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동성애를 다룬, 하지만 비극적인 엔딩이 아닌
2016-02-09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캐롤>의 원작 소설과 영화의 관계, 그리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소금의 값>(Price of Salt)

소설 <캐롤>은 처음 출간되었을 때 클레어 모건이라는 작가가 쓴 <소금의 값>(Price of Salt)이라고 되어 있었다. 하이스미스는 1990년에 이르러 이 책 제목을 <캐롤>(Carol)로 바꾸어 재출간하며 이 책이 자신의 작품임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이 원고에서는 책 제목을 한국 출간제목인 <캐롤>로 표기했다. 현재 판매 중인 이 책의 영문판은 <Carol> 혹은 <The Price of Salt: OR Carol>로 표기되어 있다.

1948년, 아직 수퍼히어로 코믹북 각본을 쓰는 무명 작가였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낀 2주 동안 블루밍데일 백화점의 장난감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하이스미스는 인형을 사러 온 캐슬린 위긴스 센이라는 연상의 고객을 만나 매료된다. 백화점에서 고객의 주소를 알아낸 하이스미스는 자신이 이후에 쓰게 될 서스펜스 소설에 어울릴 법한 집착의 과정을 밟아가는데, 심지어 첫 소설 <열차 안의 낯선 자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히치콕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 뒤에도 열차를 타고 캐슬린 위긴스 센이 사는 집을 몰래 찾아가 엿보면서 종종 극단적인 상상을 하곤 했다고 한다. 캐슬린 위긴스 센과의 만남을 소재로 소설을 구상하던 하이스미스는 한동안 자신의 여자친구였던 버지니아 켄트 캐서우드에게서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캐서우드가 양육권 문제로 겪은 일련의 경험은 실제 소설에서 캐롤에게 일어난 일과 유사하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면 영화의 스포일러가 된다.

현실의 어둡고 불편한 재료들

1952년, 하이스미스는 이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캐롤>(원제는 <The Price of Salt>-편집자)이라는 두 번째 소설을 완성한다. 이 작가가 쓴 유일한 러브 스토리로 알려져 있는 이 소설은 클레어 모건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고, 하이스미스는 80년대까지 자신이 클레어 모건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클레어 모건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건 당시 수많은 레즈비언 독자들에게는 거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현실의 어둡고 불편한 재료들은 하이스미스의 소설에서 거의 동화적인 미화와 소망 성취의 과정을 거친다. 27살의 무명 작가는 이제 세트 디자이너를 꿈꾸는 천진난만한 19살 소녀인 테레즈 벨리벳이 되었다. 어쩌다가 백화점에 인형을 사러 왔다가 매복하고 있던 작가에게 걸려 스토킹의 대상과 뮤즈가 되었던 캐슬린 위긴스 센은 이혼을 앞둔 30대의 아름다운 유부녀 캐롤 에어드로 재탄생한다. 둘은 소설 중간에 미 대륙을 절반 정도 가로지르는 긴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데, 많은 평론가들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몇년 뒤에 발표한 <롤리타>를 쓰면서 <캐롤>의 이 여정을 차용했다고 믿는다.

<캐롤>이 혁명적인 책이었던 이유는 동성애를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에는 동성애를 다룬 펄프 소설이 꽤 흔한 편이었다) 동성애를 다루면서도 두 주인공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지 않는 최초의, 또는 거의 최초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캐롤>은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은 아니지만 거의 그 근처에서 끝나며 독자들은 자신들이 감정이입해왔던 두 주인공이 앞으로 행복하게 맺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이스미스는 83년에 쓴 후기에서, 53년 이 소설의 페이퍼북이 나왔을 때 독자들이 자신에게 보낸 수많은 감사 편지들을 회상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성애 소재 주류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게 80년대부터라는 걸 생각해보라. 당시 <캐롤>은 거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었다.

