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여기 사랑이 그녀가 우리가 있다
2016-02-09
글 : 송경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원작 영화화한 <캐롤> 토드 헤인즈의 연출과 케이트 블란쳇•루니 마라의 연기는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원작. 토드 헤인즈의 멜로드라마.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의 호연. 1950년대를 재현한 탁월한 미술과 의상. <캐롤>을 수식할 표현들은 많다. 하지만 그 어떤 단어로도 이 영화가 주는 감흥을 옮길 순 없다. 때로 어떤 영화들은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묘사를 하면 할수록 본질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그저 보고 느끼길 권한다. 그럼에도 <캐롤>이 남긴 마음속의 파장은 무언가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힘이 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말 부스러기와 <캐롤>을 둘러싼 짧은 정보들을 모아서 전한다. 영화평론가 듀나에게 원작과의 비교도 부탁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독립잡지를 제작 중인 이아립이 <캐롤> 속 음악 리스트도 정리해 보내왔다. 스크린에 불이 켜지고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당신이 느낄 감동을 고스란히 전할 순 없어도, 눈앞에 아스라이 아른거리는 잔상을 오래도록 음미할 양념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사랑이 있다.

“첫눈에 반한다.” 진부한 문장이다. 하지만 몇날 며칠을 고민해봐도 이 상황을 표현할 다른 단어를 찾을 길이 없다. 그럴 때 사람들은 벌어진 행간을 메워줄 단어를 늘린다. 앞뒤 정황을 좀더 자세히 묘사하고 다른 사건들을 빌려와 인물들의 심리와 성격을 그릴수도 있다. 두 인물 앞에 장애물을 배치해 둘 사이에 흐른 기류가 얼마나 진실된 감정이었는지 시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한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적 소설 <캐롤>은 그렇게 태어났다. ‘20세기의 에드거 앨런 포’라는 찬사를 받은 추리소설 대가의 손에서 유일한 로맨스 소설이 태어날 수 있었던 건 본인이 체험한 진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혹은 겪어볼 순간. 우리에겐 이야기가 필요하다.

멜로드라마의 정수 속에서 태어나다

소설을 영화화한 <캐롤>도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는 한 사람만 보인다는 그 짧은 순간의 확장이며 오직 그 시간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다만 영화는 순간의 흔들림을 서사로 메우는 대신 화면으로 재현하여 체현시킬 수 있다. 사실 이건 가능성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필수 조건이다. 영화라면 응당 그 순간의 공기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토드 헤인즈 감독은 기적처럼 찾아온 그 우연을 카메라에 성공적으로 봉인해냈다. 물론 그 떨림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뒤의 과정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캐롤>은 ‘첫눈에 반한다’는 흔들림의 순간들이 무수히 반복되는 영화다. <파 프롬 헤븐>(2002)을 통해 1950년대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1955)을 동시대적으로 해석해냈던 토드 헤인즈는 이번엔 1950년대 뉴욕으로 돌아가 모든 이가 한번쯤 느껴봄직한 보편타당한 순간들을 재현한다. 서사가 그리 중요한 영화는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교하게 조율된 서사와 구성이 빛나는 영화다. 이야기를 따르는 일련의 과정 사이 농밀한 감정들이 소복이 쌓이도록 유도하는 솜씨는 멜로드라마의 정수라 할 만하다.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던 테레즈(루니 마라)는 어느 날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시선이 마주친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끼는 두 사람. 이혼을 앞두고 있는 상류층 여성 캐롤은 딸과 헤어져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에 시달리는 중이다. 예전에 이미 비슷한 감정을 겪어본 캐롤은 테레즈를 집으로 초대하는 등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한편 사진작가 지망생인 젊은 여성 테레즈는 끊임없이 구애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자신이 없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어떤 확신을 느끼지만 주변의 눈초리는 둘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끌림을 믿으며 서로를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몇 가지 특수한 상황은 있다. 끌림을 느낀 두 사람은 모두 여자이고, 나이 차도 상당하다. 두 사람 모두 이미 배우자 혹은 약혼자가 있으며 배경도, 성향도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린다는 감정만큼은 외면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건 멜로드라마다. 멜로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극복하는 서사다. 한때 여성의 욕망에 봉사하는 신파로 매도당하기도 했던 이 장르는 80년대 평론가들에게 복권된 이후 미국영화의 정서를 꿰뚫은 중요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서로를 원하는 두 사람이 있고, 두 사람의 욕망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다. 이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파도들이 소위 말하는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이다. 다만 여기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형태에 집중할지, 둘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를 부각할지에 따라 영화의 색깔이 확연히 바뀐다. <캐롤>은 당연히 전자를 따르고 있다. 이 영화에서 퀴어 요소는 지금에 와서는 꽤 흥미로운 제약 중 하나에 불과하다.

