셜 에피소드이지 극장판 스핀오프가 아니다. 애초에 팬들을 위해 극장이란 포맷을 빌려 상영한 이벤트에 가깝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모르고 온전히 한편의 영화로 인지하고 관람했다면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 특별한 선물은 독립된 에피소드로는 큰 의미나 재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반대로 셜로키언들에게는 환호할 만한 번외편이다. 스티븐 모팻과 마크 개티스는 “셜록 홈스를 현대로 데려오는 이단”을 감행한 지 5년 만에 다시 셜록을 빅토리아 시대로 데려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셜록’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거의 셜록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사이코드라마나 다름없다. 팬들 사이에서 ‘셜셉션’(<셜록>+<인셉션>)이라고도 불리는 이번 작품은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셜록의 마음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마인드맵을 준비했다. 고기능 소시오패스가 시즌4에서 펼칠 활약상을 미리 그려보는 예행연습이자 인간이 되어가는 소시오패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준비됐다면 셜록의 마인드팰리스 속 깊은 곳까지 잠행해보자.
Mindpalace: superego
빅토리아 시대 유령신부
우리말로 하면 ‘기억의 궁전’쯤 될까. 마인드팰리스는 실제로도 활용되는 일종의 기억 연상법으로, 친숙한 장소의 이미지와 연결해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다. 드라마에서는 좀더 극적으로 표현, 상상을 통해 공간을 실체화해 셜록이 직접 그 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자주 그려진다. 스톱모션 플래시백으로 사건 현장을 재구성하는 기법과 함께 시리즈의 대표적인 인장 중 하나다. 첫 에피소드 <분홍색 연구>에서 폭탄 폭발 직전 해체 방법을 찾는다든지, 시즌3 <마지막 서약>에서 셜록의 과거와 약점을 드러내는 등 거의 매화 결정적인 장면에 사용된다. 애초에 <셜록> 시리즈가 ‘답정너 설명충’인 셜록의 추리를 재구성, 증명하는 방식을 취하는 만큼 일종의 데우스 엑스마키나 역할을 하는, 어찌보면 시리즈 이미지 구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셜록: 유령신부>(이하 <유령신부>)에서는 한 단계 나아가 아예 구성 자체가 셜록의 마인드팰리스로 이뤄져 있다. 스핀오프라기보다는 시즌3와 시즌4를 연결하는 다리에 가까운 이번 스페셜 에피소드는 겉으로 보면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간 셜록을 그리지만 리얼타임으로는 시즌3 마지막 장면, 추방당해 영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의 셜록이 꾸는 짧은 꿈에 불과하다.
셜록은 에밀리아 리콜레티의 시체를 앞에 두고 “뒤통수가 깔끔하게 날아갔어. 그가 어떻게 살았지?”라고 자문한다. 그때 존 왓슨이 그녀가 아니라 ‘그’라고 친절하게 정정해준다. 이 대사에 <유령신부>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성능 하드드라이브를 자처하는 셜록의 두뇌가 문제 해결을 위해 마인드팰리스를 발동시킨다는 걸 감안하면 이번 에피소드가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다. ‘머리가 날아가는 걸 직접 목격한 모리아티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시즌2에서 권총 자살을 했던 모리아티가 시즌3 마지막 순간 영국 내 모든 채널을 해킹해 “내가 그리웠나?”라는 메시지를 뿌릴 때 셜록은 궁금했을 것이다. 이에 기억을 더듬어 빅토리아 시대의 리콜레티 사건과의 유사성을 떠올리고 마인드팰리스를 펼쳐 트릭을 풀어보려 애쓴다. 변명하자면 이것이 독립된 에피소드로서 <유령신부>의 추리 과정이 다소 느슨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초에 유령신부와 여성참정권 운동과 관련한 음모는 맥거핀에 가깝다. 셜록이 진정 알고 싶었던 건 유령신부의 부활을 가능하게 했던 거울 트릭, 모리아티의 말을 빌리면 “추락과 착지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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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과 7%의 코카인
