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잔인한 조건에 놓이는 평범한 인물 <아버지의 초상>
2016-01-27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실직한 지 2년이 되어가는 가장 티에리(뱅상 랭동)는 고용지원센터에 다니며 직업 훈련을 받는 중이다. 이전 회사의 동료들이 전 고용주를 고소하자며 노동조합 가입을 권유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티에리에겐 뇌성마비를 겪고 있는 십대 아들이 있다. 저축이 바닥난 상태, 남들보다 더 많은 교육비 지출이 필요한 아들을 위해서라도 그에게 시급한 것은 재정적 회복이다. 여러 차례 입사에 실패한 끝에, 결국 티에리는 할인마트 경비직으로 취업한다. 하지만 이내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누군가를 감시하는 일은 회사의 영업이익과 직결돼 있고, 다른 이들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의 진짜 역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초상>은 스테판 브리제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으로, 배우 뱅상 랭동과 감독이 함께 작업한 세 번째 영화다. 잔인한 조건에 놓이는 평범한 인물을 뱅상 랭동은 특유의 견고하고도 심플한 연기를 통해 완성한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2015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다. 주인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배역은 비전문 연기자들이 맡았다. 가족 구성원과 회사 동료들 다수가 스크린에 처음 모습을 비춘 아마추어들이다. 롱테이크 화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진실감은 그들의 공로가 크다.

원제는 ‘시장의 율법’이다. 제목이 의미하는 직설적 사회구조의 비판은 전개 과정에서 다소 완화된다. <아버지의 초상>은 실업 이후 겪는 잔인한 현실을 우화적 방식이 아니라, 현실감 넘치는 다큐멘터리의 화면으로 완성한다. 극 전반부는 실업률의 수치를 일반적 패턴으로 관습화시킨다. 그렇게 티에리의 시점이 영화 전체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으면, 후반부 전개에서 드라마는 관습을 벗어나 본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위기를 벗어나자마자 주인공에겐 이전보다 더 큰 위기가 닥친다. 카메라는 주변 인물의 반응숏들을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만을 드러내고, 티에리가 겪는 변화의 과정을 관객은 그저 짐작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사건을 직접 겪은 듯 충격을 받는다. 고통스런 현실, 그 속에서 주인공이 추락하지 않는 것은 다행스럽다. 주인공이 마주하는 미래의 모습은 흡사 우리 앞의 현실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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