1950년대에는 용납되기 힘든 파격적인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한 사회비판이나 전복적인 장치들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초점이 오직 두 사람의 감정에 맞춰져 있다. 예컨대 1950년대 멜로드라마의 거장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는 두 사람의 감정과 파열음을 내는 주변 상황을 통해 작가의 메시지와 시대정신을 구현했다. 서크는 이를 위해 과장된 색감과 정교한 미장센 등 양식적인 기법을 활용했는데, 핵심은 특징적인 스타일을 통한 비틀리고 모순된 시대상의 구현이었다. 반면 토드 헤인즈의 <캐롤>은 양식적인 측면에서는 멜로드라마의 정서를 빌려오되 감정의 초점만큼은 ‘사랑의 떨림’에 고정시킨 채 관객의 설렘을 이끌어낸다. 데이비드 린의 <밀회>(1945) 같은 고전은 물론 토드 헤인즈 자신의 영화 <세이프>(1995) 등 여러 멜로드라마의 인장이 녹아 있지만 시점은 현대적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흔히 멜로드라마와 리얼리즘은 상충한다고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멜로드라마의 정서만을 추출해온 <캐롤>에서는 반대로 리얼리티가 필수요소다. 이야기라고 해봐야 별것 없는 이 영화에서 사건과 감정의 여백을 메우는 건 대부분 배우의 연기, 그리고 1950년대 시대를 재현한 미술과 의상의 꼼꼼함이다. 촬영을 진행한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는 옛 간판 등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1950년 초반 뉴욕의 과도기적 활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선택됐다. 화면의 구도는 비비언 마이어나 루스 오킨 등 50년대 뉴욕을 담아낸 여성 포토그래퍼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독창적이면서도 은밀한 인상을 남기는 화면들은 대상을 한번에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법이 없다. 슬쩍 몸을 숨긴 채, 익숙한 듯 조심스럽게 상대를 관찰하는 구도들은 상대에게 강하게 끌리면서도 수줍음을 감추지 못하는 테레즈의 시선과 닮았다. 시선 자체가 여성의 관점이란 말이다.

촬영과 미술을 통해 드러낸 인물의 심리

미술과 의상은 전체적으로 절제된 듯한 이 영화 속 가장 강력한 감정의 언어다. 감정을 나타내는 언어라는 점에서 일견 더글러스 서크의 영화들에서 보이는 과장된 색감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서크의 영화들이 일종의 거리두기를 위해 비현실적인 색감을 채택한 데 반해 <캐롤>은 리얼리티에 입각해 시대의 질감을 표현하는 쪽에 가깝다.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에서 볼 수 있는 선명한 색감, 뚜렷한 색 대비 등은 과거를 그리되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또 하나, 제한된 사건과 감정 묘사 대신 인물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단초가 바로 의상이다. 초반 단순하고 수수했던 테레즈의 의상이 테레즈가 캐롤에 대한 확신을 더해갈수록 점점 원색에 가까워지는 걸 알 수 있다. 자기 확신이 뚜렷한 캐롤이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처럼 이 영화 속 의상은 무채색에 가까운 사회에서 자신의 색깔을 지키며 살아가는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봐도 좋다.

여기에 굳이 이 화면들을 슈퍼 16mm 카메라로 촬영한 건 1950년대 느낌을 살리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예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현대적인 색감”을 살릴 수 있는 방식이라는 감독의 판단 때문이다. 양식을 빌려오되 새롭게, 과거를 재현하되 지금처럼 변환하는 것이 토드 헤인즈의 이번 목표인 듯하다. <캐롤>이 멜로드라마와 리얼리즘, 두 가지 요소를 결합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령 토드 헤인즈의 전작 <파 프롬 헤븐>의 오프닝은 장르 양식에 따라 부감숏의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반면 <캐롤>의 오프닝은 바닥무늬의 앙각으로 시작하여 인물의 걸음을 따르다가 부감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인물을 둘러싼 환경보다 인물의 감정을 먼저 따라가겠다는 감독의 의도로 읽을 수도 있겠다.