1895년은 셜로키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해다. 셜록 홈스가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떨어져 처음으로 사망한 해이기 때문이다. 시즌2 1화 <벨그레이비어 스캔들>에도 나오는 빈센트 스타렛의 시 <221B>에서 “여기, 세상이 폭발해도 살아남을 두명이 있으니/ 그들은 언제나 1895년에 머물 것이다”라며 셜록과 존 왓슨을 기리기도 했다. 드라마 속 존의 블로그 방문자 수를 1895명에 멈춰놓을 만큼 1895년은 그들의 전성기였다. 그러니 <유령신부>가 빅토리아 시대 중에서도 1895년으로 돌아간 건 당연하다. 특히 영화의 에필로그 1895년의 셜록과 존이 한담을 나누는 장면은 영원불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 대한 헌사처럼 보인다. 복용한 코카인 용량이 7%가 맞냐는 존의 깨알 같은 마지막 질문(시즌2화 <바스커빌의 개>에서 셜록은 금단현상에 시달리며 7%보다 센게 필요하다고 투덜댄다)은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원작과 현실마저 경계를 지우는 재치를 발휘한다. 셜록의 마지막 대사처럼 그는 “항상 시대를 뛰어넘었”으므로 이들 콤비는 스타렛의 표현처럼 1895년에도, 지금 여기에도 이야기 속에서 영원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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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안의 모리아티
스티븐 모팻의 크리스토퍼 놀란 사랑은 익히 알려졌다. 시즌1이 공개됐을 때 셜덕(셜록 덕후)들은 이미 <셜록>과 <다크 나이트>의 평행이론을 제기했고, 시즌3에서 셜록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마인드팰리스의 방식에서 <인셉션>의 흔적을 발견했다. 신문이 날아다니는 무중력 효과,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방, 계단으로 내려가는 이미지 등 유사한 장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서 한발 더, <유령신부>는 마인드팰리스의 단계를 설정해 점점 깊게 들어가는 셜록의 모습을 그린다. 영국을 떠나는 비행기가 첫 번째 단계라면, 빅토리아 시대는 두 번째 단계, 잠시 현실로 돌아와 유령신부의 무덤을 파헤치는 장면은 꿈속의 꿈인 세 번째 단계, 마지막으로 모리아티와 대면하는 라이헨바흐 폭포는 가장 깊은 단계다. “깊어, 너무 깊게 갔어. 축하해. 역사상 처음으로 이곳에 갇히게 됐네”라는 모리아티의 인사말은 누가 봐도 <인셉션>의 구조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 심층 단계에서 셜록과 모리아티는 그동안 뱅뱅 돌려가며 이야기했던 진심을 속 시원하게 까발린다. 이 스페셜 에피소드가 팬들에게는 명료하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셜록을 사랑하는 이라면 셜록의 잘난 추리에서 오는 재미보다 셜록의 내면과 두려움을 한층 선명하게 부각하는 쾌감이 더 크다.
“네 두뇌가 하드드라이브라며. 바이러스에게 인사해.”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맞닥뜨린 모리아티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서로를 부정하면서도 갈구하는 모리아티와 셜록는 사실 닮은꼴이다. 둘 다 고성능의 소시오패스이고 감정을 가볍게 여긴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는 셜록이 부단히 감정을 억누르는 반면 모리아티는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령신부> 속 모리아티는 실제가 아니라 셜록의 무의식이 그려낸 이미지에 불과하다. 정확하게는 셜록이 묻어버리고 싶어 하는 일면이 집약된 존재다. 모리아티가 등장할 때 배치된 거울 장면, 유령신부의 거울 트릭 등은 이를 노골적으로 상징한다. 모리아티는 폭포수 아래 셜록을 때려눕혀놓고 “내가 너의 약점이다. 네가 구르고 실패할 때마다, 제일 약할 때 내가 거기 있을 거야”라고 아예 대놓고 외친다. 표층의 마인드팰리스가 모리아티의 귀환에 얽힌 트릭을 풀기 위함이었다면 심층의 마인드팰리스는 내면에 억눌러 놓은 공포와 마주하는 셜록의 사이코드라마인 셈이다. 시즌을 거치며 점차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셜록이 모리아티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동족 혐오이자 자기부정 아닐까. 물론 그 순간에도 키드립을 날리며 모리아티를 비꼬는 센스가 작열, 셜록을 셜록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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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비어드는 무엇인가
현실로 돌아온 셜록을 걱정하는 마이크로프트의 수첩 상단에 ‘레드비어드’란 단어가 크게 써 있다. 셜록의 약점 중 하나로 소개되는 레드비어드는 시즌3 마지막 에피소드 중 셜록이 메리의 총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순간 펼쳐진 마인드팰리스에 등장한다. 어린 시절 키우던 커다란 개를 레드비어드라고 부르는 셜록은 개를 쓰다듬으며 “나도 곧 죽을 모양이야”라고 말한다. 어릴 적 셜록을 지키고 사라진 것처럼 묘사되는 레드비어드의 정체를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난무한다. 가장 무난한 첫 번째 가설은 문자 그대로 어린 시절 셜록 대신 죽은 개라는 견해로 그 트라우마로 인해 이후 자라며 주변과 감정적으로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한편 레드비어드가 셜록의 숨겨진 형제를 상징한다는 가설도 있다.
