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people] 허구와 실제 사이의 균형을 고민했다
2016-02-04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검사외전> 이일형 감독

“아침에 보일러가 얼어 물이 안 나오는 통에 동네 목욕탕에서 씻고 오는 길이다.” 한파 때문에 인터뷰를 하기 전부터 제대로 고생한 이일형 감독의 얼굴은 기대 반, 긴장 반이 뒤섞여 있었다. 기대감이라면 언론 시사회에서 나쁘지 않은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고, 긴장감이라면 아직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2011), 윤종빈 감독의 <비스티 보이즈>(2007)와 <군도: 민란의 시대>(2013) 조감독을 맡았던 그가 <검사외전>으로 감독 데뷔했다. <검사외전>은 검사 변재욱(황정민)이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누명을 쓰면서 감옥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을 만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계획을 꾸미는 이야기다. 서사가 다소 느슨한 부분이 있지만, 황정민과 강동원 두 주인공의 매력을 영리하게 활용하며 서사의 빈틈을 메운다. 분명한 건 명절 오락영화로 손색없는 버디무비라는 사실이다.

-영화가 첫 공개됐다. 어떤가.

=첫 연출작이라 감개무량하면서도 떨린다. 의도했던 대로 관객에게 잘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이 영화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누명을 쓰게 된 검사가 사기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오래전부터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회사(영화사 월광)에서 윤종빈 감독, 손상범본부장과 함께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기획안이 나왔다. 검사가 누명을 쓰고 감옥 가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 설정을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다가 버디무비가 좋을 것 같았다. 물과 기름 같은 두 남자가 <톰과 제리>처럼 부딪히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변재욱이 감옥에 들어가면서 두발이 묶인다. 대신 감옥에서 만난 치원을 감옥 밖으로 내보내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는데 사기꾼을 검사의 조력자로 설정한 이유가 뭔가.

=다혈질이지만 나름 정의감이 투철한 검사가 감옥에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흥미로울까. 검사는 법에 엄격한 사람이 아닌가. 이런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유형은 단연 거짓말쟁이다. 그게 사기꾼이다.

-두 남자가 수시로 티격태격해야 하는 보통의 버디무비와 달리 재욱과 치원은 각각 감옥 안과 밖에서 따로 움직인다. 그 점에서 전형적인 버디무비와 다르다.

=버디무비는 <톰과 제리>나 <리쎌웨폰> 시리즈처럼 두 남자가 함께 다니면서 부딪히는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치원이 감옥 밖으로 나가면서 두 남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게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이야기에서 재욱이 사건을 만들어내는 캐릭터라면 치원은 영화의 톤을 결정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두 인물의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이야기의 균형이 무너져버리게 된다. 둘이 각기 다른 공간에 있더라도 같이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영화를 보니 여러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참고가 된 작품이 있나.

=감옥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라 <쇼생크 탈출>(1994), <빠삐용>(1973),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를, 사기꾼이 나오니 <스팅>(1973),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을 챙겨봤다. 이 작품들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던 건 전자의 작품들이 어둡고 심각한 반면, 후자의 작품들은 한탕하는 이야기다보니 밝고 경쾌했다는 사실이다. <검사외전> 이야기에 맞는 서사 전개 방식을 선택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

-황정민의 어떤 면모가 재욱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관객으로서 황정민 선배는 붕 떠 있는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발군이라고 생각해왔다. <사생결단>(2006)의 도 경장, <신세계>(2012)의 정청, <달콤한 인생>(2005)의 백 사장 등 그가 맡은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지 않나. 그런데 영화 속 그 인물들을 보면 실제로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검사가 감옥에 간다고 하면 허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황정민 선배가 연기하면 그런 일이 있을 듯 여겨진다. 시나리오를 쓸 때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재욱을 묘사한 것도 그래서다. 캐스팅이 되든 안 되든 시나리오를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영화에서 강동원이 캐릭터를 바꿔가며 사기를 치는 모습이 꽤 능수능란해 보였다.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우고 심각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보통의 케이퍼무비와 달리 이 영화 속 사기꾼은 단순하고, 친숙하게 보이길 원했다. 실제로 사기 범죄 기사를 보면 사람들이 간단하게 사기를 당한다. 명함 한장에 속고, 사기꾼의 달콤한 말 한마디에 전 재산을 잃고, 뒤늦게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강)동원씨가 가진 천진난만한 면모와 매력적인 외모가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하고, 거기서 웃음을 유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욱이 수감된 감옥이 판타지 속 공간처럼 보인다. 그게 이야기를 설렁설렁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된 듯하다.

=서사가 가진 긴장감보다 캐릭터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화학작용이나 재미가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감옥이나 죄수복이 너무 사실적이면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힘들 것 같았다. 데님 소재로 제작한 죄수복, 풀숏으로 담아낸 감옥 전경 등으로 우리가 그간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사실적인 감옥과 다르게 보여주려고 한 것도 그래서다.

-치원이 사기를 치는 장면만큼이나 재욱이 감옥에서 살아남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장르가 오락영화이고, 약간의 판타지 요소들이 들어간 이야기지만 캐릭터가 어떤 선을 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령 감옥에 들어간 검사가 갑자기 액션을 하면 선을 넘는 거다. 그렇다면 검사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게 다른 수감자들에게 법률 상담을 해주는 것이다. 검사가 살아남는 것이 이야기의 중요한 지점은 아니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 그런 상상을 했다.

-강제규, 윤종빈 감독 아래서 조감독을 오랫동안 했다. 빨리 데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영화를 전공하고, 감독의 꿈을 꾼 사람이라면 누구나 빨리 자신의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있다. 시나리오를 잘 써서 일찍 데뷔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현장을 컨트롤하고, 많은 스탭들과 논의하는 등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감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윤종빈 감독 덕분에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장에 잔뼈가 굵었지만 첫 영화라 힘든 점은 없었나.

=50회차 넘었을 때 맹장이 터졌다. 살면서 그렇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엔딩인 법정 신을 찍기 직전이라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같다. 촬영을 잠깐 중단하고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다음 영화 시나리오는 쓰고 있나.

=아니. (웃음) 한줄도 없다. 개봉한 뒤 생각해야지. 첫 영화를 찍으면서 압박감이 컸다. 조감독 할 때는 ‘이렇게 찍으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접 해보니 마음처럼 쉽지 않더라. 그래서 영화감독으로서 고민이 많이 생겼다. 그 고민을 좀더 하고, 공부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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