토드 헤인즈가 필리스 나지의 각본으로 만든 2015년작 <캐롤>은 소설 <캐롤>의 비교적 충실한 각색이다. 작가가 아직 살아 있었던 90년대에 <캐롤>이라는 제목으로 영국에서 출판된 적이 있으니 일탈처럼 보이는 제목도 보기만큼은 아니다.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원작에서는 세트 디자이너를 꿈꾸던 주인공 테레즈가 영화에서는 사진작가 지망생이라는 정도인데,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시선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고려해보면 이는 그냥 당연해 보인다. 그외엔 원작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들 대부분이 영화에서 일어난다. 유명한 결말 역시 거의 그대로 보존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캐롤>은 일인칭 소설은 아니지만 거의 전적으로 테레즈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독자들은 캐롤, 캐롤의 남편인 하지, 캐롤의 친구이고 과거의 연인이었던 애비, 테레즈의 남자친구 리처드에 대해, 오로지 테레즈가 얻을 수 있는 정보만을 얻을 수 있고, 이 얼마 안 되는 정보도 테레즈의 순진함과 편견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테레즈는 하지에 대해 별로 알고 싶은 생각이 없고 애비에 대해선 어느 정도 질투하고 있다. 심지어 사랑의 대상인 캐롤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아름답고 불가해한 미스터리다. 확실한 건 테레즈 자신의 감정뿐이다.

하지만 헤인즈와 나지는 이 인물들에게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여전히 영화 <캐롤>의 우주는 테레즈를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테레즈에 의해 독점되지는 않는다. 영화는 테레즈보다는 어른스럽게 애비와 하지 같은 인물들이 당시로서는 예외적이고 특이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를 보여주며 이들을 관객에게 이해시킨다. 역할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캐릭터는 더 깊어졌고 모두에게 관대해졌다. 캐롤의 경우, 관객이 이 캐릭터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두 연인의 역할과 권력 구조의 변화가 보다 명확해졌다. 헤인즈와 나지 모두 <캐롤>을 정치적인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새로 각색되나 추가된 캐롤 파트에는 원작엔 없었던 정치적 선언이 들어가 있다. 영화 후반에서 캐롤이 내린 선택은 원작보다 훨씬 명쾌한 정치적 동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영화의 구조에 대해서는 조금 더 긴 설명이 필요하다. 헤인즈는 데이비드 린, 노엘 카워드의 고전 멜로드라마 <밀회>에서 영화의 도입부를 빌려오고 있다. 기능성 단역이 우연히 안면이 있는 여자를 만나는데, 그 여자는 낯선 누군가와 대화 중이다. 단역은 그 누군가가 여자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두 연인은 헤어진다. 이 설정은 <밀회>에서보다 <캐롤>에서 더 잘 먹히는데, <밀회>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눈치가 없는 아줌마 캐릭터와 달리 <캐롤>에 나오는 테레즈의 친구는 동성인 이들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테레즈와 캐롤의 관계는 그 단역이 대표하는 평범한 50년대 남성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하지 않는다.

후대의 작품들로부터 영향받은

<밀회>의 차용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밀회>의 도입부는 <캐롤>과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고전’이라는 사실 자체도 중요하다. <캐롤>은 60여년 전에 나와 고전이 된 소설을 각색한 현대의 영화이다. 그리고 아무리 영화가 원작에 충실하려 한다고 해도 과거의 고전을 바라보는 현대의 관점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전통적인 멜로드라마 고전인 <밀회>의 인용을 통해 헤인즈와 나지는 한때 혁명적이었던 원작이 지금은 과거를 무대로 한 고풍스럽고 보편적인 멜로드라마가 되었으며 그 변화 자체가 성공적 혁명의 결과임을 선언한다. 미국이 동성혼을 법제화한 2016년 관객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의미는 더 분명해 보인다.

<캐롤>에서 재미있는 것은 한때 혁명적인 선구자였던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가 그 혁명 이후에 소설의 영향을 받고 나온 수많은 후대 작품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속 하지 캐릭터는 원작보다 몇 십년 뒤에 나온 <밤이 기울면>과 같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의 남성 조연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인다. 헤인즈와 나지가 2015년에 만든 <캐롤>은 소설 <캐롤>뿐만 아니라 이후에 <캐롤>의 영향을 받고 나온 수많은 소설, 영화들로 이루어진 반세기가 넘는 역사 자체를 품고 있다. 이는 과거의 혁명을 기억하고 존경을 표시하는 최선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