사랑이 있고 장애가 있어 둘이 충돌한다. 이는 모든 이야기의 기본이다. 다만 <캐롤>은 충돌 지점에서 슬쩍 비껴나간 곳에 카메라를 잡고 관객이 감정의 여백을 채우도록 만든다. 사랑을 찍는 게 아니라 사랑이 스쳐지나간 자리, 떨림이 남아 있는 공기, 허전함에 전화기 앞을 맴도는 발걸음, 애타는 한숨과 한숨 사이를 찍는다. 그렇게 살짝 비켜나간 시선들이 머무는 곳에 우리도 머문다. 캐롤에게 저절로 이끌리는 테레즈처럼 어느새 캐롤의 표정 하나, 눈동자의 떨림 하나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수천번도 더 본, 이토록 식상한 사랑 이야기건만 그녀들이 다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 내내 눈을 뗄 수가 없다.

영화의 모든 것,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

<캐롤>은 전부 보여주지 않는다. 실크 벨벳에 가려진 우아함이 깃든 이 영화가 오래 보고 사랑스럽게 관찰하는 건 오직 인물들의 표정과 떨림, 그 찰나의 순간이다. 캐롤과 테레즈가 서로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주변의 시선은 어떤지, 두 사람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영화는 그다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궁금한 건지도 모르겠다. 캐롤은 어떤 여자인가. 테레즈가 바라는 건 무엇인가. 우리는 그녀들의 표정과 눈가의 미세한 떨림,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을 통해 읽어낼 수밖에 없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를 관찰하는 것처럼 말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테레즈와 동화되어 있으며 두 여인을 둘러싼 세계나 갈등, 주변의 억압하는 것들보다는 서로에게 반응한다. 어떤 의미에선 캐롤의 반응을 살피는 영화라고 봐도 좋다. 가령 캐롤의 집을 다녀온 테레즈가 “뭐 좀 물어봐도 되냐”고 했을 때, 수화기 너머 캐롤이 “제발 물어봐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중요한 건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아니다. 그 사이 짧은 쉼표처럼 들어가는 반응들, 두 여배우의 몸짓들이다. 이토록 오래, 그리고 힘 있게 배우의 표정을 응시하도록 만드는 카메라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모든 컷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컷과 컷의 여백을 메우는 건 두 배우의 연기다. 아니, 연기를 위해 여백을 마련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 영화는 앙상블의 영화이자 반응의 영화다. 전체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루니 마라는 평범하고 무난한, 일상에 묻히기 쉬운 사람이다. “저는 식사 메뉴조차 고르지 못하는 사람”이라던 테레즈가 캐롤에 감응하며 점차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 얼굴에 생기가 도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사랑스러워 절로 지켜주고 싶어진다. 내부로부터 천천히, 그런 만큼 활짝 열리는 꽃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캐롤만큼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역할이 아님에도 극의 중심을 잡아간다는 점에서 그 존재감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반면 캐롤은 제목처럼 영화가 바라보는 대상 그 자체다. 우아하고 강인하지만 한편으론 공허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여성을 케이트 블란쳇만큼 제대로 표현해낼 사람이 또 있을까. 결혼, 출산, 동성애로 인한 주변의 질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사회적인 억압 등 테레즈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이미 경험해본 이 완숙한 여인은 테레즈와는 또 다른 종류의 불안감을 품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해온 상식적인 여성이 (당시 기준으로) 비상식적인 선택을 과감하게 할 때 우리는 여전히 그녀 안에 잠자고 있는 소녀를 마주한다. 케이트 블란쳇은 도도해 보이는 마스크 사이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는 찰나를 놓치지 않는다.

테레즈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녀에게 옛 연인 애비는 묻는다.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니?” 캐롤은 답한다. “몰라, 언제는 알고 그렇게 했나?” 이 짧은 문답에 슬쩍 드러나는 진심. 설레는 순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순간들. 우리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눈빛과 표정을 이미 알고 있다. 때론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구멍이 메워진다. 토드 헤인즈는 그렇게 멜로드라마의 본질로 돌아가 사랑에 대한 완벽한 앙상블을 완성시켰다.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올해 최고의 엔딩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엔딩으로 마침표를 찍고 나면, 비로소 이 영화는 완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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