이 가설은 “제게 형제애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지 않습니까”란 마이크로프트의 대사를 바탕으로 상당수 셜로키언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인드팰리스가 셜록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만큼 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셜록>의 또 다른 매력이 끊임없는 떡밥과 추리(사건의 추리가 아니라 셜록의 전사에 대한 추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새로운 시즌을 이끌어갈 중요한 코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Mindpalace: libido
존록
스티븐 모팻이 인정한 바와 같이 <셜록>은 “탐정 이야기가 아니라 탐정에 관한 이야기”다. 추리보다 흥미로운 건 셜록이란 독특한 인물이 주변 사람들과 일으키는 화학반응이다. 전체 시리즈의 드라마는 감정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고기능의 소시오패스, 추리기계가 주변과 동화되며 점차 인간의 감정을 얻어가는 이야기라고 봐도 좋다. 시즌3에 대한 일부의 실망감(혹은 환호)은 드디어 감정을 드러내고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셜록의 낯선(?) 모습 때문이었다. <유령신부>에서는 아예 셜록의 무의식과 기억의 창고인 마인드팰리스 안으로 뛰어든 만큼 인물들간의 관계가 훨씬 선명하고 솔직하게 그려진다. 내내 티격대는 것 정도로 묘사됐던 형 마이크로프트에 대한 셜록의 애정, 치기어린 열등감, 셜록의 대부 같은 형의 모습 등이 비교적 친절하게 묘사되는 것이다. 이 스폐셜 에피소드 자체가 셜록의 트라우마를 씻어내는 작업이니만큼 시즌3 마지막 에피소드의 5분짜리 마인드팰리스의 확장판 같은 느낌이다. 셜록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이 그를 버티게 하는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시즌2에 등장하는 잠금화면 ‘I’m (SHER) Locked’의 명장면이 사실은 셜록이 아니라 존록(johnlock)일 거라는 팬들의 망상은 이들의 브로맨스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들의 애정고백은 이번엔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폭발한다. “결국 언제나 너랑 나잖아!”라고 진한 고백을 날리는 모리아티 교수 뒤로 가만히 존이 등장한다. “불공평해. 너넨 둘이잖아”라는 모리아티의 투정에 존은 “항상 둘이었는데, 책 안 읽어봤냐”며 낯 뜨거운 응수를 날린다. 이 장면은 <셜록> 원작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둘이 사랑의 도주라도 하지 그래?”라는 모리아티의 질투 섞인 조롱처럼, 그야말로 진한 삼각관계로 얽힌 한편의 멜로드라마다. 반복되는 게이설에 두 사람은 강력하게 부정해보지만 이쯤되면 이미 늦은 것 같다.
<인셉션>에 ‘킥’이 있다면 <유령신부>에는 ‘존’이 있다. <유령신부>의 마인드팰리스를 넘나드는 키워드가 존 왓슨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존은 “이제 일어나”라는 대사로 셜록을 일깨우는 유일한 사람이다. 셜록을 현실에 붙들어두는 존재가 존과의 우정이라는 사실이 새삼 부각되는 것이다. 한편 셜록의 마인드팰리스 안에서 형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이성의 집합체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마이크로프트는 과도하게 살이 쪄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다. 죽을 날이 3년인지 4년인지 내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셜록의 이성이 점차 약해지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거듭날 앞으로에 대한 카운트다운처럼 들린다. 리콜레티 사건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하고, 모리아티라는 두려움을 떨쳐낸 셜록은 이제 시즌4에서 본격적으로 ‘모리아티를 부활시킨 자’(모리아티가 아니다)들을 찾아나선다. 고기능은 여전하겠지만 소시오패스적인 일면은 점차 씻겨질 새로운 셜록의 모습도 기대할 만하다. 그럴수록 ‘존록’은 견고해질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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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드라마에 대한 기억의 궁전
드라마 <셜록>이 셜록의 원작과 팬픽, 관련 콘텐츠에 대한 방대한 도서관이라면, 이번 스페셜 에피소드는 드라마 <셜록>에 대한 기억의 궁전이다. 원작은 물론 각 에피소드의 숱한 장면과 대사들을 깨알같이 가져왔다. 오프닝은 첫 에피소드 <분홍색 연구>를 그대로 따라가고, “괜찮으면 와주게, 괜찮지 않아도 와주게”란 전보는 원작 <기어다니는 남자>에 나온 대사를 첫 에피소드에서 활용한 타이포그래피 연출을 반복한다. 그 밖에도 <네 사람의 서명>(“오늘은 뭐야, 모르핀? 코카인?”), <두 번째 얼룩>(“존, 여성은 자네 분야잖아”) 등 수많은 대사를 인용한다. 원작 일러스트를 그대로 재현한 기차 장면도 등장하며, 심지어 <바스커빌의 개>의 표지 디자인을 스테인드글라스의 문양으로 가져다 쓰기도 했다. 그야말로 성공한 덕후가 시도할 수 있는 사치스런 취미생활이자 해석의 즐거움이 있는 팬들을 위한 숨은그림찾기다. 파면 팔수록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